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개 프로그램 중 170개 취소···지친 청소년들 그늘서 휴식만

부안=이승령 기자 2023. 8. 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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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폭염에 운영 차질
무더위에 피부발진·온열환자 늘어
尹 "냉방버스·탑차 무제한 공급하라"
정부 예비비 69억 지원·얼음물 제공
韓총리 "대회 마지막까지 안전책임"
"간척지라 비오면 펄밭 마르면 사막"
사전 문제 제기에도 뒷북대응 비판
일각선 "즉각 중단해야" 지적도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4일 전북 부안군 잼버리 야영지 내 덩굴터널에서 무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부안=연합뉴스
[서울경제]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진행되고 있는 ‘2023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연이은 폭염으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주최 측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폭염 대응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예비비를 편성해 긴급 지원에 나섰지만 야영장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개영 3일 차를 맞은 4일 오후, 잼버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전북 부안군 잼버리 야영장에는 섭씨 36도의 무더위가 이어졌다. 야영장 밖으로 나온 대원들은 그늘이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오기도 했다. 한 잼버리 참가자는 신발까지 벗은 채 미지근한 대리석 바닥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더위에 어제 하루에만 1486명의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다. 잼버리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이들 중 벌레 물림이 383명, 피부 발진이 250명, 온열 증상자가 138명으로 집계됐다. 개영 이후 온열질환자는 이미 1000명을 넘어선 상태다. 잼버리가 끝나는 12일까지 낮 최고기온이 34도 이상 될 것으로 예보되는 상황에서 뜨거운 햇볕으로 인한 피부 발진 환자와 온열 증상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잼버리 야영지는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간척지이기 때문에 자연 그늘을 찾아볼 수 없는 광활한 개활지다. 주최 측에서 사전에 설치하겠다고 한 7.4㎞의 덩굴터널은 덩굴이 자라지 않아 차양막을 덧댄 미완성의 상태로 남아 있는 한편 1720개의 그늘 쉼터는 체감온도 35도를 넘나드는 열기와 50%가 넘는 습도에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이에 대해 야영장 인근의 주민들은 예견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잼버리의 한 프로그램에서 현장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변산면 주민은 “저기는 비 오면 사람도 못 들어가는 곳인데 풀이 없는 지역의 경우 마르면 그냥 사막”이라며 “모래 먼지가 많이 날아다니니까 애들한테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애들이 프로그램을 하러 오면 풀이 푹 죽어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변산면 주민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이제 조치를 취하면 뭐하냐”면서 정부의 뒤늦은 대응을 비판했다.

상황이 이런 탓에 이날 예정된 잼버리 프로그램 173개 가운데 170개가 취소됐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취소되면서 스카우트 대원들은 덩굴터널과 쿨링버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잼버리 기간 동안 폭염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조직위 측은 “새만금은 바닷가에 위치해 바람이 시원하게 불기 때문에 그늘만 조성되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며 선을 그었지만 실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는 등 비판이 지속되자 부랴부랴 대비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사실상 모든 부처를 동원한 총력전에 나섰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스카우트 학생들이 잠시라도 시원하게 쉴 수 있는 냉방 대형 버스와 찬 생수를 공급할 수 있는 냉장 냉동 탑차를 무제한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긴급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잼버리대회 지원을 위한 69억 원의 예비비 집행안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관계 부처에 “예비비 등을 즉각 집행해 온열 환자 예방 등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가 신속히 마련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참가국들이 항의성 서한을 발송하고 퇴소자까지 나오자 당초 6일 새만금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한 총리는 이날 현장을 찾아 “중앙정부가 마지막 참가자가 새만금을 떠날 때까지 대회 안전관리와 지원을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대회 운영 미숙이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외교부는 긴급 TF를 구성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여가부 자체 전용 9억 원을 통해 손선풍기·모자 등을 참가 대원들에게 지급하고 이미 전라북도에 교부된 특별교부세 30억 원은 온열 환자 응급조치 물품 지원 등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이 밝힌 추가 지원 대책은 대부분 온열질환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그늘막 추가 설치 △냉장·냉동차(10대) 보급 및 냉동 생수(1인당 1일 5병) 제공 △참가자 전원에게 쿨링마스크, 모자, 자외선 차단제, 아이스팩, 염분 알약 등 개인 폭염 대비 물품 지급 △휴식용 버스 5대 확보 및 쿨링버스 130대 배치 △의사 추가 배치 및 잼버리 클리닉 운영 시간 연장 등이다. 이 외에도 샤워장·화장실 수시 정비를 위한 청소 인력 확대 투입과 해충 구제를 위한 방제 인력 추가 투입 방안도 담겼다. 또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제공하는 급식량을 늘리고 간식을 추가로 제공한다.

일각에서는 잼버리 자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날 “세계 청소년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잼버리의 즉각 중단을 요청하는 공문을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어 “집중호우 직후에 펄을 매립해 만든 야영지에서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잼버리 참가자들의 꿈을 충분히 펼칠 여건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5만여 명에 달하는 세계에서 온 청소년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안=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이승배 기자 b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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