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분기점에 러시아 '호전적' 블로거들 지리멸렬… 서방은 외교·제재로 러 압박

권경성 2023. 8. 4. 1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식량 무기화’ 박차 와중에 러 내우외환
러 주요 상업항에 첫 우크라 드론 공격
블링컨 맹비난, ‘무기 공급선’ 단절 주력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간부 출신 극우 성향 군사 블로거 이고르 기르킨(왼쪽)이 지난달 21일 모스크바에서 극단적 활동 촉구 혐의로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피의자 자리에 앉아 있다. 모스크바=AFP 연합뉴스

교착 중인 전쟁에 분기점을 만들 목적으로 ‘식량 무기화’ 전략을 들고 나온 러시아가 내우외환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호전적 성향을 보이며 우군으로 활약했던 친(親)러시아 블로거 세력이 내홍과 이탈로 지리멸렬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다, 외교와 제재를 동원한 서방의 러시아 공세 저지 압박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친러 블로거들 내분·결별... 크렘린의 단속 강화 탓?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거침없기로 유명한 친러 전쟁 지지 블로거들이 서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친러 군사 블로거들은 때때로 러시아 당국보다도 군 움직임 등 전황을 더 잘 파악하는 탓에 유용한 정보원 노릇을 해 왔다. 그러나 요즘 이 집단에서 이상 징후가 노출됐다는 게 신문의 진단이다.

우선 내분이다. 최근 유명 블로거인 알렉산드르 탈리포프는 같은 진영에서 줄곧 함께 활동하며 전쟁에 찬성해 온 2개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들을 겨냥해 “누구 편이냐”고 저격했다. 우크라이나에 의해 공격당한 크림반도의 사진을 이들이 올렸다는 이유로 추정된다. 해당 게시물이 주민들의 불안감을 조장하고 점령지를 지키는 러시아군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탈리포프의 생각이다.

‘결별’도 잇따를 전망이다. “모든 정치·언론·소셜미디어 활동을 끝내겠다”며 3일 ‘은퇴’를 선언한 전문가 블로거 예고르 홀모고로프가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발언 수위의 ‘자체 검열’이 필요해진 상황에 대한 반발이라고 NYT는 분석했다.

이들의 구심력을 떨어뜨린 건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의 단속 강화일 공산이 크다. 지금껏 군사 블로거들은 러시아군 지휘부의 문제점을 비판해도 당국 제지를 거의 받지 않았다. ‘면책 특권’을 누렸던 셈이다. 하지만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주도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간부 출신 블로거인 이고르 기르킨이 지난달 21일 돌연 체포된 게 단적인 사례다.


“우크라가 우세”… 젤렌스키, 항전 의지

2일 러시아군의 무인기(드론)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주 이즈마일의 해군 기지 건물. 이즈마일(우크라이나)=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4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국방부를 인용해 “흑해 인근 상업 항구 노보로시스크의 해군 기지를 우크라이나 해상 드론(무인 보트) 두 대가 공격하려 했지만 격퇴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주요 상업항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첫 공격이었다. 대부분 격추되거나 무력화되긴 했으나, 밤사이 최소 13대의 우크라이나 드론(무인기)이 크림반도 상공에 날아들기도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 영상 연설을 통해 자국군이 적보다 더 우세하다며 항전 의지를 거듭 피력했다. 우크라이나는 6월부터 동부·남부에서 ‘대반격’ 작전을 펴고 있다.

흑해 봉쇄와 시설 파괴 등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막아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러시아의 구상이 실현되도록 서방이 수수방관할 리도 없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흑해곡물협정’ 연장을 거부해 빈곤국을 굶주림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질타한 것이다. “러시아가 식량을 무기로 위기를 부추겨 개발도상국들을 자국에 종속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최근 개도국 등에 보낸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사실상 공동 외교전을 벌인 셈이다.

러시아의 ‘무기 공급선’을 끊으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러시아 동맹인 벨라루스에 드론이나 탄약 등이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대러시아 제재 우회를 차단하겠다는 EU 구상이 대표적이다. EU 이사회는 이를 담은 추가 제재 방안을 3일 확정했다. 미국은 ‘북한·러시아 무기 커넥션’에 주목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전화 브리핑에서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며 “북러 간 무기 거래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탄약을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시도를 차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