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공짜점심] 로또 아파트는 없었다

김유신 기자(trust@mk.co.kr) 2023. 8. 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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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 L은 지난달 로또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꿈에 부풀었다. 시세 차익만 최소 4억원에 달한다는 흑석 자이에 청약한 93만명 중 하나가 L이었다. 정부가 공급하는 한강뷰 '로또 청약' 동작구 수방사 용지 공공분양에도 도전했다. 결과는 모두 탈락.

L의 좌절감은 컸다. L에게 청약은 단지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 내 집 마련이 늦어지며 최근 몇 년 새 무주택자 L과 일찍이 집을 산 주변 지인들 간 자산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L이 무주택자로 쓸 수 있는 마지막 반전의 카드는 청약이었던 셈이다.

L은 지난해 여름 결혼식을 올린 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부부가 각각 청약을 신청해 당첨 확률을 높여 보기 위해서다. 혼인신고를 하면 청약에 지원할 때 부부 합산 소득이 적용돼 소득 기준에서 탈락할 수 있는 점도 신고를 미룬 이유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청약으로 반전을 노려보려 했던 L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이 분양가상한제에서 풀리며 분양가가 급격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공사비가 오르며 그동안 분상제로 억눌려 있던 분양가가 뛰어오르고 있다.

2020년 서울의 알짜 입지에서 분양을 실시한 흑석 자이의 분양가(전용 84㎡)는 10억원 수준이었다. 3년이 지난 올해 경기 광명에서 분양한 '광명 센트럴 아이파크'의 분양가(전용 84㎡)는 12억원에 달한다. 이제 경기도에서도 제법 입지가 괜찮은 지역의 국민주택 분양가는 10억원을 가볍게 넘길 태세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여파로 공공분양마저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에만 치중해오던 건설업계의 민낯이 드러난 것으로 평가한다. 이와 함께 공공택지에 적용되는 분양가상한제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분상제로 인해 건설사들이 공사비를 충분히 받을 수 없어 원가 절감에만 골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분양가 인상을 감수하더라도 공사비를 현실에 맞게 충분히 반영하는 제도 개선이 나올 수밖에 없다.

L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분양 물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전국 분양 물량은 작년 동기 대비 43% 줄었다. 이는 2013년 이래 가장 작은 규모다. 분양가는 오르고 있지만 건설사들은 여전히 폭등한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수주에 나서지 않고 있다. 당장 내년 서울의 입주 물량은 1만4000가구로 역대 최소가 될 전망이다. 신규 주택 공급 부족은 예견된 미래다. 시장은 벌써 낌새를 알아채고 먼저 반응하고 있다. 주요 지역의 청약 경쟁률은 수직 상승하고 있다. 향후 분양가가 더 오를 거란 생각에 불안해진 예비 수요자들은 '묻지마 청약'에까지 나서고 있다.

이번 철근 누락 사태에서도 확인했듯이 정부는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움직이기 마련이다. 폭등하는 분양가, 2~3년 뒤 공급 부족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침묵이 길어지는 새 L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L은 '청약 포기'를 선언했다.

[김유신 부동산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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