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하현상, 기타를 쥐었던 17살의 마음으로[차트 밖 K문화]

김태언 기자 2023. 8. 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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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TOP 100 차트인, TV 화제성 순위…. 매일 같이 쏟아지는 기사 제목입니다. 시선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예술계도 성공의 기준은 꽤 명확한 편입니다. 그럼 당장 순위권에 없는 이들은 어떨까요? ‘차트 밖 K문화’는 알려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유치할지라도 대놓고 진지하게, 이 시대 예술가들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하현상은 작사 작곡 편곡이 가능한 싱어송라이터로, 5년간 경력을 쌓아왔다. 웨이크원 제공

하현상(25)은 5년 차 싱어송라이터다. 올해는 그에게 각별하다. 데뷔 후 첫 정규앨범을 내놓았다. 처음으로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소속사 웨이크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심스레 질문하면, 신중한 답이 돌아왔다. 고민하던 공백을 뚫고 그는 말했다.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인데, 이번에는 긴장이 되네요.”

서울을 시작으로 5, 6일 열리는 그의 단독 콘서트 투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콘서트 이름은 ‘시간과 흔적’. 정규 앨범명과 같다. “음악생활의 한 챕터가 끝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감회에 걸맞은 이름이다.

5년간의 작업량은 그의 성실함을 증명한다. 그간 발매한 곡만 58개다. 하현상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제가 세상에 내보낸 곡이 꽤 많더라고요.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었다는 점은 칭찬해주고 싶어요. 나머지 부분은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하며 웃었다.

17살 때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를 처음 들은 하현상은 기타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웨이크원 제공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친한 형이 호텔 로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꿨던 아이는 점점 노래가, 기타가, 작곡이 하고 싶어졌다.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건 20살 때. 대학교 휴학 후 인디 신에 머물며 음원을 발매하고 버스킹을 할 무렵이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제작진이 그를 발견하곤 OST ‘바람이 되어’를 맡겼다. 이후 그는 ‘멜로가 체질’, ‘나빌레라’, ‘나의 해방일지’ 등 유명 드라마의 OST를 줄이어 불렀다.

창작자로서의 삶도 놓지 않았다. 하현상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감을 마냥 기다리는 편은 아니다. 차라리 작업실에 가 앉는다고 했다. 언제나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책상에 앉아서 공책을 펴고 연필을 쥐는 것”이라는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의 말을 떠올리면서.

“이 길이 내 길이구나, 그런 생각은 딱히 한 적이 없어요. 계속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하현상의 정규 앨범 ‘시간과 흔적’. 웨이크원 제공

그렇게 5년, 쌓아온 그의 고민이 담긴 것이 이번 앨범 ‘시간과 흔적’이다. 앨범명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시선은 과거로 향한다. 11곡 중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동명의 타이틀곡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앨범 제작기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뭔가를 지나왔구나’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때 이 곡의 주제를 정했다”고 했다.

“작년 하반기, 한창 작업하던 중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왜 더 자주 찾아뵙지 못했나,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생전 가깝게 지내지 못해서 더 그랬어요.”

상실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이번 앨범만은 아니다. 지나온 길을 되짚으며 나온, 조금은 후회 섞인 가사들은 그의 곡 다수에서 발견된다. 주로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 쓰인 노래들이 많은데, 이 점이 비슷한 처지의 청자들에게 몰입과 위로를 준다.

“어느 새벽달이 지나가네/난 오늘도/전하지 못한 말들이 있나/파도에 소리쳐 봐도/들리지 않으니/그렇게 억지라도/웃어 보이는 건/내일이 있어서야” (곡 ‘등대’)

그의 노래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진 않는다. 다만 괜찮아질 앞날을 꿈꾼다. 함부로 예단하지 않기에 더 단단한 지지처럼 느껴지는 이유일 테다. 실제로 하현상이 노래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 말은 곧 “어떻게든 살다 보면 괜찮아질 날이 온다”는 하현상 만의 위로법이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일이 있으면, 그만한 좋은 일이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실제 그는 한 팬으로부터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데 곡 ‘등대’를 듣고 살아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현상은 “예술가로 사는 게 힘들 때도 있는데,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 이럴 때”라고 했다.

하현상은 “곡을 만들 때 외부의 의견을 듣기는 하되 최대한 내 직감을 따라 간다”며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실패하는 것보다는 내 뜻대로 하다가 실패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웨이크원 제공

과거 이야기로 시작해 조금 더 나아질 미래로 끝이 나는 줄거리. ‘5년간 변치 않는 본인의 음악적 뿌리와 변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맨 처음에 써놓았던 글이 있는데, 별로인 것 같아 다른 글들을 막 써보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신 적 있지 않으세요? 여러 다른 시도들도 다 그 나름의 의미와 뜻이 있어요. 그렇지만 결국엔 처음으로 돌아오는 것. 노인이 아이처럼 변하듯 인생 모든 게 그런 것 같아요.”

하현상이 쫓는 처음은 “음악을 하며 느꼈던 순수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첫 순간은 기타를 처음 손에 쥐었던 17살로 돌아간다. 하현상은 17살의 마음으로, 계속 노래할 것을 다짐한다.

“늘 그런 생각을 해요. ‘이번 생에는 노래를 만들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주어진 삶 동안은 진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요.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돼요. 그러면 성공이라 믿어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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