[숨] ‘교권’과 녹음기

기자 2023. 8. 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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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은 공교육 현장에서의 ‘교권’ 침해라는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표적을 찾아 단죄하려는 마녀사냥으로 미디어 공간이 소란스럽다. 지난 정권의 청소년 인권조례를 탓하다, ‘문제아’에 대한 학교 체벌을 반대했던 유명 방송인인 소아정신과 의사를 공격하다, 지금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학대한 혐의로 특수 교사를 고발한 웹툰 작가가 주요 표적이다. 여기에 공공시설(소아과 병원, 식당 등)에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엄마들에 관한 기사들이 반복적으로 달라붙는다. 이로써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는 ‘갑질 학부모’의 탓으로 귀결하는 듯하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웹툰 작가를 둘러싼 공방에 등장하는 주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는 녹음기이다. 작가는 아이가 이상 행동을 보이자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자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켜둔 채 등교를 시켰다. 작가는 녹음된 교사와 아이의 대화 내용이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수위라고 판단해 고소한 것이다. 교사의 승인 없이 녹음기를 사용한 것이 웹툰 작가 부부가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 갑질로 비난받고 있다. 이에 대한 해명에서 작가는 의사 표현을 충분히 못하는 아이가 학교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녹음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다른 학대 사건들에서 녹음이 주요한 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크게 못 느꼈다”고 한다.

작가가 지적하듯, 한국 사회에서 ‘녹음’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경우 직장 노조와 감사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주로 자신보다 권력이 많은 상사)과 마주해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 지난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더욱이 이러한 문제 제기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를 얻기도 어렵다. 심지어 문제를 다루는 부서도 회사에서 사건을 만드는 것 자체를 기피한다. 이러한 경향은 학교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녹음기’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증거를 모으는 것이다. 나 또한 이전에 직장 폭력으로 상담을 받았을 때 들었던 첫 번째 조언이 증거를 모으기 위해 녹음을 하라는 것이었다. 즉, 녹음기는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적당한 절차가 없거나, 있더라도 이에 대한 지원 및 연대를 구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확산한다.

웹툰 작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녹음기’ 사용 자체의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녹음기가 어떠한 것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집단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하나의 원인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들과 행위자들이 얽혀서 작동한다. 따라서 ‘교사-학생/학부모’라는 이분법적인 대립 구도 속에서 서로를 악마화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원인 제공자를 찾아 응징하는 ‘정의 실현’으로 보이지만, 향후 유사한 폭력과 문제를 줄이기보다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불신은 더욱 믿을 수 있는 것은 ‘녹음기’뿐인 상황을 만든다.

흔히 개인주의적인 사회라고 말하는 서구 국가들에서 중학교까지 가장 우선시하는 교육 목표는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다. 줄서기와 문잡아주기 실천이 하루 일과에서 반복되는 주요한 교육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때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감각을 체화한다. 한국 공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누르고 살아남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교실 붕괴는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성과인 셈이다.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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