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기이자 문제적 시대…2020년대에 살아 움직이는 1990년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1975년생 전모 씨는 1990년대를 관통하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보냈다. 신세대·X세대로 불렸고 오렌지족의 일탈이 사회 문제란 뉴스를 봤다. '교실 이데아'와 '컴백홈' 등 서태지와아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PC통신·'삐삐'(무선호출기)란 신문물도 경험했다. 대학에 입학해 성수대교(1994)와 삼풍백화점(1995) 붕괴를 목격하고, 졸업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바늘구멍 같은 취업 문을 뚫었다. 이 시기를 조명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짙은 향수를 느낀 세대다.
1990년대는 시대적 단절과 변화의 시대였다. 민주화를 통한 정치적 자유화, 대중 소비를 통한 경제적 자유화가 큰 축을 이뤘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약화했으며 검열 기제가 줄어들었다. 고도성장에 따른 대중 소비재가 범람하고 영상 매체 확산으로 문화적 자유의 감각이 고취됐다. 세계화, 정보화, 디지털화, 신자유주의 물결이 뒤따랐다.
그러나 낭만적 색채가 짙었던 90년대는 고도성장의 종언 같은 대형 사고와 IMF 사태를 맞닥뜨리며 세기말을 장식했다.
최근 출간된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는 "90년대는 지금 시대를 규정 짓는 여러 조건들의 근기원"이라며 현재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위기와 논쟁의 밑그림이 그려진 시대라고 진단한다.
사회학자인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를 조망하고자 사상과 문화의 황금기이자 좌절과 위기로 점철된 90년대를 돌아본다. 그 매개로 90년대에 담론을 생산했던 문예지, 학술지, 계간지 등 잡지를 택해 신선하다. 이를 통해 문학, 사상, 문화, 세대, 디지털, 진보, 여성(페미니즘) 등 2000년대와 긴밀한 주제를 고찰했다.
저자에 따르면 90년대 초중반 거셌던 젊은 세대 담론은 2000년대 들어 88만원 세대, 희망고문 세대, 삼포 세대, N포 세대 등으로 변주했다. 90년대 말 한국 경제 추락으로 사회 불평등이 심화하며 담론의 내용은 달라졌지만, 지금의 MZ세대에 대한 규정처럼 젊은 세대를 대상화하고 평가하는 방식은 공통점이다. 이에 반해 90년대 후반 등장한 386세대론(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은 산업화 세대가 떠난 자리를 꿰차며 486·586세대론으로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민중문화가 쇠퇴하고 지금처럼 대중문화가 번창한 것도, 10~20대가 대중문화 소비 주체로 부상한 것도 90년대다. 각종 대중매체의 범람과 PC통신, 인터넷, 이동통신의 보급으로 대중문화가 확장했다.
소비 코드가 강화하며 문화가 음악, 영화, 패션 등의 상품을 누리는 '향유의 대상', '자본축적의 영역'이 된 것도 지금의 흐름과 닿아 있다.
또한 IMF 사태가 끝났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제적 위기가 초래한 시스템 속에 있다. 노동 유연화와 비정규직 보편화로 소득 불균형이 커졌고 중산층이 무너졌다. 자기계발, 스펙 쌓기, 재테크 열풍이 일었고, 2000년대 들어 부자되기 콘텐츠가 넘쳐났다. 개인이 무장해야 하는 사회가 됐다.
90년대는 페미니즘 등 새로운 사상이 도래한 시기이기도 하다. 출판계에선 1차 페미니즘 현상이 나타났고, 양성평등·동성애 등의 이슈화와 함께 젠더 갈등도 시작됐다.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군제대자 가산점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일부 남성은 헌법소원을 낸 이화여대 졸업생 등을 온라인에서 공격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성적 대결이 사회적으로 노골화된 거의 첫 번째 사례이자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표현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짚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저자는 "지난 시대를 부표로 삼을 수 있다면, 지금 우리는 그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흘러왔는지를 얼마간 알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제언한다.
윤여일 지음. 돌베개. 340쪽.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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