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젊은세대가 '왼쪽'으로 간 까닭은

선명한 좌파 공약으로 주목받았던 버니 샌더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과 그 후예들인 밀레니얼 대표 정치 신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풀뿌리 진보 운동을 이끄는 알렉산드라 로하스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원들(JD)' 상임이사(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합뉴스·보그

미국 정치에 뉴레프트(New Left)의 새바람이 불어온 건 2018년 중간선거 때였다. 저자는 AOC로 불리는 28세 정치 신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그때 처음 만났다.

자동차 정비소 구석에 마련된 선거운동 본부는 대학 기숙사 휴게실 같았고, 자원봉사자들은 이어폰을 꽂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선거캠프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모두가 무아지경으로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할리우드 스타와 함께 일하는 듯 보였다.

AOC를 만난 뒤 그는 기존 정치와 온전히 다른 점을 발견했다. X세대는 정치에 관심을 두기엔 너무 쿨했고, 이들의 빈자리를 열정 넘치는 밀레니얼 세대가 대체하고 있었다.

2017년 작가 제사 크리스핀은 정치 현실을 "어떤 TV 프로그램이 좋은 방송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10년짜리 대화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선거 정치와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꾸는 급진적 동력이던 시절이 지나가면서 진보 정치를 지지하는 젊은 세대는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는 일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이 불타오른다 레이나 립시츠 지음, 권채령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 1만8500원

애틀랜틱, 네이션 등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 레이나 립시츠가 쓴 이 책은 미국 정치를 흔들고 있는 젊은 진보 정치의 물결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선명하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미국 젊은 좌파에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 지형도가 세계 모든 국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같은 해 저자는 23세 알렉산드라 로하스도 만났다. '정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원들(JD)'을 이끄는 그는 패션잡지 보그에 실려도 손색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성으로, 사람들에게 비판받고 평가받는 일에 익숙했다.

'좋아요'를 두고 경쟁하는 일은 이들 세대에 익숙한 일상이었고, 자신을 소셜미디어에 맞는 상품으로 포장해야 하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5만달러가 넘는 학자금에 분노하고 버니 샌더스에게 감동한 '열병에 걸려 미친 버니 지지자들'의 일원이 돼 자원봉사에 나섰다.

이 책은 밀레니얼 진보 정치가 태동한 시기에 주목한다. 9·11테러 이후 10년 이상 호전적 애국주의가 휩쓸면서 전국구 좌파 후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환경에서 젊은 정치인들은 그야말로 '뉴키즈 온 더 블록'처럼 등장했다.

계기는 2015년 버니 샌더스 열풍이다. 마구 뻗친 백발에 싸구려 기성복을 입고 낡은 이념으로 무장한 사회주의자가 어떻게 소셜미디어 세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샌더스 지지자의 주류는 여성과 비백인이다. 그들은 샌더스가 인기에 영합하려 신념을 굽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다운 모습을 유지하는 데 매력을 느꼈다.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를 깨운 데는 사회 환경 변화도 있었다. 20대는 두 번의 경제위기를 겪었고 경찰 폭력에 대항하는 흑인 인권 시위를 경험했다.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총기 사건을 겪은 그들은 샌더스 대선캠프에서 자원봉사하며 '진짜 운동'의 경험을 통해 각성했다.

역사학자 맷 카프는 샌더스가 청년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비결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대학 등록금 폐지와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를 내건 민주당 역사상 가장 가차 없는 이념적 공약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만이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가난해진 청년 세대의 불안을 진지하게 이해한 후보였다. 타협하지 않는 좌파 노선이야말로 샌더스 열풍의 비결이었다.

이 책은 청년이 운영하고 운동을 이끄는 단체들의 면면을 분석한다. 지역으로 파고든 풀뿌리단체와 활동가들이 주류인 신좌파의 특징을 저자는 찾아낸다. 젊고 젠더 다양성이 풍부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뛰어나며 지역사회와 인연이 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대중을 공략하기 위해 사회주의자란 꼬리표를 잠시 내려놓기도 한다.

무엇보다 고립된 개인들의 불안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사람들을 연결하는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 열정적인 젊은이들이 민주당을 왼쪽으로 움직이면서 지역민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변화는 현실에도 뿌리내린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회원이 급증하고, 10대 잡지 틴보그에 마르크스 특집 기사가 실리고 있다. 이 책은 이를 50년 만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라고 진단한다. 결론적으로 깜짝 돌풍에 그쳤던 샌더스의 캠페인은 미국 정치 지형을 바꿔놓았음을 주지시킨다.

노인들의 대결로 향하고 있지만, 내년 미국 대선의 캐스팅보트도 젊은 좌파들이 쥐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흥미진진한 보고서의 진단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김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