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리허설 때도 찜통”…허허벌판 잼버리 예고된 ‘악몽’
[잼버리 악몽]
예고된 파행이다. 또하나의 ‘케이(K)-붐’을 만들어내리라던 청소년 국제행사가 돌연 ‘나라 망신’ 시키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지난 1일부터 전북 새만금 간척지에서 진행 중인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얘기다. 폭염에 온열 질환자가 속출하고 열악한 환경과 주최쪽의 준비 부족을 질타하는 참가자와 가족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온다. 여론도 들끓는다. “왜 여름철에 그늘 한점 없는 간척지에서 대규모 야영대회를 여느냐”는 질타부터 “지금이라도 행사를 축소하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비등하고 있다.
오로지 ‘면적’을 경쟁력으로 유치전 뛰어들어
이번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는 개발과 지역 홍보, 경제효과만 바라보고 유치한 국제행사의 부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다. 애초 자연 그늘이 없어 여름철 야영에 부적합한 갯벌 매립지를 행사 장소로 정한 것부터 적절치 못했다. 전라북도가 처음 2023 잼버리 유치 의사를 밝힌 것은 2012년 4월이다. 전라북도가 당시 새만금을 개최 후보지로 밀면서 내세운 것은 야영지 50만평(165만3000㎡)을 포함해 스포츠와 문화, 공연 등 100여개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250만평(826만5000㎡) 이상의 터가 필요한데, 이런 규모의 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장소는 국내에서 새만금이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무주군 백운산 자락의 태권도원과 덕유산국립공원 구천동 야영장 등도 후보지로 거론됐으나 전라북도는 새만금 이외의 대안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도로·공항 등 인프라 구축이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 사업에 정부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계기로 잼버리를 활용하려는 의도가 앞섰던 탓이다.
한국스카우트 연맹은 2015년 9월 세계잼버리 유치 신청에 앞서 전북 새만금과 강원도 고성을 실사한 결과, 새만금을 국내 후보지를 결정하고 세계스카우트연맹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후보지 선정 배점기준은 후보지 입지환경(250만평 이상 확보 등 50점), 시설설치 및 확충계획(50점), 잼버리장 사후 활용방안(50점) 등 모두 400점이었다. 점수는 비공개였으나 새만금이 입지와 교통 접근성 등이 높이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폭염기 열릴 행사를 겨울·봄에 점검한 세계연맹
2016년 7월 기획재정부가 국제행사심의위원회를 열어 ‘2023 세계잼버리’를 정부 차원에서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경쟁지는 폴란드 북부 항구도시 그단스크였다. 범정부 차원의 유치활동 덕에 새만금은 2017년 8월17일 아제르바이잔 바쿠 콘그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1차 세계스카우트 총회에서 607표를 얻어 365표를 득표한 폴란드를 제치고 개최장소로 최종 선정됐다. 2018년 12월과 2019년 4월, 세계스카우트연맹 임원들의 현장 답사를 다녀갔다. 한여름에 치러질 행사를 점검하기 위해 겨울과 봄에 현장을 다녀간 것이다. 당연히 아무런 문제점이 지적되지 않았다.
전라북도가 처음 유치전에 불을 댕겼지만, 지역 전체가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새만금 간척을 반대했던 전북시민단체는 애초부터 행사장 터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인 해창갯벌을 매립하면 ‘지속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잼버리 정신과 맞지 않을뿐더러, 관광레저용지로 지정된 곳에 농지관리기금을 투입해 매립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비판도 일찌감치 나왔다.
지난해 8월 개최하려던 ‘새만금 프레 잼버리 대회’가 개최 2주를 앞두고 전격 취소된 것도 논란거리였다. 조직위는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집단감염 가능성을 이유로 들었지만, 하수도와 주차장 등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원택 민주당 의원은 프레 잼버리 취소와 관련 “코로나는 표면적인 이유고 행사장 부지가 폭우에 잠겨 배수가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6월 리허설 행사에서도 폭염·침수대책 미흡 지적
폭염과 배수 부실에 대한 우려는 지난 6월16~18일 ‘리허설’ 격으로 열린 ‘작은 잼버리 대회’에서도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당시 현장 상황을 다룬 지역언론들은 ‘30도가 넘는 날씨에 참가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텐트 안은 찜질방 같았다. 너무 덥고 습해 저녁 시간을 기약해야 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호우로 인한 침수, 모기떼, 화장실·샤워실 위생 문제도 빠짐 없이 지적됐다. 행사 개최 1개월 전인 6월30일 지역 시민단체들은 “배수시설 공사가 90%에 이르지만 침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안전과 원활한 진행을 위해 대체 부지 마련 등 ‘플랜B’가 필요하다”고 짚었지만 반향이 없었다.
결국 문제점은 행사가 시작한 뒤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주최 쪽은 ‘큰 문제는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그러는 사이 6년간 1000억원 넘는 세금이 투입된 국가적 행사가 나라 안팎의 질타를 받는 최악의 부실 잼버리로 전락해버렸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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