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의원 문 닫습니다
"오전 예약은 다 찼고요. 점심시간 끝나고 오후 진료 '대기 접수'를 합니다. 1시 30분에 다시 오세요."
동네 병원에 들렀다 출근하려고 서둘렀는데 허탕을 쳤다. 바로 옆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이라더니, 내과도 이비인후과도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다섯 살 딸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는 후배는 아픈 아이를 안고 이른 아침부터 1시간을 기다린 끝에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순간 6시간이나 대책 없이 앓아야 하는 아이 걱정보다, 회사에 지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 자괴감이 들더란다.
다 큰 어른들이야 어떻게든 버틴다지만, 소아과가 사라지고 있어 걱정이다. 최근 소아 진료 중단을 선언한 모 병원 안내문을 몇 번이나 읽었다. 오죽하면 폐업을 하겠나 싶은데, 댓글에는 병원이 잘못했다는 반응이 심심찮게 보였다. 한 명의 '진상 부모' 때문에 수천 명의 아이와 부모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계속되겠구나 싶어 우울해졌다.
어제는 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메르스 때부터 취재원이었던 의사 선생님은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것 같다"고 했다. 전 세계가 'K방역'을 극찬했던 지난 3년 동안 우리 의료시스템은 안 보이는 곳부터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한민국 의료는 의대를 신설하고 정원을 늘리고 소위 '기피하는 과'에 의무복무를 시키는 임시방편으론 치료할 수 없는 중증 환자가 됐다.
사실 애써 못 본 척 한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빠르게 늙고 있는 나라, 그래서 의료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나라에서 지속불가능한 가성비 시스템을 고집해왔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 의료는 고질적인 적자 구조를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금으로 메우는 구조다. 잊을 만하면 새로운 보험사기 수법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상가상 의료인을 하대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간호사에 이어 의사까지 의료 현장을 등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대한민국 의료 문 닫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보게 될 것 같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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