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하정우 "나의 피를 끓게 하는 건 영화, 그리고 연기"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하정우는 여름 텐트폴(성수기용 대작) 시장의 상징과 같은 배우다.
국내 4대 배급사가 '7말 8초' 극장가에 회사의 기획력과 자본을 투입한 대작을 내놓고 맞불을 놓기 시작한 첫 해인 2014년, 그는 '군도:민란의 시대'(477만 명)를 내놓았고 2015년엔 '암살'(1,270만 명), 2016년엔 '터널'(712만 명), 2018년엔 '신과함께-인과 연'(1,227만 명)으로 여름 시장을 책임졌다.
'텐트폴 대전'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2009년과 2013년 여름에도 '국가대표'(839만 명)와 '더 테러 라이브'(558만 명)로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최연소 1억 배우'이자 누적 관객 수 1억 1,500만 명(전체 1위)을 기록하며 충무로 최고의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한 하정우는 5,083만 명의 관객을 여름에 사로잡았고, 전체 3편의 천만 흥행작 중 2편이 이 시장에서 나왔다. 이 정도면 가명인 하정우의 '하'(夏)는 여름을 상징하는 한자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이다.
2023년 여름, 하정우는 또 한 번 텐트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비공식작전'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올해 여름은 그에게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신과함께-인과 연' 이후 5년 만에 출격하는 텐트폴 시장인 데다 코로나19로 인한 극장의 침체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여름 개봉은 2018년 '신과함께: 인과 연'이 마지막이었다. 이번에 함께 개봉하는 '밀수' 류승완 감독, '더 문' 김용화 감독 모두 친한 분들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예전에는 영화를 함께한 팀이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경쟁자로 만나게 됐다. 말을 아끼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환경이 낯설거나 힘들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올해의 경우, 한 작품이 잘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런 경쟁이 좋은 영향을 끼쳐서 한국 영화, 극장 산업이 코로나 이전처럼 활력을 되찾길 바란다. 옛날 같으면 남 걱정을 어떻게 했겠나. 지금이 워낙 특수한 시장이다 보니 더욱더 공생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신작 '비공식작전'은 실종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레바논으로 떠난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현지 택시기사 '판수'(주지훈)의 버디 액션 영화. '터널'로 호흡을 맞췄던 김성훈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이다. 또한 '신과 함께' 시리즈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던 주지훈과도 다시 만났다. 하정우의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 버디'들이다.
하정우는 김성훈 감독에 대한 두터운 신뢰로 시나리오를 읽기도 전에 영화 출연을 수락했다.
그가 연기한 '민준'은 5년째 중동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흙수저 외교관이다. 어느 날 수화기 너머로 20개월 전 레바논에서 실종된 외교관의 암호 메시지를 듣게 되고 성공하면 미국 발령이라는 희망찬 포부를 안고 동료 구출에 자원하게 된다.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 도착한 직후 계획대로 구출 프로젝트를 실행하려 하지만 시작부터 꼬임의 연속이다. 한국인 택시 기사 '판수'의 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두 사람은 갱단과 수비대에게 쫓기며 일촉즉발의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민준은 희비극이 모두 가능한 캐릭터였다. 처음에 감독님이 이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 꽉 채워두지 않았다. 배우가 채울 공간을 남겨 둔 느낌이랄까. 구상해 보고 고민해 볼 여지가 있었다. 잠재력이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었고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정우는 이 작품을 찍기 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을 찍었다. 코로나19로 모든 촬영 현장이 악전고투였을 때 그는 도미니카에서 모로코로 이어지는 해외촬영 강행군을 이어갔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 함께 하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끼게 됐다고 했다. 수백 명의 스태프와 동고동락하고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은 연기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그는 "카체이싱을 찍을때, 공항 장면을 찍을 때 등 영화의 주요 장면을 찍을 때마다 감정이 꿈틀꿈틀 나왔다. 현장에서 인간 김성훈(본명)이 느낀 것을 연기에도 녹아내려고 했다"고 전했다.
연기에는 여러 방법론이 있고, 배우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캐릭터를 형상화하고 숨결을 불어넣는다. 최근 하정우의 연기는 '메소드 연기'와는 거리가 있다. 기본적으로 그는 힘을 주는 연기나 설정이 많은 연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미니멀한 연기를 추구하는 탓에 연기를 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하정우식 연기의 개성이기도 하다.
'민준'은 하정우스럽게 완성된 캐릭터다. 인물의 톤 앤 매너를 자기화한 뒤 대사를 치는 특유의 리듬감과 능청스러운 분위기를 더해 감정의 온도를 신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바꾼다.
이번 영화가 전작들에 비해 유독 캐릭터가 잘 보인다고 하자 "100% 감독님 덕분이다. 김성훈 감독이 저의 사용법을 잘 아시다 보니 돋보이게 해 주신 것 같다"고 겸손을 보였다.
그러면서 "연기가 는 걸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20년을 했는데, 늘 수밖에 없겠죠. 연기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영화에서는 '엄청난 연기를 하겠다'는 계획을 짠다. 그런데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관객은 연기가 별로라고 욕을 하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그냥 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반응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본능적으로 그 인물을 표현할 때 '진심을 한 스푼 더 넣자'는 마음을 가질 뿐이다"라고 말했다.
