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미술사 여행 …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네
프랑스 여류 화가 엘리자베트 루이즈 비제 르브룅이 그린 '딸 줄리의 초상'(1786). 줄리는 무덤덤한 옆모습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지만, 거울 속 아이 얼굴은 무언가 이해하는 듯 미소를 띠고 있어 묘하다. 그저 사랑스러운 아이의 그림이라며 넘길 수도 있지만, 1762년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이 출간되면서 어린이가 어른과 구별되는 존재로 표현되기 시작했음을 알고 나면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20세기에 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있었다면, 21세기에 적합한 미술사 책이 나왔다. 정치적 올바름(PC)이 중요해진 시대 변화에 발맞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 화가는 물론 아시아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까지 폭넓게 미술사 영역을 펼친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미술사 명문인 런던 코톨드 미술학교 출신으로 워싱턴DC 국립미술관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테이트 브리튼에서 '케네스 클라크: 문명을 찾아서'를 기획한 미술사가다.
이 책은 초기 인류의 동굴벽화부터 동시대 현대미술 거장 게르하르트 리히터까지 수만 년에 걸친 방대한 미술사 겸 인류사를 파노라마처럼 다룬다.
이미지 창조라는 측면에서 인류가 동물 대신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상당히 늦었다. 최초로 등장한 인간 이미지가 2만6000년 전쯤 만들어진 출산과 분만을 강조한 여성 신체상이다. 하지만 로마 시대 찡그려진 얼굴 등 다채로운 표현으로 진화했다.
기독교 종교화와 함께 번성한 서양미술은 템페라와 유화 등 재료의 발명과 함께 더욱 발전한다. 사진술의 등장으로 많은 화가의 주 수입원이었던 초상화가 쇠하고 인상주의 등 심상을 담는 20세기 회화로 진화한 과정도 알게 된다.
18세기 스페인 화가 고야가 그린 그로테스크한 그림과 함께 그보다 앞선 중국 양저우의 괴짜 화가 나빙의 해골 그림 '귀취도'(1766)를 나란히 제시해 동서양을 연결하는 내용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처럼 독특한 개성의 작품을 아주 유명한 작품들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책 속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직접 보기 위해 일본, 멕시코, 카이로, 마드리드, 중국, 모스크바 등 세계 각지를 4년 이상 여행했다고 한다.
다만 동서양 문화가 서로 연결되는 대목이 의미 있지만, 여전히 서구미술사 위주이고 한국 사례는 찾기 힘든 게 아쉽다. 6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이 부담되니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읽길 권한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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