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논란’ 앞에서···쉽지 않네, 옹호도 탈덕도[책과 삶]
안희제 지음 | 오월의봄 | 344쪽 | 1만9000원
1995~1998년생 팬 10명의 이야기
‘최애’ 아이돌의 폭력 가해 소식에
처음엔 ‘당혹’, 다음은 ‘논란’ 소비
충실히 작동한 ‘관심경제’ 구조 속
팬심이 2차가해 되지는 않을까
가치관과 애정 사이, 모순과 싸워
어느 날 ‘최애’ 아이돌의 학교폭력 의혹 기사가 뜬다. 피해자의 폭로와 주변인들의 증언, 소속사와 당사자의 입장문이 쏟아진다. 명확한 진실을 알기 어려운 상황. 팬덤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누군가는 신속하게 ‘탈덕’한다. 누군가는 그 멤버가 탈퇴하고 그룹은 존속하길 원한다. 대중은 팬덤이 가해자를 옹호한다며 싸잡아 비난한다. 아무리 시끄러운 논란도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든다. 깔끔하게 사실관계가 밝혀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찜찜한 의문을 남긴 채 멤버의 탈퇴, 혹은 자숙으로 ‘일단락’된다.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최애를 버리지도, 그렇다고 선뜻 편들지도 못한 채 망설였던 팬들이 남겨진다.
<망설이는 사랑>은 이렇게 남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현재의 팬덤 문화를 옹호하는 책도, 영화 <성덕>처럼 범죄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을 계기로 탈덕한 이들의 생각을 듣는 책도 아니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안희제는 그보다 애매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망설였던, 지금도 망설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논란을 접한 팬들이 처음 느끼는 감정은 당혹감이다. 샤이니 팬인 홍대(가명)는 안희제와 인터뷰하면서 2017년 온유의 성추행 의혹 뉴스를 친구로부터 듣고 “걔가 당했다고? 온유가 당했다고?”라고 반문했다고 말한다. 빅뱅 팬이었다 탈덕한 피자(가명) 역시 대성의 음주운전 소식을 TV뉴스로 처음 접했을 때 당연히 그가 사고의 피해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당혹감은 잠시, 곧바로 ‘논란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대중-팬-사이버레커-언론-알고리즘-소셜미디어 플랫폼이 결합한 네트워크는 논란을 빠르게 증폭시킨다. 학교폭력, 성추행, 갑질, 역사인식, 뒷광고 등 하나로 묶이기 어려운 사안들이 네트워크 안에서는 그냥 ‘논란’으로 통칭된다. 네트워크의 핵심은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이버레커다. 이들은 논란이 발생하면 재빨리 이를 정리하거나 비판하는 콘텐츠를 만든다. 이를 전체 공개용, 회원 전용으로 나눠 일반 대중, 자기 최애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불안한 팬들 모두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혼란의 와중에도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는 착실하게 기능하는 것이다. 논란은 곧 문제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해당 아티스트의 인성 검증으로 이어진다. ‘이런데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끊임없이 묻는 것이다.
책에는 이 네트워크에 완전히 연결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비켜서지도 못한 채 망설였던 1995~1998년생 아이돌 팬 10명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인터뷰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논란에 휩싸인 것을 보며 생각했던 것들이 독백처럼 서술돼 있다. 이들이 망설인 이유는 꽤 구체적이다. (여자)아이들을 좋아했던 피자는 대학 때 성폭력 사건 공론화 과정에서 2차 가해를 겪으며 피해자 중심주의를 체득했다. 멤버 중 한 명인 수진이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였을 때, 그는 가치관과 팬심 사이에서 망설이다 수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 홍대는 성추행 피해를 호소한 여성을 ‘꽃뱀’으로 모는 한국의 성차별 문화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페미니스트다. 그 또한 온유의 성추행 논란에서 망설인다. 온 마음을 쏟아 사랑했던 존재가 자신의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자아와 충돌한 사건은 인터뷰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온유를 좋아하고 말고는 이제 더 이상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이 모순 사이에서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되는 건지 너무 어렵더라고.”
아티스트가 잘못이 없다고 마음속으로는 판단을 마쳤지만, 그 판단이 사회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읽힐지 걱정해 드러내길 조심스러워하기도 한다. (여자)아이들 팬인 소바(가명)는 수진이 그룹을 탈퇴한 후에도 그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 학교폭력 경험이 있는 이들이 자신의 말을 들을까봐 걱정한다. “내가 이런 얘기(수진은 잘못이 없다는 얘기)를 자·타의로 많이 말하고 다니는데, 그런 애들이 의도치 않게 듣게 될 수 있잖아. 그게 내 하나의 걱정이긴 한데.”
<망설이는 사랑>은 평화롭게 덕질을 하던 일상이 갑작스럽게 엉망진창의 폐허가 된 순간, 스스로 답을 찾아보려 헤맸던 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논란 자체를 폭력적으로 재생산해내는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구조적인 성찰도 담겨 있지만, 그 구조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마음 탐구서’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인다.
K팝 아이돌의 팬이라면,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그러다 실망하고 충격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무한한 애정을 쏟았던 존재가 갑자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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