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영화 밤엔 앵커, 쉴틈 없었죠"
국제기구 꿈꾸던 장학생
뇌동맥류 난독증에 꿈 접고
아나운서 거쳐 영화계로
휴스턴국제영화제 은상 2회
"연출·연기 모두 잡고 싶어"
저녁에는 아나운서, 낮에는 영화과 학생으로 이중 생활을 하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차례 입상한 영화감독이 있다. 지난해 휴스턴 국제영화제에서 단편영화 '거북이 대소동'으로 가족·아동 부문에서 은상을 받은 김경정 감독(사진)이다. 1968년 시작된 휴스턴 국제영화제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영화제로 창의력을 발휘한 독립영화 작품과 영상, 음악 등에 상을 수여한다. 김 감독은 2020년에도 단편 '페어플레이'로 이 영화제에서 학생 부문 은상을 받았다.
리포터, 앵커, DJ 등으로 일하던 김 감독이 영화계에 뛰어든 것은 방송 연출에 대한 흥미에서 시작됐다. 프로그램 출연과 기획, 편집, 기사 작성 등 방송 업무를 하다가 직접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방송 연출을 가르치는 곳을 찾기 힘들어 김 감독은 한겨레 영화아카데미의 영화 연출 수업을 대안으로 선택했고, '암수살인'을 만든 김태균 감독의 지도하에 영화의 세계에 빠졌다. 한겨레 영화아카데미에서 2015년 생애 첫 단편영화를 찍은 김 감독은 이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김 감독은 비슷한 시기 MBC 아나운서에 합격하면서 낮에는 한예종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라디오 뉴스 앵커로 일하는 생활을 병행해야 했다. 김 감독은 "건강이 안 좋아질 정도로 고된 스케줄이었지만 회사에서 배려를 해줘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영화감독과 함께 배우 역할에도 매진하고 있다. 한국대중문화예술원(K-PAEC)에서 연기자 과정을 수료한 뒤 영화 '세상 참 예쁜 오드리'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 tvN 드라마 '군검사 도베르만', KBS 드라마 '미스 몬테크리스토' 등에 출연했다. 직접 감독과 주연 배우를 맡은 로맨스·댄스 영화 '연서'에서는 연인과 사별해 고통받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김 감독은 "영화계 선배들이 감독은 배우를 이해하고 배우는 감독과 한 몸이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좋은 배우로 성장해 연출과 연기 모두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김 감독의 원래 꿈은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이었던 김 감독은 국제기구에 가기 위해 1·2학기에 최우수 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을 만큼 학업에 열중했으나 뇌동맥류로 인한 난독증이 찾아오면서 꿈을 접어야 했다. 활자를 읽는 것이 힘들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오랜 목표와 학생으로서의 일상이 무너지면서 한때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김 감독이 새로운 꿈으로 아나운서를 설정한 것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하며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말솜씨가 없고 외모를 꾸미는 데도 서툰 자신을 보완하기 위해 그런 모습과 대척점에 있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김 감독은 "저는 저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오히려 그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극복하려고 한다"며 "아나운서를 할 때 기른 소통의 방법이 현재 영화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아직 신출내기 영화인인 김 감독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예술성에 집중한 영화보다는 관객들이 편하게 즐기고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하겠다는 설명이다. 김 감독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은 대중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방향에 마음이 간다"고 밝혔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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