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형님들' 본 조비가 뮤지컬을 만들었다고?[알쓸공소]
'멤피스', 본 조비 키보드 데이빗 브라이언 참여
신디 로퍼 '킹키부츠'·엘튼 존 '라이온 킹' 등 인기
한국 뮤지션은 아직…"시장 성장하면 가능할 것"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들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본 조비(Bon Jovi)를 아시나요. 80~90년대, 또는 2000년대 초반까지 록 음악 좀 들었다고 하면 누구나 기억할 ‘왕년의 형님들’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추억이 있습니다. 1994년 록 음악을 처음 들어보겠다고 동네 음반 가게에서 산 카세트테이프가 2개였는데, 그 중 하나가 본 조비의 베스트 앨범 ‘크로스로드’였습니다. 2015년 내한공연도 우연한 기회로 봤습니다. 보컬 존 본 조비 형님의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아서 슬펐지만, 그래도 ‘올웨이즈’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뮤지션 참여 흥행 뮤지컬 다수
더 놀란 것은 데이빗 브라이언이 참여한 뮤지컬이 ‘멤피스’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2010~2011년 국내에서도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였던 뮤지컬 ‘톡식 어벤져’(국내 공연명 ‘톡식 히어로’)도 데이빗 브라이언 작사, 작곡을 맡았었습니다(저는 이 뮤지컬은 못 봤습니다. 하지만 트로마에서 만든 원작 영화는 봤습니다. B급 영화의 걸작!). 가장 최신작은 뮤지컬 ‘다이애나’입니다. 영국의 전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로 넷플릭스에 공연 실황 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멤피스’ 외에도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선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참여한 뮤지컬 흥행작이 다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킹키부츠’도 그 중 하나입니다.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등과 함께 80년대 팝 시장을 평정했던 가수 신디 로퍼가 작사, 작곡에 참여했는데요. ‘킹키부츠’를 볼 때마다 이 작품의 흥겨움은 신디 로퍼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OST를 작업했던 엘튼 존은 이를 무대로 옮긴 뮤지컬에도 그대로 참여했고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아이다’, 그리고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뮤지컬 ‘악마도 프라다를 입는다’ 등 다수의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마니아 관객의 인기를 얻고 있는 ‘스프링 어웨이크닝’도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작곡을 맡은 던컨 셰이크는 1996년 데뷔 앨범을 발표한 뒤 왕성하게 활동해온 싱어송라이터입니다. 2021년 국내에서 초연한 뮤지컬 ‘하데스 타운’ 또한 미국 버몬트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아나이스 미첼의 작품입니다. 아나이스 미첼이 2006년 자신의 고향에서 선보인 작은 규모의 공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동명의 앨범이 뮤지컬의 바탕이 됐습니다.
물론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뮤지컬에 참여한다고 늘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7500만 달러)가 투입돼 화제가 됐던 뮤지컬 ‘스파이더맨: 턴 오프 더 다크’가 그렇습니다. 세계적인 록 밴드 유투(U2)의 보노, 에지가 작사, 작곡에 참여해 2011년 초연한 작품인데요. 개막과 동시에 배우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았고, 작품에 대한 혹평이 이어져 결국 실패작으로 남았습니다. 보노와 에지에게는 일종의 흑역사이겠죠.
아직 국내에선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뮤지컬 창작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지금 당장 몇 편의 작품이 떠오르기는 하는데요. 가수는 아니지만, ‘히트곡 제조기’로 유명한 작곡가 윤일상이 뮤지컬 ‘서편제’의 작곡을 맡았습니다. ‘서편제’의 대표 넘버 ‘살다보면’의 짙은 호소력은 윤일상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은 동명 소설 원작의 뮤지컬 ‘유진과 유진’에 작곡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왜 한국 뮤지션들이 창작에 참여하는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만큼 많지 않은 걸까요. 전문가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요. 공통된 의견은 아직 한국 뮤지컬 시장은 뮤지션들이 창작에 참여할 정도로 탐나는 분야가 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뮤지컬 본고장인 미국, 영국에선 뮤지션들이 뮤지컬의 문법에 익숙한 반면, 한국은 뮤지션들이 뮤지컬 문법을 새로 익혀야 하는 부담도 있을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한번쯤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이 참여한 뮤지컬도 만나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가수 김동률이 4년 만에 발표한 신곡 ‘황금가면’이 뮤지컬의 형식을 차용해 화제가 됐는데요. 뮤지컬 시장이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뮤지컬 형식을 차용하는 걸 넘어 제대로 된 뮤지컬 창작에 도전하는 뮤지션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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