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살인예고 28건…"주말 약속 취소했어요"
모방범죄 늘고 예고글 봇물
"공권력도 못믿어" 불안확산
주요역·대형몰 순찰 늘리고
폭발물 탐지반 투입되기도
4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일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날 모 인터넷 사이트에 "내일 아침 잠실역에서 20명을 죽일 것"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경찰 측은 오전 7시 50분부터 잠실역 3·4번 출구 앞에 기동대 버스 1대, 소방차 1대, 구급차 1대와 기동대를 배치하며 순찰 강화에 나섰다. 잠실역과 연결된 백화점에도 폭발물 탐지견을 배치하며 경비를 강화했다. 서울 신림역 칼부림 사건이 일어난 지 13일 만에 경기 성남 분당 AK플라자 칼부림으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다음날 풍경이다.
이날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마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고,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살인 예고'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잠실역·한티역·오리역 등이 목표 장소로 지목됐고, 구체적인 범죄 장소와 시간이 적시된 것도 있었다. 안전한 나라로 손꼽혔던 대한민국에서 묻지마 모방범죄 예고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성남 분당구 서현동 토박이라는 20대 디자이너 최 모씨는 "어제 퇴근하는 길에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나는 안전하게 서현역을 지나쳤지만 어디서 모방범죄가 일어날지 몰라 두렵다"고 말했다. 본가가 서현동에 있다는 30대 여성 이 모씨는 "직장 근처에서 자취 중인데 칼부림 사건 당일 오랜만에 본가로 가려고 했다. 빨리 퇴근했으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린다"며 울먹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티역 살인예고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 학원도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인근 지역 학원들은 학생들에게 안전 관련 공지를 전파하거나 조퇴 조치를 내렸다.
최근 묻지마 칼부림은 인적이 드문 장소나 한밤중이 아닌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낮이나 퇴근 시간대에 일어났다. 일상 공간에서 범죄가 잇따르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호신·방범 용품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쇼핑 트렌드 차트'에 따르면 지난 3일 생활·건강 분야 인기 검색어 10위권은 모두 '호신용품' '호신용 스프레이' '삼단봉' '전기충격기' '호신용 가스총' 등 호신·방범 용품이 차지했다.
해당 키워드들은 전날만 해도 모두 순위권 밖이었지만 서현역 일대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이후 폭발적으로 검색량이 늘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30대 남성 김 모씨는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인터넷에서 방검점퍼와 호신용 장우산을 구매했다. 김씨는 "각각 20만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장비지만 신림역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아 샀는데, 칼부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을 보니 사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 여성 전 모씨도 "연달아 칼부림이 일어나고 여기저기서 살인 예고를 해대니 방검복이든 후추스프레이든 나를 지킬 호신용품 하나쯤은 사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주말 약속도 취소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에 강력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이 표적이 되는, 이른바 '소프트 타깃'이 되었기 때문에 민간 경비와 경찰의 합동 대응이 중요하다"며 "112 시스템 외에 지역사회와 정부부처 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지원·관리를 함으로써 범죄가 예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묻지마 범죄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권선미 기자 /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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