'비공식작전'은 200억 원이 넘게 투입된 대작이고, 액션의 쾌감이 돋보이는 장르 영화다. 레바톤 베이루트와 비슷한 무드를 자랑하는 모로코의 4개 도시에서 4개월에 걸쳐 촬영됐다.
이 영화는 자국민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구하는 임무를 하는 사람은 국정원 요원이나 경찰이 아닌 일반인이다. 그런 만큼 영화 속 액션은 평범한 사람들이 할 법한 디자인으로 설계됐다. 영화적 재미를 강화하기 위해 액션의 파트너로 '벤츠 택시'가 고용(?)됐다. 이 파트너가 인간 배우 못지않은 발군의 활약을 펼친다.
베이루트의 택시 운전사 판수를 연기한 주지훈이 카체이싱을 전담한다면, 하정우는 땅에 발을 붙이는 장면에서의 액션을 담당한다. 그 액션은 '베를린'이나 '암살'처럼 도구를 이용한 화려한 액션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박진감과 쾌감이 넘치는 것은 감독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잘 수행해 준 배우들의 힘이다. 감독의 연출력도 이러한 설정과 환경에서 더욱 빛났다.
'쪼는 맛 연출의 대가' 김성훈은 두 배우의 몸 쓰는 액션을 최소화하면서도 텐션의 줄타기를 능수능란하게 해냈다. 특히 옥상에서부터 카체이싱으로 이어지는 후반부 18분간의 액션 시퀀스는 '비공식작전'의 백미다.
"민준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액션을 주도적으로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매달려있거나 묶여있는 상태에서의 수동적인 액션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베를린'의 표종성은 직접 칼과 총을 휘두르는데 민준은 그걸 할 수 없다. 배우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훈 감독은 다른 형태의 액션으로 박진감을 표현해 냈다. 놀라웠다. 대표적인 게 택시를 활용한 카체이싱 장면이었다. 운전하는 판수도, 뒤에 타고 있는 민준도 아닌 택시 자체가 액션의 대표성을 띠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정우가 꼽은 '비공식작전'의 명장면은 의외로 카체이싱과 같은 격렬한 장면도, 감정 연기를 응축한 후반부 공항신도 아니었다.
"민준이 돈을 들고 튄 판수를 찾으려고 헤매다가 들개에게 쫓기고 겨우 살아남아 동트는 아침에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 신을 가장 좋아한다. 그때 연기를 하면서 찰리 채플린을 생각했다. 찰리 채플린은 제게 영화의 꿈을 갖게 해 준 배우다. 이 장면에서 영화 '키드'(1921) 속 한 장면을 떠올렸다. 채플린이 유리창을 깨고 도망가면서 아이의 발을 툭 친 뒤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모습 말이다. 마라케시의 광활한 장소에서 넓은 앵글 그 장면을 찍을 때 찰리 채플린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대사 한 마디 없지만 인물의 감정이 느껴지는 그 장면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하정우와 주지훈은 '신과함께' 시리즈로 이미 2천 만 명 이상의 관객에게 인정받은 앙상블이다. 무려 5년 만에 만났지만 관객에겐 새로움 보다는 익숙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신과 함께' 1,2편을 통해 많은 분들이 보셨기 때문에 '비공식작전'에서의 호흡이 새롭지 않다고 여기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성훈 감독님의 작품 안에서 우리는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시감을 의식하면서 연기하지는 않았다. 그건 주연배우로서 작품 수가 쌓이다 보면 늘 따라다니는 숙제다.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고민은 하고, 숙제라는 걸 생각하면서 잘 풀어나가고자 했다"
하정우는 김성훈 감독, 주지훈과의 작업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드러내며 영화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건 역시나 '재미'다. 다른데 포커싱을 맞췄다면 상업영화라 할 수 없다. 관객들도 '비공식작전'이 선사하는 재미를 극장에 오셔서 느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는 연출작도 준비 중이다. 골프장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영화 '로비'가 그의 세 번째 장편영화가 될 전망이다.
전작인 '허삼관'의 실패는 하정우가 자신의 연출관을 재조정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상업적 성공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감독으로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자는 마음을 되새기게 됐다고.
"상업영화가 안 맞는다기 보다는 그런 의도로 접근하는 게 안맞다고 느꼈다. '허삼관'은 스코어를 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만든 영화였다. 데뷔작인 '롤러코스터'는 순수하게 만들고 싶은 영화로 접근한 거고. 이번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비즈니스보다는 작품을 먼저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하정우는 2010년 인터뷰에서 "피가 끓고 있는데 쉬어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100편 찍어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13년이 흐른 지금 하정우는 50편이 넘는 영화를 찍었다. 목표치의 절반을 40대 중반의 나이에 채웠다.
그에게 "지금 하정우의 피를 끓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영화'와 '연기'를 이야기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영화작업이다. 어떤 누구를 사랑하는 마음과 같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데 어느 날은 눈이 멀어서 구조조차 못 읽고 있더라. 주연으로 참여해서 시나리오를 볼 때는 장면장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연출자로 시나리오를 볼 때는 그게 흐릿해질 때가 있더라. 놀랍다. 그런 것들이 나의 피를 계속 끓게 한다. 영화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든다. 영화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 열정은 꺼지지 않을 것 같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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