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의 교과서 이충복
제2의 전성기 위한 새로운 도전
[주간한국 정완주 기자]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컵대회를 주관하는 세계캐롬연맹(UMB)의 본선 시드는 세계랭킹 14위까지 주어진다. 시드권을 받으면 대회 참가를 위한 항공편, 숙박 등 모든 경비가 지원되는 특전을 누릴 수 있다. PPQ(2차 예선)부터 거치지 않고 바로 32강을 시작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강자들이 계속 군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의 모든 3쿠션 선수들은 시드 확보를 위해 시합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당구의 '살아 있는 교과서'라고 불리는 이충복(49·하이원리조트) 선수는 꿈에 그리던 시드 진입을 앞두고 PBA 진출을 선언했다. 당구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에 안주 대신 새로운 도전을 결심한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농구 선수가 꿈
사회인 야구와 골프도 수준급
이충복은 운동 능력이 타고났다. 서울 은평구 불광초등학교 시절에는 육상부 선수였으면서 씨름도 섭렵했다. 소년체전 대표를 뽑는 서울지역 800m 선발전에서 아쉽게 3등에 그쳐 분루를 삼키기도 했다. 2등까지 주어지는 선발전에 턱걸이로 탈락한 것이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에 매진했다. 방과 후에 종로의 YMCA를 찾아 거의 매일 농구와 수영 등 스포츠를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키가 더 자라지를 않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운동이 좋아서 체육고를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 야구 명문인 충암고로 진학했어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농구도 하고 당구도 치면서 운동에만 빠져들었던 시절이었죠."
결국 이충복은 대학 진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군대를 다녀온 뒤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구는 4구 수지로 500점을 놓는 실력을 갖췄지만 단지 취미로 즐기는 수준이었다.
"사회 첫걸음을 고모부가 운영하던 광고회사에서 시작했습니다. 낙하산 입사였죠. 수금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주말이 따로 없을 정도로 일이 힘들었어요. 영업직이다 보니 월급보다 나가는 지출이 더 많아 빚만 늘었고 적성에도 맞지 않았죠. 그러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들어서 회사를 나왔어요."
그때가 외환위기가 시작된 암흑의 1997년이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그는 알량한 당구 실력을 믿고 용돈이나 벌 요량으로 내기 당구의 일종인 소위 '죽방'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얼마 되지도 않던 돈도 금세 바닥이 났다.
"동네에서 나름 잘 친다기에 우쭐했던 우물 안 개구리였죠. 대충 재미로 치던 실력으로 매일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고수들과 붙어서 이기려고 했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돈을 다 잃고서는 폐인처럼 은둔생활을 이어갔어요."
하지만 이충복은 은둔하면서도 칼을 갈았다. 당구장에 틀어박혀 미친 듯이 무한반복의 연습을 시작했다. 공 배치가 1~2cm만 틀리게 놓여도 다른 공략이 필요한 배치로 변하기 일쑤여서 정확한 배치를 반복해서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독학으로 자세 교정과 스트로크, 배치 해법 등을 끊임없이 몰두했다. 어느 정도 해법을 찾은 그는 은둔생활을 접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친한 친구한테 무작정 돈을 빌려 여기저기 당구장을 전전하면서 고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이전처럼 무기력하게 패배하기는커녕 승승장구하면서 나름 이름이 나기 시작했죠. 2년 정도 지난 2000년대 초 무렵에는 아예 죽방에 끼워주지 않을 정도였어요. 정식 선수들과의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았으니까요."
얼떨결에 시작한 당구 선수
브롬달 꺾는 이변으로 전환점
이충복은 직장을 다니면서 사회인 야구에 흠뻑 빠져들었다. 워낙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야구 실력은 출중했다. 작심하고 야구공을 던지면 구속이 시속 130km가 나올 정도로 어깨도 강했다. 일반인이 구속 100km를 넘는 경우는 거의 드문 일이다.
"투수와 포수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야구를 했는데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였죠. 특히 투수는 팔과 어깨 근육을 다칠 가능성이 커 당구에 혹시나 지장을 주지 않을까 해서죠. 다른 팀에서 스카우트가 들어올 정도로 실력은 준수한 편이었어요. 그 팀 회사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겠다는 제의였지만 응하지는 않았죠."
당구도 그에게는 좋아하는 스포츠 중의 하나였다. 다만 전문 선수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소한의 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환경 탓이다. 하지만 당구는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고인이 된 후배 김경률 선수가 계속 선수 등록을 권유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동호인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자 입회비도 없이 선수 등록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주변 지인들이 다른 선수들도 직장 다니면서 선수 활동을 한다고 계속 꼬드기는 바람에 아무 생각 없이 선수로 등록을 했죠."
