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겋게 익은 청소년들 병원 앞 대기…"코로나 덮쳐 설상가상"
"실내 머물라" 재난문자에도
수천명 참가자들 야외 활동
온열질환 호소 끊이지 않아
간척지서 열린 지난 日 대회
행사전 꾸준히 인프라 구축
의료진은 韓 2배 수준 대비
"휴식 공간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땀이 쉴 새 없이 줄줄 흘러요."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참가자인 베트남 출신 호앙(15)은 연신 땀을 닦으며 이같이 말했다. 4일 오후 2시께 전북 부안 잼버리 행사장. 극한의 더위를 호소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잼버리 병원을 방문했다. 한 참가자는 심각한 온열 증상을 호소해 친구 두 명이 부축한 채 병원을 찾기도 했다. 병원 밖에는 벌겋게 익은 얼굴로 축 늘어진 채 대기 좌석에 일렬로 앉아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날 오후 1시 30분께 부안군에서는 '전국적으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니 낮 야외활동을 자제해달라'는 안전문자메시지를 발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잼버리 델타 지역에서는 행사 참가자 수천 명이 야외에서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낮 최고 온도가 38도를 넘어가고 체감온도가 40도에 달하는 등 폭염 상황은 참가자들을 힘들게 했다.
온열환자가 속출하며 '의료 대란'이라는 비판이 가해지자 조직위원회는 의료진 증원과 병상 확충을 약속했다. 언론에 보도된 잼버리 병원은 적은 의료진과 환자가 뒤섞여 아수라장이었다. 언론의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조직위는 잼버리 병원 취재를 제한했다. 조직위 측은 "일부 기자가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를 무단 촬영해 세계연맹이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며 취재 제한 이유를 설명했지만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려는 의도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잼버리 온열질환자 발생은 새만금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비에선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2015년 일본 잼버리는 올해보다 1만명 가까이 적은 3만3000여 명이 참가한 행사였지만 응급 상황에 대비해 의사 78명이 상주했다. 새만금 잼버리에는 고작 45명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간척지에 대한 대비책에서도 소홀함이 두드러진다. 2015년 세계 잼버리가 열린 일본 야마구치현 키라라하마도 새만금처럼 간척지였지만, 행사 준비 과정에서 야마구치현은 이곳을 개발하기 위해 2001년 '야마구치박람회'를 비롯해 다양한 대규모 행사를 연이어 열었다. 잼버리 대회를 치르기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를 차근차근 구축하면서 준비운동을 했다는 얘기다. 배수 문제를 해결하려고 당시 일본은 땅을 주변보다 높게 올려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도 했다.
반면 부안 새만금은 용지가 갯벌을 개간해 농지로 활용되던 평지라 그늘이 없다는 점, 배수가 불편하다는 점 등 우려 사항이 일찌감치 예고돼 있었다. 올해는 긴 장마 이후 폭염이 찾아오면서 온열질환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지난 폭우에 군데군데 물웅덩이를 노출하고 제대로 메꾸지 못해 모기 등 벌레 떼도 창궐했다.
물론 다수 잼버리 참가 청소년은 씩씩하게 이 사태를 헤쳐나가고 있다. 제이컵 머리 세계 스카우트 연맹 이벤트 국장 겸 공동종합상황실장은 "참가자 중 61%는 매우 만족 또는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오직 8% 참가자만 매우 불만족하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부족한 준비와 인프라를 개인의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영지 내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의료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북도에 따르면 3일 낮 12시 기준 영지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 19명으로 집계됐다. 조직위에 따르면 2일 26명의 한국 잼버리 대원이 코로나19 감염이나 부모의 우려 등을 이유로 잼버리 참가를 중도에 포기하고 귀가했다. 정재훈 가천의대 교수는 "코로나19와 온열질환자가 결합했을 때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다"며 "이에 대응하는 의료 대응 체계를 빠르게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6일 이번 잼버리의 최대 축제인 K팝 콘서트, 11일 폐영식 등 폭염 속 대형 행사가 남아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지안 기자 / 권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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