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LH 혁신안 이번엔 다를까

윤해리 2023. 8. 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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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정부가 다음 주부터 무량판 구조로 시공된 민간 아파트 290여 곳 전수 조사를 진행합니다.

이번 공공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배경에는 건설업계에 만연한 LH 전관 특혜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는데요.

2년 전에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고강도 혁신안을 발표했던 LH가 이번에는 이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경제부 윤해리 기자와 더 자세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 대체 어떤 건지 먼저 짚어주시죠.

[기자]

네, 무량판 구조란 말 그대로 없을 무, 대들보 량, 보가 없는 설계 공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수평 기둥인 '보' 없이 기둥이 바로 천장인 슬래브를 지탱하는 방식인데요.

기존에 많이 쓰이던 공법이 바로 보와 기둥이 천장을 함께 받치는 기둥식 구조입니다.

무량판 구조는 기둥이 바로 천장을 지탱하다 보니까 시공이 간단하고 공간 활용을 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하주차장에 쓰면 층고를 높일 수 있고, 일반 가정집에 사용하면 기존 벽식구조보다 층간 소음을 줄일 수 있어서 지난 2017년 이후부터 무량판 공법이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실제로 LH는 이 무량판 구조를 통해 연간 사업비를 750억 원 줄일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수평 기둥인 보가 없기 때문에 기둥 머리에 천장을 받치는 힘을 분산해줄 수 있는 보강 철근이 없으면 붕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삼풍백화점이나 광주 화정동 아파트, 또 지난 4월 지하주차장이 붕괴한 인천 검단 아파트도 이 무량판 공법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 무량판 구조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라면서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원인은 무리한 불법 증축이었고, 광주 화정동 아파트 역시 설계와 시공 등 총체적인 부실이 문제가 됐습니다.

인천 검단 아파트도 기둥을 받치는 보강 철근이 대거 빠진 게 직접적인 사고 원인이 됐는데요.

실제로 전문가들은 기본을 지키지 않은 설계와 시공이 문제였고 오히려 잘 활용한다면 장점이 더 많은 구조라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최명기 /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단 교수 : 기둥식 구조를 사용했을 경우에 거기에서도 무너지게 되면 그 공법을 안 쓸 거냐,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공법 자체는 물론 단점도 있겠지만, 이 단점을 충분히 보완하는 방법으로 가줘야, 이게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공법이 되는 것이고요.]

[앵커]

보강 철근이 빠졌는데 설계와 시공, 감리 단계에서 이걸 잡아내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진 거죠.

특히 LH가 발주한 아파트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된 단지 명단이 공개됐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죠.

보강 공사가 진행 중일 텐데 입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15개 아파트 단지 가운데 입주를 마쳤거나 입주 중인 단지가 9개나 됐는데요.

명단이 공개된 이후 제가 직접 이 아파트 단지를 다니면서 입주민들을 만나봤습니다.

일단, 국가가 직접 발주를 낸 건데 이렇게 부실시공이 될 수 있는 거냐며 충격을 금치 못했고 보강 공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안전한 게 맞는지 굉장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익 명 / 철근 누락 아파트 입주민 : 기둥이 잘못됐다고 하는 데 불안하죠. 무너질까 봐, 한마디로. 지금 그런 일이 많잖아요. 처음부터 계획대로 잘 돼야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요.]

보강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살펴봤는데요.

보강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되는 기둥 머리에 강재 철판을 덧대서 천장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지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합니다.

15개 단지 가운데 현재 4개 단지는 보강 공사가 완료됐습니다.

나머지 단지 가운데 입주가 이미 완료된 곳들은 주민 설명회를 통해 공사 일정을 협의한 뒤 오는 9월 말까지 공사를 완료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앵커]

이번에 철근이 빠진 아파트 단지 가운데 한 곳은 기둥 전체에서 철근이 빠진 것으로 드러났잖아요.

이런 곳은 계약 철회를 하고 싶을 것 같은데, 실제로 계약 취소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면서요?

[기자]

앞서 국토부는 보강 공사를 우선 추진하되 필요한 경우 손해배상과 계약 해지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입주 전이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세대는 전체 1만여 세대 가운데 3천 세대쯤 됩니다.

대표적으로 파주 운정 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8월 입주가 이미 시작됐고, 미계약분에 한해 이번 달 600명이 추가 입주를 앞두고 있었는데요.

LH는 계약 해지를 원하는 입주 예정자들은 선납한 계약금을 돌려줬습니다.

문제는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런 계약 해지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입주 예정자들만 속앓이를 하는 상황입니다.

이미 입주를 한 세대도 손해 보상이나 이사 비용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직 실제로 보상을 받은 곳은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위약금을 감수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세대도 나오고 있고 입주자들이 자체적으로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LH와 보상 방안에 대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입주민들 사이에선 보상이나 계약 해지 방안 같은 구체적인 대책 없이 급하게 명단부터 공개하다 보니 이런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다시 돌아가서, 이번 사태 배경을 짚어보죠.

설계 단계에서부터 철근이 빠진 게 10곳, 시공 단계에서 문제가 된 게 5곳인데,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모든 과정에서 이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LH 퇴직자들이 포진한 업체들이 관련돼 있다 보니, 전관 특혜 의혹도 불거졌죠?

