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현의 人터뷰] 7. 기르는 농부도, 농장 방문객도 행복한 감성농업을 꿈꾸는 연충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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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확을 목표로 하던 전통농업을 넘어 작물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소비자에게 낭만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절기 이벤트를 함께 하는 농업.
홍천으로 발령받은 기자는 홍천 내면 깊숙이 취재를 다녀오던 길에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단일 품종 토종 맥주 홉 발견 기념 농장 무료개방'이란 현수막을 보고, 차를 돌렸다.
"사람들이 유형의 가치보다 무형의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기고, '좋은 추억'이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에 그 추억을 줄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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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 하이디 치유농장에서 비어페스타 열려
다수확을 목표로 하던 전통농업을 넘어 작물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소비자에게 낭만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절기 이벤트를 함께 하는 농업. 기르는 농부도, 작물을 소비하는 소비자도 건강하고, 행복한 농업. 김옥권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감성농업을 이렇게 소개했다.
홍천으로 발령받은 기자는 홍천 내면 깊숙이 취재를 다녀오던 길에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단일 품종 토종 맥주 홉 발견 기념 농장 무료개방’이란 현수막을 보고, 차를 돌렸다.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자 강이 탁 트여 경치 좋은 곳에 아름다운 하이디 치유농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유형의 가치보다 무형의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기고, ‘좋은 추억’이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에 그 추억을 줄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다.”
#기르는 농부도, 농장 방문객도 행복한 감성농업
맥주 개발을 위한 시음으로 살짝 볼이 발그레한 연충흠(59) 하이디 치유농장 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대뜸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살짝 취기가 돌아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강이 보이는 정자에 흔쾌히 앉으라 권했다.
연 대표는 오래전 TV에서 매실농장을 하는 홍쌍리 여사의 농가경영 모습을 보고, 앞으로의 농사는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 감성농업, 경관농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경관농업은 농지와 농작물을 활용해 조성한 아름다운 경관을 관광자원 삼아 농지와 농업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소득증대, 지역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농업형태를 뜻한다.
하이디 농장 앞에 강과 어우러진 홉 나무, 자작나무밭은 이런 그의 농업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영감을 받아 최근 포도밭을 일궜다. 농장을 찾는 이들에게 ‘청포도 익어가는 시절’을 선사하고 싶어서다. 홍천 시골농장 한가운데서 이육사 시를 들을 줄이야. 국문과 출신인 기자 역시 그의 인문학적 깊이에 감동하고 말았다.
“시의 ‘손님’은 조국이지만 저는 농장을 방문할 ‘손님’을 위해 은쟁반에 잘 익은 포도를 내놓고 싶어요. 그 포도를 먹고 추억을 만들고, 일상의 고단함을 치유하고 가면 좋겠어요.”
농장 이름인 하이디 역시 초등학교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서 따왔다. 책 내용처럼 농장이 치유의 공간이 됐음 좋겠다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홍천에서 나고 자란 연 대표는 춘천농고 자영농과 2기생이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강원도에서 50명을 뽑아 정예의 영농후계자로 만들려던 계획의 일환으로 생긴 과라고 설명한 연 대표는 홍천농고로 입학해 춘천농고 자영농과로 유학한 셈이다. 이후 40여년간 그의 농사인생이 시작됐다.
농고를 나오면 당연히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알았고, 기왕지사 농사를 짓는 거 최고가 되자고 생각한 그는 신갈농민학교를 찾아갔다. 이병화 교장을 만나 단순히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닌, 사상과 철학을 가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마흔여덟의 나이에 상지영서대 조경학과에 진학, 조경산업기사를 취득하며 감성농업, 경관농업을 하기 위한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K-hop 발견, 특허등록까지
어쩌다 맥주, 그러니까 홉 농사를 짓게 됐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홉 역사가 펼쳐졌다. 80년대 국가에서 홉 농사를 장려했단다. 특히 강원도 평창, 홍천 등에서 홉 농사가 성행하다가 90년대 인건비가 올라 대부분 사양됐다. 연 대표 역시 홉 농사를 접었다가 ‘감성농업’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2000년대 들어 홉 종자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홉 농사가 사양되던 시절 산에 내다 버린 홉이 뿌리를 내리고, 스스로 성장해 오던 것을 연 대표가 2015년 홍천 내촌면 물걸리에서 찾아냈다. 서울 맥주 만들기 동호회도 찾아가고, 전국 곳곳에 홉 농사를 짓는 농가를 방문하며 지난 8년간 홉 종자를 증식해왔다.
세계 유일의 유전자를 가진 홉이라고 인증 받아 K-hop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특허청의 식물 특허 등록을 완료했다. 이 홉을 바탕으로 다양한 맥주를 만들어 농장에서 비어페스타도 개최 중이다. 홉은 수면안정제, 음료수의 원료이기도 해 현재 관련회사들과 제품 개발 중에 있다.
이런 사업들은 몇 해 전 면민 체육대회에서 만난 정운희(39) 씨를 통해 할 수 있었다. 운희 씨와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농업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해 이후 찰떡의 사업파트너가 됐다. 정 대표는 “K-hop은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품종으로 아로마 향이 강해 추출했을 때 향이 굉장히 좋다”며 “이를 통해 5가지 종류의 맥주를 만들어 각종 대회에 출품, 상을 타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수면안정제에 관심이 많아 관련 제품을 만드는 데 열성적이다.
연 대표는 정운희 대표를 만나기 이전에도 농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이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청년들이 농업의, 홍천의 큰 자산이라며 보람 있어 했다고.
홉 농사 이전에는 머루, 오미자 등을 키웠다. 설악산 머루주의 원료는 대부분 연 대표의 농장에서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때부터 술의 원료 작물 재배를 해왔다. 술을 잘 마시진 못하지만 국순당 배상면 회장을 찾아가 고급반까지 수료했을 정도로 술을 만드는 원리에 대해 익혀왔다.
“잊혀져가는 토종 품종들을 복원하고 개발해서 사람들한테 선보이고 싶다.”
그는 홉 종자 외에도 토종 종자들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하이디 농장에는 돌배, 병풍치 등 70여종의 토종 종자들이 자라고 있다. 모 대학의 교수가 토종 종자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농장을 견학하고 갔을 정도다.
#‘철학이 있는 삶은 그 깊이가 다르다’
농사는 정대표 같은 의지가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 내어주고 연대표는 이제 슬슬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싶다고 했다. 누가 봐도 이마를 탁 칠만큼 마음에 와 닿는 짧은 글귀를 예쁜 글씨로 직접 새긴 시비를 마을 곳곳에 설치하고 싶단다.
“인문학을 자주 접해야 철학이 생기고, 철학이 있을 때 삶의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살면서 쌓아온 경험으로 가슴을 울리는 한 구절, 한구절들을 비석에 새겨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싶다.”
약속 없이 우연히 기자에게 붙잡힌 그는 한참동안 시, 노래가사, 자신의 철학과 한국농업, 토종종자 등 여러 이야기들 쏟아내며 그야말로 치유의 시간을 선사했다. 주말 저녁 자꾸 생각나는 연 대표의 고운 삶을 더 들으러 비어페스타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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