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는 왜 K장녀 이야기인가[MD칼럼]

2023. 8. 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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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동의 씨네톡]

류승완 감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대사는 “책임”이다.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당구장 패사움이 벌어지기 직전에 한 고교생은 불을 끄고 문을 걸어 잠그면서 주인과 입씨름을 한다. 주인이 “야, 불은 왜 꺼?”라고 하자 덩치가 크고 안경을 쓴 고교생은 “제가 다 책임질게요”라고 답한다. “더이상 얽혀들면 나도 책임 못 져”(‘피도 눈물도 없이’), “나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만큼 큰 사람이 되질 못해”(‘다찌마와 리’), “내 동생을 행복하게 해준댔으면 책임을 져야지”(‘짝패’) 등에서도 같은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2021년에 개봉한 ‘모가디슈’는 ‘책임’을 지는 영화다.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렸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남한의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는 모든 책임을 지고 한 명의 부상자와 낙오자 없이 본국으로 귀환시켜야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이렇듯 류승완 감독의 영화엔 언제나 책임지는 사람이 등장해 위기를 헤쳐나간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장남 콤플렉스’를 고백했다. 막노동, 삐끼 등으로 돈을 벌어 전설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찍었다. 장남으로 가족의 생계도 걱정하는 한편, 자신의 꿈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최근 개봉한 ‘밀수’에서 류승완 감독의 고뇌가 투영된 인물은 진숙(염정아)이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진숙은 절친인 춘자(김혜수) 등 해녀들과 밀수에 가담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는 비극을 겪는다.

진숙은 해녀들의 리더로 온갖 책임감에 짓눌려있다. 밀수에 손을 뗐다가 다시 하는 이유도 후배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도 “책임감”이다. 그는 마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나도 집안의 장녀다. 리더십은 없지만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진숙 입장에서 볼 때 ‘밀수’는 K장녀의 이야기다. 류승완 감독은 “나도 장남으로 살아가다보니 무의식적인 본능으로 나온다”면서 “진숙을 보면 짠하다. K장녀의 힘든 현실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책임을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위기를 만나 끝까지 생존하는 이야기”는 류승완 감독 영화의 주요 테마 중 하나다. ‘모가디슈’의 한신성은 “살 사람은 살아야겠죠?”라고 말한다. 림용수 역시 “이제부터 우리 투쟁 목표는 생존이다”라고 선언한다. ‘밀수’의 진숙은 해녀들의 생존을 위해 춘자와 손잡고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조인성), 고향의 밀수꾼 장도리(박정민)를 상대로 위험천만한 작전을 펼친다. 류승완 감독은 책임과 생존을 양손에 쥐고 전속력으로 돌파하는 이 시대의 장인이다.

[사진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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