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고노 담화 30년
김학순 할머니(1997년 작고)가 1991년 8월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했다. 한 해 전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에 분노해 가슴에 묻어둔 과거를 털어놓은 것이다. 그의 증언은 한·일관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필리핀·인도네시아·중국·호주 위안부 피해자들까지 나서며 전시 여성인권 이슈로 확산됐다.
일본 정부는 회피할 수 없었다.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은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을 통해 1년8개월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광범위한 지역에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고, 일본군이 관여했으며, 본인들 의사에 반해 동원이 행해졌다. 사과와 반성을 하며, 역사연구·역사교육을 통해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의 존재와 강제성을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다.
일본은 후속 조치로 1994년 고교 교과서에 위안부 관련 내용을 기술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1995년 8월15일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반성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고, 위안부 피해자 보상·지원을 위해 아시아여성기금을 설립했다. 일본의 반성적 역사 인식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으로 이어졌다.
일본 우파세력들은 저항했다. 그들에게 과거사 사죄는 자학사관의 실천이었다. 우파를 등에 업고 9년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강제연행과 강압의 증거가 없다”며 고노 담화의 내용을 부정했다. 2015년에는 “아이들과 손자 세대에까지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기간 한·일관계는 단절 위기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면서 한·일 외교를 복원했다.
고노 담화가 나온 지 30년.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3일 “위안부 문제에 관한 정부의 기본적 방침은 1993년 8월4일 담화 계승”이라고 했다. 더 이상 과거사를 꺼내려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전쟁범죄에 대한 기억은 어둠 속에 가둬지지 않는다. 한국이 그 기억을 놓지 않고,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들의 노력이 지속된다면 역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도 이뤄지지 않을까. 그때까지 고노 담화는 살아 있을 것이다.
안홍욱 논설위원 a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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