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최악 치닫는 이 각본을 끝내려면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3. 8.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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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처럼 짜인 가족제도 속
뿌리깊은 성 역할과 차별 탓
가부장제 속 성별 분업 벗어나
동성부부·비혼출산 인정하고
차별의 공식 깰 때 저출생 극복

'한국 사회는 아이가 살 만한 사회인가? 나는 내 삶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잘살게 돌볼 수 있는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임기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가 함께 답을 내려야 하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이 '아니요'를 택하는 이유로 저자는 우리나라 가족제도에 뿌리박힌 성 역할 강요, 성 소수자 차별을 꼽는다. 그리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충실하게 재현해온 '가족각본' 속 역할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2019년) 이후 4년 만에 낸 신간이다.

책은 '며느리'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한다.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개탄 섞인 문구는 2007년 차별금지법 첫 발의, 2010년 게이 커플이 나온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방영 등을 계기로 보수단체들이 동성 결혼 합법화 반대를 외칠 때마다 단골로 쓰여왔다. 이 문구는 성 소수자나 동성애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가족제도 속 억압과 차별의 역사를 드러낸다. 저자는 묻는다. 며느리는 왜 여성이어야 하는가? 며느리는 아들의 배우자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와 부모 봉양, 육아를 책임져야 한다는 역할론이 깔려 있는 것이다.

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창비 펴냄, 1만7000원 한국서 아이 낳기 힘든 이유

저자는 끊임없이 '이 질서는 무엇을, 누구의 이득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혼외출생자·혼혈인·장애인 등 국가가 '불법 출산'으로 낙인찍고 배제해온 과거, 가정과 학교에서 '성교육'이라는 미명으로 전수해온 가부장제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와 동시에 동성 결혼, 비혼 출산, 성전환자의 출산 등이 지금은 불법이거나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지만, 차별의 공식을 깬다면 저출생 극복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지 상상한다.

지금의 가족각본은 이미 최악의 엔딩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가임여성 1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인 저출생의 현실이 단순히 요즘 세대의 이기심이나 조장된 관념 때문이 아니란 얘기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웬만해서는 사람이 태어나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라는 뜻' '다양한 돌봄의 공동체가 시간과 마음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뜻'이라고 일갈한다.

원인 분석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흔히 저출생의 원인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를 지목하지만, 현실의 절반만 담고 있다. 저자가 짚어내는 진짜 원인은 '성별 분업'이다. 알다시피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은 임금노동, 여성은 가사노동을 도맡아왔다. 그런데 여성도 임금노동을 해야 하는 지금까지 여전히 가사노동의 부담이 여성에게 쏠려 있는 게 진짜 문제다.

동성 커플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저출생 사회에 새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어떤 가정에서 어떻게 태어나든 평등하다면 출산율 제고로 이어지지 않을까. 학계의 다양한 연구 결과가 근거로 제시된다. 예를 들어 동성 커플은 가정 내 성별 역할이 좀 더 평등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성혼이 합법화된 네덜란드나 프랑스는 합계 출산율이 1.62명, 1.8명(2021년)이고 혼외 출생률도 각각 53.5%, 62.2%에 달했다.

최근 이슈인 '값싼' 외국인 도우미(가사관리사) 도입이 여성을 위한 정책이 맞는지 화두도 던진다. 이르면 연말에 시범 도입될 예정인데,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을 적용해 임금을 월 206만원(내년도 기준)으로 추산했고, 국회엔 최저임금을 도입하지 않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차별과 착취 논란은 필연적이다. 저자는 다시 묻는다. 이 제도로 이득을 보는 건 누구인가? 가사관리사의 최대 수요자로 예상되는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이 줄어드는 대신 노동력을 원활하게 공급받는 게 기업이라면, 기업에 특정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제도 개선이 요원한 건 정책을 입안하고 관철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요지부동인 탓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입안자는 '국민 정서'를 핑계로, 현실의 병폐를 알면서도 일단 뒷전으로 미룬다. 저자는 "변화하는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안을 찾는 일을 우리는 정책이라고 부른다"고 지적한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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