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불편한 진실] 이민이냐, 혁신이냐
2010년대에는 저출생을 걱정하면 “인구가 줄어들면 좋은 거 아냐?”라고 되묻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이를 반전시킨 사람을 꼽자면 유튜버 슈카일 것이다. 무려 275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슈카가 “저출산 ‘원 툴’이라고 욕을 먹는다”고 자조할 만큼 이 주제를 여러번 다루면서, ‘인구 감소’ 자체가 아니라 ‘인구구조의 변화’가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인구구조를 예측해보니 청장년 대비 노년 비율이 전 세계 유례없는 수준으로 높아지고, 그로 인해 경제가 침체되고 세금이 치솟으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도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얘기다.
얼마 전 슈카는 5월25일 이뤄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기자 간담회를 다뤘다. 이 총재는 구조개혁 없이 재정정책에만 의존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우리는 해법을 알고 있는데 실행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교육, 연금, 서비스업 구조개혁과 함께 ‘이민’을 언급했다. 7월15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이민청 설치와 이민개방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지개혁이 우리나라 발전에 필요한 인프라를 마련한 것처럼 (저 한동훈은) 인구문제에 대해 국가 백년대계를 대비할 것입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1950년의 정답’이었다면 한동훈의 이민개방이 ‘2023년의 정답’이라는 것이다. 장관의 과업을 국가적 리더십으로 격상시키고 자신을 이승만과 동격으로 놓았다는 점에서 영리한 포지셔닝이다.
농지개혁이 현대 한국의 기틀을 세운 계기였다는 데 나는 동의한다. 사유재산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를 깔아뭉개고 농지를 소작농에게 나눠주다니! 이쯤 되면 거의 혁명이다. 이것은 공산화를 막기 위한 미국의 예방적 조처이자, 북한의 농지개혁에 따른 남한의 반응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하는 초강수를 통해 주도한 일이었다. 구 지배계급인 지주는 이를 계기로 몰락했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1960년 기준 지구상에서 자산이 가장 골고루 나눠진 나라는 한국이었다(토지 지니계수 기준). 소작농이 자영농이 되면서 늘어난 소득과 자산이 산업자본 형성의 밑천이 되었고, ‘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교육열이라는 불씨에 연료를 공급했다.(2021년 10월28일자 칼럼 ‘교육열의 원천은 가난 아닌 평등’ 참조)
이민개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나는 동의한다. 저출생은 이미 오래된 현상이기 때문이다. OECD 기준 국가의 ‘초저출생’ 기준인 합계출산율 1.3명을 하향 돌파한 것이 2002년이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최근에 출생률이 ‘세계 꼴찌’로 하락하면서 관심을 끌었을 뿐, ‘OECD 꼴찌’는 오래된 일이다. 그 방식과 속도에는 유의해야 하지만, 어쨌든 이민개방은 필수다. 하지만 한동훈 장관의 이런 발언은 위험하다. “선진국에서 출산율 감소는 전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노력으로 해결될 것인지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해결한 나라도 없잖아요?”
최근 15년간 280조원의 예산을 써왔다는 주장은 가짜뉴스다. 별 관련 없는 항목까지 ‘저출생’ 딱지를 붙여 분류했을 뿐이다. 핵심이 되는 아동수당, 보육지원, 육아휴직 등의 핵심적인 ‘가족지원’ 예산을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족지원액은 OECD 평균보다 35%나 적고 39개국 가운데 34등이다. 한때 나경원 의원이, 그리고 올해 5월 국민의힘에서 아동수당을 18세까지 월 100만원 지급하자는 안을 만들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농지개혁과 이민개방을 동일선상에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다. 농지개혁은 공격적인 처방이었던 반면 이민개방은 수비적인 처방이기 때문이다. 저출생의 원인은 따져묻지 않고 그 결과를 감당하기 위해 이민을 받아들이자는 얘기 아닌가.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농지개혁은 차범근이고, 이민개방은 김민재다. 그렇다면 손흥민은 어디 있는가?
우리의 손흥민은 이창용 총재가 언급한 임금개혁인가? 연공급을 직무급으로 바꾸면 누가 불이익을 볼지 너무 명확하다. 대기업 저숙련 장년층 노동자다. 우리의 손흥민은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복지확충인가? 이로 인해 누가 불이익을 볼지 너무 명확하다. 미래의 높은 조세부담률을 감당해야 할 현재의 청년층이다. 내가 새삼 대학의 상향 평준화를 거론하는 것은 임금개혁이나 복지확충과 달리 윈·윈 구조를 설계할 수 있어서다. 나는 한동훈 장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손흥민은 어디 있냐고.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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