[기자]

이 사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LH 퇴직자들이 설계, 시공, 감리 업체에 재취업하는 건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LH 사장조차 오히려 LH 출신 직원이 없는 관련 업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인정할 정도인데요.

실제로 이번에도 문제가 된 아파트 단지 15개 가운데 13곳이 LH 출신 임직원이 근무한 업체가 설계를 맡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는 2개 단지 이상을 중복으로 수주한 전관 업체도 있었고,

모든 기둥에서 철근이 빠져 있었던 경기도 양주 회천 아파트는 전관 업체가 설계와 감리를 모두 맡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심지어 광주 화정동 아파트 감리를 맡아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던 전관 업체가 또다시 이번 철근 누락 아파트 두 곳의 감리를 맡았던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업체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기간 동안 영업 정지 처분이 효력을 잃게 되면서 새로운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허점이 있었던 겁니다.

[앵커]

지금도 LH 퇴직자는 유관 업체에 취업을 제한하고 있잖아요.

이게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는 건데, 또 어떤 혁신안을 내놓겠다는 겁니까?

[기자]

지난 2021년 LH 직원들이 집단으로 내부 정보를 활용해 부동산 투기를 해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LH는 퇴직자 전관예우와 같은 악습을 뿌리 뽑겠다며 혁신 방안을 내놨는데요.

퇴직자 취업 제한 대상을 2급 이상 고위직으로 확대하고 공사 입찰 등을 결정하는 심사위원회에 LH 직원을 배제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혁신안을 내놓은 지 불과 2년 만에 또다시 전관 특혜 의혹이 불거진 겁니다.

LH는 이번 기회에 전관예우 관행을 뿌리 뽑지 못하면 조직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는데요.

우선, 반 카르텔 공정건설 추진 본부를 설치해 설계와 시공, 감리 전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행위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부실시공이 한번 적발된 업체는 앞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퇴출 수준으로 강력하게 제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업체가 상호만 바꿔서 다시 입찰에 참여할 수도 있어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또 문제가 된 15개 아파트 단지 설계, 시공, 감리에 참여한 업체 70여 곳에 대해 전관 특혜 의혹이나 담합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이한준 /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 모든 업체에 대해서 수사 의뢰할 예정이고 부실 시공이 확인될 경우에 구상권을 청구할 거고 아울러 이런 업체에 대해선 앞으로 저희 LH 설계나 시공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LH는 입찰 시 퇴직자 명단을 제출받고, 퇴직자가 없는 업체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아파트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5곳은 LH가 직접 감리를 맡은 곳이거든요.

설계 발주는 물론 시공, 감리 전 단계에 걸쳐서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LH가 관리, 감독에 소홀해 이번 사태를 자초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국토부 또한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국토부는 오는 10월 건설 업계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앵커]

다음 주부터는 무량판 구조를 사용한 민간 아파트 단지 전수조사가 이뤄지게 되죠.

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는 건가요?

[기자]

조사 대상은 현재 시공 중인 단지 105곳과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곳을 포함해 모두 293곳입니다.

점검 대상은 지하 주차장뿐 아니라 주거 동까지 확대했고, 비용은 시공사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주거 동에 무량판을 쓴 아파트 단지는 105곳으로 가구 수로 따지면 15만 세대에 달합니다.

이렇게 이미 입주한 단지의 경우 점검하려면 페인트나 벽지를 제거해야 해 입주민의 동의를 받는 절차가 필요한데요.

정부는 당장 다음 주부터 정밀 안전 진단에 착수해 오는 9월 말까지 점검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불과 두 달 안에 300곳에 달하는 아파트 단지를 어떻게 정밀 안전 점검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요.

국토부 관계자는 아파트 단지마다 표본을 뽑아서 조사한 뒤 이상이 있으면 전체 단지로 조사 범위를 넓히는 거라,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전수 조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앵커]

이번에 철근 누락 아파트 단지 명단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컸는데, 건설사들도 긴장하는 분위기라고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2017년부터 무량판 공법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이후로 이 공법으로 시공된 아파트 단지들이 늘었는데요.

건설사들은 이 공법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실시공 아파트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무량판 공법으로 설계된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민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불안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수 조사가 끝나고, 철근 누락 아파트 명단이 공개되면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는데요.

정부가 민간 아파트의 경우 철근이 빠진 아파트 단지명을 공개하진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 연말까지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위반 행위가 적발된 경우 설계, 시공, 감리 업체를 모두 엄중하게 처벌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앵커]

무엇보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어떤 방안이 논의되고 있나요.

[기자]

국토부는 무량판 구조를 특수 구조물에 포함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특수 구조물이란 구조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건축 기준과 절차를 강화한 건축물을 의미하는데요.

여기에 포함되면 구조 기술사가 설계와 감리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 심의가 의무화됩니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정비하더라도 전문 인력이 부족한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는데요.

우리나라 구조 기술사는 1,200명 정도로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고 합니다.

건설 안전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인 만큼 이번 기회에 업계에 만연한 LH 전관예우는 물론, 설계와 시공, 감리 전 단계에서 관리 감독이 소홀한 총체적 부실 문제를 바로 잡아야겠습니다.

YTN 윤해리 (yunhr0925@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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