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병원이름이 가지는 영향력

2023. 8. 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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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휴일도 경중증환자 받는
'달빛어린이병원' 개명했으면
의사에 야간진료 부담감 강조
자긍심 주고 사명감 발휘하게
'엄마아빠 안심병원'은 어떨지

주변에 있는 병·의원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각 기관의 진료 성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어르신들과 연관된 진료과에선 '바른'이나 '튼튼'과 같이 건강을 기원하는 어휘를 많이 사용하고, 아이들을 진료하는 병·의원은 '키드'나 '아이'가 들어가는 명칭을, 피부과나 성형외과의 경우 깨끗함이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단어들을 선호한다. 의료기관명 네이밍에 대한 고민은 비단 민간뿐 아니라 정부나 지자체도 마찬가지여서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 진료라는 본연의 역할에 매진할 수 있도록 '중증종합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자 했던 적도 있다. 서울시의 경우는 시립병원 이름 앞에 서북, 서남과 같은 권역명을 붙여 시민들이 가장 접근성이 좋은 기관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네이밍의 직관성이 중요한 예로 '응급의료센터'와 '응급의료기관'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리 TV의 한 드라마처럼 '구명병동-생명을 살리는'처럼 직관적인 명칭으로 센터의 성격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소아청소년과 안에도 명칭을 붙이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서울대나 아산병원처럼 대학병원에 소속된 경우 '어린이병원'의 명칭을 붙이고 우리 병원처럼 보건복지부로부터 소아청소년 진료에 특화된 전문성을 인증받은 경우 '전문병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소아청소년을 주 진료 대상으로 하는 일반병원의 경우 '아동병원'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 최근 야간이나 휴일에 진료받기가 어렵다는 기사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이 '달빛어린이병원'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의 운영 취지는 경증·중등증 환자가 야간이나 휴일에 대학병원 응급실을 이용하지 않고도 1·2차 의료기관에서 보다 편리하고 저렴한 의료비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원래 의료기관 이름에 병원이라는 명칭을 붙이려면 최소 30병상 이상의 병실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편의상 의원급이나 병원급 구분 없이 동일하게 사용돼왔다. 의료 접근성과 편리성으로 보호자도 좋고, 의료기관에서는 응급기금과 건강보험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한때 관심을 끌었으나 전폭적인 제도 개선이 없고 지원도 줄어들어 활성화되지 못하다가 최근 소아응급 진료가 어려워지자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됐다.

그런데 좋은 취지로 시작된 달빛어린이병원 사업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참여하기를 주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현실성 없는 낮은 수가와 체력적 한계, 의료진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중 네이밍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예전부터 '달빛어린이병원'이라는 이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없애주어야 한다. 보호자들은 '달빛'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야간에도 진료하는 병원이구나 정도로 이해하겠지만, 현실은 야간이나 휴일에도 달빛을 보면서 일을 하려는 의료진이 없다는 데 있다. 의료진도 한 가정의 일원으로 개인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데 사명감 하나만으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야간, 휴일에 대한 의료 수요가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명칭에서 '달빛'이 빠진들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이라는 것보다는 '엄마아빠(우리아이) 안심(진료)병원'과 같은 보다 밝고 희망적인 명칭을 사용하면 어떨까? 단지 병원 이름 하나 바꾸는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이곳에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간호조무사, 행정직원 등 많은 사람들이 보다 큰 자긍심을 가지고 나름의 사명감을 발휘할 수 있다면 과연 그 혜택이 누구에게로 돌아갈 것인가?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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