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어떤 학교를 원하세요?

기자 2023. 8. 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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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 두 살 많은 발달장애인 오빠가 있었다. 선생님은 짝꿍인 내게 그 오빠를 맡겼다. “OO이를 잘 도와주고 화장실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 선생님에게 알려주렴.” 이게 내 임무였다. 그날부터 1년 동안 오빠를 졸졸졸 따라다녔다. 언제 화장실 가야 할지 몰라 바지에 오줌을 싸거나 수업 시간에도 떼를 쓰는 아이들로 가득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 장애를 가진 오빠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위험한 공간이었을까?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가끔 오빠를 떠올리곤 한다. 무사히 잘 살고 있을까? 선생님은 나에게 왜 그런 중요한 일을 맡겼을까? 바쁘고 귀찮아서 ‘떠넘긴’ 것일까? 아니면 약한 친구들과 더불어 사는 경험을 하게 하기 위한 ‘큰 그림’이었을까? 오빠를 지켜보고 보살피는 일은 제법 귀찮았지만 싫지 않았다. 오빠도 그런 내가 좋았던지 노트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수경이 좋아. 수경이 고마워”라고 써서 보여주곤 했다. 오빠의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그때 그분의 마음은 하루하루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오수경 자유기고가 <드라마의 말들> 저자

경험이란 어떤 식으로든 현재와 미래의 나의 가치관과 삶에 개입한다. 그중 어떤 경험은 더 나은 인간으로 살도록 내 등을 민다. 비록 긴 인생에서 1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내 경험이 그랬다. OO 오빠는 내가 조금이라도 덜 해로운 사람이길 고민케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웹툰 작가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한 일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 사건을 보며 상상해 본다. 요즘 세상에 초등학교 1학년에게 성별이 다른 발달장애 동급생을 잘 도와주고 화장실 가고 싶어 하면 선생님에게 알려달라는 역할을 맡긴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교육 현장을 잘 모르긴 하지만, 민원이 폭발할 것이다. 어떻게 ‘내 새끼’에게 그런 일을 떠넘길 수가 있냐고. 어떻게 ‘내 새끼’와 저 위험한 아이와 한 교실에 있게 하냐고. 그 민원으로 당장의 불편은 해결될 것이다. 불편한 존재는 격리하고, 수준이 맞는 학생들끼리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면 되니까. 그러나 나와는 다른 존재와 공존할 수 있는 경험과, 더 나은 인간으로 살도록 교육받을 기회는 빼앗길 것이다. 효율성이 중요한 사회에서 이런 경험과 기회 따윈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작은 교실, 고작 30명도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타인을 이해하며 공존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게 어떻게 교육일 수 있으며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만든 세상이 어떨까?

이 사건을 두고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자극적인 기사를 (신나게) 생산하며 싸움을 부추기는 언론과, 온갖 혐오의 언어를 동원해 심판관 노릇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게 정말 아이들이, 학교가, 교육이 걱정이 돼 쏟아내는 말들인가? 이 사건이 학교의 학생과 교사들에게 어떻게 경험되길 원하는가? 학교가 경험을 쌓으며 뭐라도 배우게 하는 곳이길 원한다면, 문제 해결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언론과 (일부) 시민들의 행위는 반교육적이다. 부디 이번 일이 숨죽이고 있을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 정작 교육에서 배제되고 있는 학생들, 최선을 다해 교육 현장을 지키는 선생님들에게 상처로 경험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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