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36도 폭염’ 경고에 “나무 심겠다” 답한 전북도…잼버리 대회만 열면 장땡?

고귀한·김창효 기자 2023. 8. 4. 16: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리고 있는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장의 열악한 모습. 지난 2일 이곳에서 열린 개영식에선 온열 질환자가 수십 명 발생해 소방당국의 행사 중단 요구가 있었지만, 조직위는 이를 무시하고 행사를 강행하다 마지막 불꽃놀이만 취소한 바 있다. 부안|김창효 선임기자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시작되며 매일 전 세계 참가자 수백 명이 온열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배수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곳곳이 진흙탕 투성인데다 벌레마저 들끓고 있다. 이 사태는 7년 전 예견됐지만 전북도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대회를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유치 결과보고서’를 보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전북도 의뢰로 2016년 7월 잼버리 타당성 조사 결과보고서를 냈다. 7년 전 작성된 이 보고서는 잼버리 행사 개최 시기인 올해 8월 ‘최고 36도에 달하는 고온이 지속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비가 오거나 물이 찰 가능성을 대비해 충분한 배수시설도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폭염으로 수많은 환자가 발생한 2015년 일본 야마구치 잼버리 대회 사례를 들어 그늘 등 휴식장소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전북도는 당시 개최지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새만금에 ‘풍성한 숲 공간’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간척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를 잼버리 야영장 곳곳에 심기로 했으며 넝쿨 식물로 된 그늘을 최대한 많이 만들기로 했다.

또 우기에 배수가 잘될 수 있도록 토질개선과 배수로 시설 설비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이런 계획은 폴란드, 강원도 고성 등 여러 후보지를 두고 고심하던 세계스카우트연맹 이사회에 보고돼 새만금이 최종 개최지로 확정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문제는 현재 새만금 야영장 모습은 보고서의 내용과 전혀 딴판이란 점이다. 풍성한 숲 공간 대신 참가자들은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 벌판에 내던져지다시피 하며 버티고 있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 벌레까지 들끓고 있다.

전날 하루에만 138명이 온열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벌레 물림이나 피부발진을 일으킨 참가자도 633명에 달했다.

전북도가 2019년 공개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장 조감도. 전북도 제공

현재의 사태는 전북도와 조직위가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2022년 사이 행사장 주변에 나무 심기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폭염 피해 등 위험을 사전에 알고도 행사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북도 관계자는 “잼버리 부지에 1년에 2m씩 자라는 미루나무를 심으려고 했으나 염분 농도가 높아 심을 수 없었다”며 “넝쿨 터널 등 보완시설을 추가해 설치했다”고 해명했다. 특히 보고서에 나온 대책들을 왜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는지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접촉한 전북도와 조직위 관계자 10여명은 “담당이 아니라 내용을 잘 모른다” “다른 부서(조직)에 문의해 달라”등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ㅣ

환경단체는 ‘탁상공론의 결과’로 어린 참가자들의 안전이 위협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전북녹색연합 관계자는 “간척지에 나무를 심으려면 최소 1.5m 이상 성토를 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 계획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담하다”며 “책상에만 앉아 아무 계획이나 내뱉고 사업을 강행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극한의 폭염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발생하기 전에 당장 새만금 잼버리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