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연착 잦은 적자투성이 항공사를 살려낸 건 '권한 위임'
얀 칼슨 지음 / 박세연 옮김
현대지성 / 248쪽│1만6800원
얀 칼슨 前 SAS CEO의 저작
"현장서 필요한 결정을 하게 하라"
축구 선수가 슛 해야 할 때마다
감독에게 물어볼 수 없는 노릇
항공편 안내 모니터 고장나도
윗선 지시 없으면 방치했던 조직
권한 위임 1년만에 '올해의 항공사'
얀 칼슨이 스칸디나비아항공 최고경영자(CEO)로 일할 때였다. 공항의 수하물 벨트와 항공편을 표시하는 모니터가 고장 나 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칼슨은 안내센터에 있는 여직원에게 혼란을 막기 위해 손으로 쓴 안내 표시판을 세워두자고 했다.
직원의 대답은 이랬다. “저도 그러고 싶어요. 지난 월요일에 시스템이 고장 났고 승객들이 짐을 찾을 수 있도록 임시 안내판을 세우자고 상사에게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상사는 조만간 수리가 될 테니 안내판은 필요가 없을 거라고 얘기하더군요.”
칼슨은 말했다. “하지만 1주일이나 지났잖아요!” 칼슨은 본사로 돌아와 해당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여직원의 상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라고 지시했다. 그의 책상을 공항에 있는 도착 터미널로 옮겨 문제를 직접 목격하게 하든지, 아니면 지금 그 자리에 있되 자신의 의사결정 권한을 현장 직원에게 넘기라는 것이었다.
<mot>는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스칸디나비아항공 CEO를 지낸 칼슨의 책이다. 1946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국적의 3개 항공사가 통합하며 출범한 이 회사는 칼슨이 취임할 때 어려움에 빠져 있었다. 매년 적자를 냈고, 항상 늦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그가 취임한 지 1년 만에 스칸디나비아항공은 유럽에서 가장 시간을 잘 지키는 항공사가 됐다. 1982년 흑자로 돌아섰고, 1984년엔 에어트랜스포트월드(ATW)로부터 ‘올해의 항공사’로 선정됐다. 1985년 처음 출간된 이 책에서 칼슨은 소박하고도 친절한 어투로 자신이 어떻게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탈바꿈시켰는지 설명한다.
그는 의사결정 권한을 현장에 위임하라고 했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스스로 감독이 된다. 어떤 선수가 공을 몰고 빈공간을 뚫고 들어가다가 갑자기 감독에게 달려와 지시를 요구한다고 상상해 보자.” 현장에 권한이 없을 때 고객의 문제는 즉시 해결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돈다. 승객이 기내식으로 채식 식단을 미리 주문할 수 있는지 수속 카운터에 물을 때가 있다. 카운터 직원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바빠서요. 탑승 게이트에 가서 한번 물어보세요.”
탑승 게이트 직원도 기내식에 대해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승무원에게 물어보라고 떠넘긴다. 비행기 승무원 역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일찍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칼슨은 “수직적인 결정 구조 때문에 세 번이나 주어진 ‘진실의 순간’을 모두 망쳤다”고 지적한다. 진실의 순간이란 고객이 회사나 제품 이미지를 결정하는 15초 내외의 짧은 순간을 말한다.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아 기업의 팬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는 “직원들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의사결정을 위해 조직의 보고 체계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면 15초라는 황금 같은 순간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물론 현장 직원의 적극성을 끌어내기 위해선 ‘잘못된 결정을 내림으로써 문제가 생기거나 일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칼슨은 “경영자와 관리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는 직원에게 처벌이 아니라 조언을 줘야 한다”며 “잘못된 의사결정은 교육을 위한 기반으로 사용돼야 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은 인정과 긍정적인 사례를 위한 근거로 활용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스칸디나비아항공이 시간을 잘 지키는 항공사가 된 비결은 무조건 정시에 출발하는 데 있었다. 환승 비행기의 연착으로 승객이 도착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지각하는 승무원이 있어도 최소 승무원 인원 기준만 맞추면 출발하도록 했다.
어느 날 한 유명 스웨덴 경영자가 전용기를 타고 미국 뉴욕의 케네디공항에 접근하면서 신호를 보내왔다. 스웨덴 스톡홀름행 항공편에 약간 늦을 것 같다면서, 비록 노골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비행기 출발을 늦춰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 비행기는 떠나고 없었다. VIP 고객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현장 직원이 혼나는 일도 없었다.
대신 한 직원이 그를 맞이해 30분 뒤에 출발하는 경쟁사인 KLM 항공편을 예약해 뒀다고 했다. VIP 고객은 불평하지 않았고, 스칸디나비아항공은 정시 출발의 명성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m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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