목적의식이 없는 선수 생활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이나 경기권이 아닌 지방에서 열리는 전국대회는 아예 참가를 포기했다. 굳이 경비와 시간을 허비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당시만 해도 이충복은 랭킹 순위가 매겨지지 않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7년 수원에서 열린 월드컵대회가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수원 3쿠션월드컵 1회 대회 16강전에서 '4대 천왕' 토미욘 브롬달(스웨덴) 선수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킨 것. 앞서 32강전에서는 2006년 세계 3쿠션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에디 먹스(벨기에)를 누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근저족막염을 앓아 8개월간 당구를 거의 치지 못한 상황에서 나간 대회인데 마음을 내려놓아서 성적이 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방송 경기라 대번에 유명 인사로 떠올랐죠. 그 덕분에 결혼도 가능했어요. 아내랑 6~7년째 연애 중이었지만 당구 선수라는 직업 때문에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제가 방송에서 뜨자 쉽사리 결혼 승낙을 받았던 거죠. 그때서야 당구가 제게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진지하게 선수 생활에 임하는 계기가 된 겁니다."
이충복은 그 이후 모든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2016년에 위기가 찾아왔다. 위장과 췌장 주변에 큰 종양이 발견됐는데 암세포일 가능성이 컸다.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열흘 동안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매일 지옥을 오가는 고뇌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암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면서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
"그 열흘 동안 삶에 대한 회의와 공포, '다 부질없는데 왜 바둥바둥 살았을까'라는 후회 등 만감이 교차했는데 그 이후 마음을 많이 내려놓고 사는 계기가 됐죠."
전화위복일까. 수술 후 약 8개월 동안 큐를 내려놓은 이충복은 2016년 LG 유플러스컵 3쿠션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마음을 비우고 대회에 임했던 것이 주효했다.
"'정답'은 없지만 '정석'은 있다"
이충복표 당구 아카데미 목표
이충복에게 PBA는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다. 동기부여가 점점 희미해지는 시점에서 고민이 시작됐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건강 문제였다. 지난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월드컵대회를 다녀온 후 독감이 걸리면서 대상포진과 안면마비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해외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오가는 일정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차 적응을 위한 체력 부담이 크고 장시간 국내를 비워야 하는 상황도 여의치 않았는데 그러다 탈이 난 거죠. 그 상황에서 우연히 PBA 측과 연결돼 제안을 받고 바로 프로 전향을 선택했습니다. 시흥시체육회 소속으로 안정적인 연봉이 보장되는데 새로운 프로 환경에 적응하는 모험을 감수하기에는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고 그래서 프로 세계에 도전하고자 결심을 굳힌 거죠."
사실 그는 2017년 이후 해외 월드컵대회 참가를 중단했다. 건강 문제와 대회를 한 번 다녀오는데 드는 수백만원대의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4년 반 만인 지난 2021년부터 월드컵대회 참가를 재개하면서 성적을 끌어올렸다.
급기야 이듬해 네덜란드 베겔에서 열린 월드컵대회 4강에서 세계랭킹 1위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선수를 격파한 이충복은 개인 통산 최초로 월드컵 결승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15년 전 이충복을 스타로 만들어 준 브롬달. 아쉽게도 이충복은 브롬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4년여 공백을 깨고 성적을 내자 PBA 진출을 선언한 지난 5월 이충복의 세계 랭킹은 16위였다. 시드권을 확보하기 직전이었지만 그의 결심을 뒤바꾸진 못했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당구 아카데미 설립이다. 당구 선수 이충복의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당구 학교를 운영해 후진 양성과 당구 저변을 확대하려는 의도다.
"아카데미는 단순히 당구 기술만 알려주는 학원 개념이 아니라 당구 에티켓부터 3쿠션의 원리와 이론 등을 과학적인 시스템 체계로 구축해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정석'은 가르칠 수 있다는 개념이죠. 그래서 골프처럼 영상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이충복은 다양한 방송 출연을 마다하지 않고 레슨 프로그램을 촬영했다. 또한 개인 유튜브 '복TV'를 2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유튜브 활동은 돈을 벌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포인트 레슨이 아니라 당구의 원리와 개념을 통해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는 기준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였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힘만 들고 재미와 흥미를 유도하지 못해요. 그래서 지금은 유튜브를 중단했지만 언젠가는 제가 구상하는 아카데미를 오픈할 겁니다."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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