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2023. 8. 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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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부모 찬스’ 국가 공인…부자 감세 논란 자초
경향신문 자료사진



정부가 결혼자금에 한해 증여세 공제 한도를 늘린다. 부부 합산 3억원까지 부모한테 증여받아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결혼을 앞둔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정부는 혼인이 늘면 저출생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억대의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청년들은 제한적이다.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세제 지원 방식보다는 재정지원을 적극 늘려야 저출생 문제 해소에 효과를 기대해봄 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7월 27일 발표한 ‘2023년 세법개정안’에는 종합부동산세 다주택자 중과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과 같은 대형 이슈들이 담기지 않았다. 대신 주목을 받은 조치는 결혼자금 증여세 공제 확대였다.

결혼자금 증여세 감면, 규모와 대상은

현행 증여세 기본공제는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이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은 결혼자금 1억원을 공제 대상에 신설했다. 과거 10년간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이 없다고 가정하면, 결혼을 앞둔 자녀는 내년 1월부터 부모로부터 총 1억5000만원을 증여받아도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부부 합산 3억원이다. 지난 6월 한국부동산원 기준 전국 주택 평균 전셋값이 2억2000만원, 수도권이 3억원인 점을 고려해 이같이 공제 한도를 정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공제 대상 기간은 혼인신고 전과 후 각 2년, 총 4년이다. 재혼의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증여받은 재산이 공제 한도 이하일 경우엔 부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증여 사실을 세무당국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현금뿐만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 가상자산(코인) 등 모든 종류의 자산을 증여받을 수 있다. 용도 제한도 없다. 현실적으로 증여재산이 용도에 맞게 쓰였는지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결혼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은 신혼부부가 증여받은 현금으로 대출을 상환하는 경우 결혼 용도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곤란하다. 공제 대상 기간 4년 역시 청약·대출 등으로 실제 결혼과 혼인신고, 신혼집 마련까지 일정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해 대상 기간을 여유 있게 잡았다. 다만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위장 결혼을 반복하면 세무조사를 거쳐 세금을 추징한다. 올해 결혼자금을 증여받는 경우 공제 혜택이 소급 적용되지 않지만, 올해 결혼 후 내년에 증여받는 것은 공제 적용을 받는다.

현행 기준으로 부부 각자가 1억5000만원씩 결혼자금을 증여받는 경우 각각 970만원씩 모두 1940만원의 증여세를 내야 한다. 증여세율은 과세표준 1억원까지는 10%다. 증여재산에서 기본공제 5000만원을 제한 과세표준에 세율 10%를 곱한 뒤 기한 내 자진신고에 따른 신고세액공제(3%)를 적용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2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세법개정안과 관련 사전 상세브리핑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과세 사각지대, 제도권 내로 흡수”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세법개정안 브리핑에서 “전세자금 마련 등 청년들의 결혼 관련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혼인이 늘면 저출생 문제를 해소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도 하고 있다. 정부는 8월 11일까지 입법예고한 후 국무회의를 거쳐 오는 9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기재부는 결혼자금 증여세 완화 조치를 설명하면서 ‘증여세 공제 한도의 현실화’를 강조했다. 증여세 기본공제는 2014년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됐다. 이 기간 물가와 소득, 결혼자금이 큰 폭으로 뛰었기 때문에 공제 한도 수준도 재설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돼왔다.

기재부에 따르면 2014년 1월 대비 올해 6월 기준 소비자물가는 18.6% 상승했다. 같은 기간 1인당 명목국민총소득은 37.3%, 주택가격은 14.5% 각각 올랐다. 기재부가 예로 제시한 한 결혼정보업체 조사에 따르면, 올해 평균 결혼비용은 3억3000만원(신혼집 마련 2억8000만원, 혼수 2000만원 등)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 증여세 부담이 높고 다른 국가와 비교해 공제 규모가 크지 않은 점도 이번 안이 포함된 배경이다. 증여세가 있는 OECD 24개국 중 우리나라의 자녀 증여재산 공제 한도는 하위 다섯 번째다. 일본도 결혼자금 용도 증여재산을 1억원까지 공제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청년이 부모의 지원을 받아 결혼하는 현실도 고려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모 지원없이 결혼하는 청년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결혼하는 자녀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이 과정에서 증여가 있음에도 신고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국세청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일일이 과세하지 않는다. 과세 사각지대인 셈인데, 이번 조치를 통해 제도권 내로 흡수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혼인이나 출생에서 어떤 유의미한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성적으로 이뤄지던 결혼자금 증여를 투명화하고 제도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자 감세’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결혼할 때 부모한테 3억원을 증여받는 신혼부부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결국 일부 계층에만 세금감면 혜택이 편중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의원(정의당)이 7월 29일 통계청의 ‘2022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MDIS)를 기반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공제 한도 확대 혜택은 최상위 계층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결혼적령기 자녀를 둔 5060세대 가구주(평균 자녀 수 2.1명) 중 증여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2억원 이상 보유한 가구는 상위 13.2%였다. 나머지 86.8%는 애초에 자녀의 결혼에 증여세를 낼 만큼의 금융자산이 없기 때문에 공제 확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는 의미다. 장혜영 의원은 “결국 혼인공제 신설은 상위 10% 부유층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라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결혼에 곤란을 겪는 하위 90%를 철저히 배제하고 부모에게 많은 지원을 받아 결혼 준비에 경제적 부담이 덜한 부유층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부자 감세 논란은 여야 간 공방으로 비화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월 31일 “증여를 못 받아 결혼을 못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안으로 혜택을 볼 계층은 극히 적다. 많은 청년에게 상실감, 소외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새롭게 미래를 열어가는 청춘 남녀들의 ‘꿈’을 응원하겠다는 것, 미래 설계를 좀 더 계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주겠다는 것, 새내기 부부의 자산 형성을 돕자는 것은 ‘빈부’ 잣대를 들이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부의 대물림 가속화 우려”

정부는 이번 조치가 결혼을 장려하고 저출생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구재이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미래를 대비한 결혼, 출산, 양육에 대한 지원과 관련해 결혼자금 증여에 세 부담을 낮추도록 한 것은 결혼 기피와 저출생의 사회적 문제를 해소할 아이디어로 평가된다”면서도 “증여가 가능한 부모를 둔 청년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증여받지 못하는 청년에게도 형평에 맞게 결혼자금(2022년 평균 7000만원)에 대해 소득세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현행 10년간 5000만원인 기본공제 한도를 7000만원으로 늘리고, 결혼이 아닌 출산을 기준으로 공제액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이 이번 공제 한도 확대를 부자 감세로 규정한 만큼 연말 국회 논의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공제 규모가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세제 지원보다는 적극적 재정지출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우철 교수는 “세금감면 방식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특히 저출생 문제를 세제 지원으로 대응하려는 방식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출산 장려금이나 보조금, 양육지원금을 늘려가는 방식의 재정지원 정책을 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속세나 증여세의 목적은 부의 대물림 방지에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조치일 뿐이다. 현재 증여 공제 한도 5000만원에 대한 기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공제 한도가 더 늘어나면 일부 계층의 이러한 부의 대물림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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