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예고’ 오리역…“몽둥이에, 최루탄에” 혼란 가중 [현장, 그곳&]

김기현 기자 2023. 8. 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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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5시께 살인 예고 장소로 지목된 오리역에서 수많은 경찰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김기현기자

 

“혹시 몰라 몽둥이도 준비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오리역 살인 예고’ 시간인 4일 오후 6시께 찾은 오리역에선 수많은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어서인지 무거운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평소와 달리 유동인구마저도 급격하게 감소한 모습이었다. 몇몇 지하철 이용객은 하나같이 주위를 유심히 살피거나 옆 사람의 작은 동작에도 크게 놀라는 등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출근길 딸로부터 받은 문자를 통해 상황을 알았다는 김모씨(64·서울)는 공포심에 퇴근 시간까지 앞당겼다. 그는 “세상이 정말 어떻게 되려고,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지 모르겠다”며 “혹시 몰라 오늘은 저희 가족이 모두 일찍 귀가하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역무원들 역시 사고가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몰라 굳은 표정으로 이용객 한 명 한 명을 뚫어지게 감시하는 데 여념 없는 상태였다. 역 관계자 김모씨(24)는 “10~20분 단위로 순찰을 돌며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며 “무섭긴 한데,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역 주변 상권도 불안해하긴 매한가지. 일부 가게들은 몽둥이와 호신용 최루탄을 구비해놓는 방식으로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 왔다는 곽모씨(57)는 “상인들 사이에서 ‘젊은 남성이 혼자 오면 문도 열어주지 말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몽둥이도 3개나 준비해 뒀다”고 말했다.

유동인구 감소는 매출 타격으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1년째 복권집을 운영 중인 장모씨(36)는 “원래 금요일이 가장 많은 바쁜 날인데, 손님이 없어 매출이 30% 이상 감소했다”며 “어차피 장사도 안 될 것 같고, 불안하기도 해서 오늘은 가게를 일찍 닫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두려움에 호신용 최루탄까지 들고 출근했다”며 “아무 일이 없어야 할텐데, 걱정”이라고 불안해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 떠돌고 있는 살인 예고글이 시간을 벌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특정 장소에 경찰력을 집중시킨 뒤 비교적 감시가 덜 한 또 다른 장소에서 범죄를 저지러 피해를 최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 2시42분께 트위터 이용자 hy*******는 게시글을 통해 “더 무서운 건 (살인 예고자들이) 장소를 특정하고, 글을 쓰고 있지만 주요 관심이 예고된 지역으로 향했을 때 보란 듯이 다른 지역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라며 “어떤 지역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4일 오후 4시께 오리역 인근의 한 음식점 사장 곽모씨(57)가 ‘오리역 살인 예고’에 대비해 몽둥이 3개를 구비해놓은 모습. 김기현기자

지난 3일 발생한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에 의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온라인상에 살인 예고 글이 빗발치면서 시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42분께 경찰에 첫 신고가 접수된 오리역 칼부림 예고글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글은 “8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 사이에 오리역 부근에서 칼부림하겠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날 6시35분 기준 오리역에선 아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같은 날 오후 7시9분께 게시된 두 번째 예고글 게시자는 흉기 사진을 첨부하며 “서현역 금요일 한남들 20명 찌르러 간다”고 적었다.

이 밖에도 현재 SNS상에는 ▲4일 서울 잠실·한티·대치·강남역 ▲5일 부산 서면역, 용산 대통령 자택 ▲6일 의정부역을 비롯해 논현동 및 압구정 현대백화점(날짜 미상) 등 전국 각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예고글이 빗발치고 있다.

특히 각 예고글 작성자들은 범행 예정 시간과 대상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있어 현장을 중심으로 공포심이 일파만파 번지는 양상이다.

이에 경찰은 전날 저녁부터 오리역과 서현역 일대에 경찰특공대 전술팀과 경찰관기동대, 순찰차 등 각각 35명씩 모두 70명의 경력을 배치하는 등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아울러 인근 정자역과 야탑역에도 각각 10명씩 모두 20명을, 판교·이매·수내·미금역 등에도 각각 2명씩 10명을 배치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칼부림 예고글을 최초로 올린 이들에 대한 수사에도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분당 외에도 칼부림이 우려되는 곳들에 기동대 7개 중대를 분산 배치한 상태”라며 “대테러 진압장비와 권총, 테이저건 등 무기를 휴대해 근무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전날 오후 오후 5시59분께 성남시 분당구 서현AK플라자에서 “누군가가 칼로 사람을 찌른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검은색 후드티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피의자 최모씨(22)는 교통사고를 낸 뒤 흉기난동을 벌여 20~70대 시민 14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피해자들은 현재까지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2명은 중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기현 기자 fac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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