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은폐' 국책연구 보고서에 모두가 속았다

박효순 기자 2023. 8. 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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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백혈병 항체치료제 임상 1상 좌절
단백질 ‘돌연변이’ 발생 쉬쉬하다 중단

“DNP001 기술 이전에 대해, 우리는 DNA 서열에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경쇄 및 중쇄 모두에 여러 변이가 있으며, 특히 중쇄 C말단에 변이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저희 R&D팀은 다음 주 담당자님 측과 함께 화상회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베이징 시간으로 오전 9시(서울 시간으로 오전 10시) 괜찮으신가요?”(2015년 5월)

중국 생명공학 기업 3S바이오가 한국 바이오벤처기업 다이노나에 보낸 이메일이다.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급성백혈병에 대한 신규 항체치료제 DNP001의 임상 1상 개발’ 국책연구 과정에서 치료제에 단백질 돌연변이가 발생한 사실이 최초로 공개되는 순간이다. 이메일 수신인은 연구책임자인 서울대 의대 정모 교수와 당시 다이노나 대표인 송모씨 등 4명이다.

이 신약개발 사업은 2013년 범부처신약개발사업으로 선정되어 2014년 9월부터 2016년 7월말까지 국내 대형병원 1곳에서 임상 1상이 진행됐다. 다이노나가 사업주체이며, 범부처 국책연구비 20억2000만원을 포함해 40억 4000만원이 들어갔다.(경향신문 8월 4일자 11면, 단독 기사 참조)

국책연구보고서가 중대 사실을 은폐했다는 단독기사 보도 내용.

수십 억원의 국가 연구비가 들어간 신약개발 국책임상연구에서 백혈병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약물에 돌연변이가 발생한 중대 사실은 보건복지부, 식약처, 사업단, 임상수행 기관 등 그 어느 곳에도 보고되지 않았다. 2016년 8월 12일 범부처사업단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에도 돌연변이 발생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2015년 가을에 있었던 코스닥 상장 심사나 추가 펀딩을 위해 열렸던 2016년 기자회견 등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1년 가까이 ‘돌연변이’ 사실 은폐

이러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지게 된 것은 당시 다이노나의 대주주였던 박성회 전 서울대 석좌교수(이하 박 교수)가 각계에 ‘진상규명’을 호소하면서다. 취재진은 서울대 의대, 서울대 병원 및 의료계에 퍼진 소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박 교수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DNP001의 원천기술 개발자다. 이를 통한 발명특허의 명칭이 ‘인체의 피질흉선세포에 표현되는 단백질(약칭 JL1)’이다. DNP001은 JL1의 키메라 항체이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세계적인 면역학자이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정원 요원 2명을 배치해 신변보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DNP001의 신약개발 1상 보고서 표지.

4일부터 배포가 시작된 <주간경향> 1540호 보도에 따르면, 박 교수는 2015년 5월 중국업체로부터 돌연변이 발생 사실이 통보될 때 수신인에서 배제됐다. 그는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통보한 메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2016년 4월경에 알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취재진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연구책임자인 정 교수는 뭔가 낌새를 챈 박 교수의 추궁 끝에 2016년 4월 8일 해당 메일을 박 교수에게 공유한다. 다음 날 박 교수는 연구 중단을 지시한다. 그러자 정 교수는 당일 송 대표에게 이 사실을 전달한다. 2015년 5월부터 1년 가까이 박 교수를 빼고 회사 경영진과 연구책임자들의 조직적 은폐가 이뤄진 셈이다.

[단독]돌연변이 발생 알고도…임상시험 대상자에 변이 발생 약물 투여 사실 은폐

발명자는 4명인데, 특허 지분은 1명으로 등록...내막은?

주간경향, 정교수·송대표 녹취 공개

정 교수는 범부처에 신약개발 보고서 제출 1주일 전 시점인 2016년 8월 5일 박 교수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 문제에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언급한다.

“000문제는 임상시험 중단 과정에서 일이 커지면 회사에 누가 되고 제가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해임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잘못했으니 책임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000임상시험이 종료되는 대로 다이노나 이사 및 연구소장직은 사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7월 21일 서울대 의대를 방문해 연구실에서 정 교수를 만났다. 이후 송 대표와도 지난 7월말까지 세 차례 접촉해 통화로 입장을 들어봤다. <주간경향> 1540호에는 이들 둘과 취재진이 나눈 대화 녹취록이 게재돼 있다.

한편, 이번 취재 과정에서 로펌 자료와 박 교수의 증언을 통해 ‘원천특허(JL1)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그와 똑같은 내용으로 새로운 특허가 등장하는 등’의 특허 조작 및 갈취의혹에 대한 중요한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일부 특허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문을 표절해 특허가 이뤄진 사실도 파악했다. 이같은 내용 중 중요 부분이 법무법인을 통해 서울대 오세정 총장에게 내용증명으로 발송됐지만 서울대 측은 이를 묵살하고, 추가조사 같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도 알아냈다. 취재진(박효순·정용인·김태훈 기자)은 법적 문제뿐 아니라 ‘학자의 양심과 도덕성’이 걸린 이 사안에 대해 계속적인 취재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회 및 정부 당국, 범부처사업단, 서울대(의대 포함) 등 관계 기관에서의 관련 감사 및 조사, 위원회 개최 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효순 기자 anyto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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