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범죄의 민낯]② 괴물은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가장 시급한 해결책은

노자운 기자 2023. 8. 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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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논의 착수
노무현 정부서 사라진 보호감호, 부활 가능?
제도권 밖에 있는 소외자들, ‘낙인 효과’ 없이 관리해야
(왼쪽부터) 분당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을 벌인 20대 최모씨, 신림역 묻지마 살인 범인 조선,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1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이 잇따르자,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4일 법무부는 “흉악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위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추진은 이미 예고된 일이다. 앞서 지난달 21일 서울 2호선 신림역에서 조선(33)의 묻지마 칼부림이 발생한 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괴물은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며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는 만큼, 미국과 영국 같은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는 게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는 얘기다.

묻지마 범죄자들은 영영 격리해야 할 ‘괴물’일까. 서울 고속터미널역에서 흉기 소지자가 체포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살인 예고 글이 잇달아 올라오는 혼돈 속에서, 묻지마 범죄의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한 법·제도적 차원의 해결책을 알아봤다.

◇참여정부 때 사라진 보호감호…尹, 보호수용제 도입 공약했지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사형제 폐지에 대한 대체 형벌로 가장 많이 언급된다. 현재 이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영국과 미국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 형법 제72조 1항에 따라, 유기징역을 선고 받은 사람은 형기의 3분의1을 살면 가석방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무기징역의 경우엔 20년 간 복역하면 가석방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2019년 ‘한강 몸통 시신 사건’에서 재판부는 장대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임을 분명히 한다”고 판시했지만, 이는 사법부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 자체가 우리 형법 체계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확정 받은 사형수 59명은 가석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경우 사실상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까.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간의 교화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 가석방 가능한 종신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보다는 보호수용법 마련이 현실적인 답이라고 말한다. 보호수용이란 재범 위험성이 높은 강력 범죄자를 형기 만료 후 일정 기간 동안 보호수용시설에 격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전두환 정부가 만든 ‘보호감호’ 제도가 있었으나,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인권 침해 논란을 이유로 폐지됐다. 현재는 전자발찌가 보호 감호와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

보호수용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에도 있던 내용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가석방조건부 보호수용제’ 도입을 공약에 포함한 바 있다. 실제로 이는 미국, 호주, 독일, 스위스 등 여러 선진국들이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단순 폭행 범죄의 경우 상습범이어도 3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되기 어렵다”며 “치료와 갱생이 완료될 때까지 수용하고 나서 사회로 돌려보내는 건 전혀 과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보호수용법은 이중처벌로 인한 위헌 소지가 있어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형기를 마친 피고인을 다시 사회에서 격리해 가두는 건 ‘동일한 범죄에 대한 거듭된 처벌’을 금지한 헌법 제13조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보호수용법은 2015년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이 제정을 추진했으나 국회 회기 종료로 폐기됐고, 2020년에도 입법이 불발된 바 있다.

이만희 국민의힘 행정안전위원회 간사가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묻지마 범죄 관련 대책 당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독일처럼 ‘사회 친화적’ 보호수용시설 만들 수도…보호관찰 제도도 정비해야

전문가들은 보호수용의 치료 목적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시설이나 인력을 충원해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치료 목적을 확실히 구현할 수 있는 인력 확충,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독일은 보호수용시설을 치료 목적에 걸맞도록 사회적 친화 시설로 만들었다”며 “교정관이 있는 게 아니라 시설만 담당하는 사람, 사회학자, 교육학자, 심리학자 등이 상주하며 교화를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승 연구위원은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사람은 보호수용시설에 보내고, 덜 높은 사람 역시 저녁에만 특정 시설에서 치료나 교육을 받도록 제도를 ‘투트랙(two track)’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에는 낮에 (시설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반(半) 구금 처우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범죄를 저지르기 전 사회적 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는 게 먼저라는 조언도 나온다. 범죄를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개인과 사회’의 문제로 바라보고, 제도권 안에 들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이나 직업 훈련, 직업 교육 등을 강화하는 등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일단 굴레에서 빼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함혜현 부경대 공공안전경찰학과 교수는 “사회적 소외 계층 가운데서도 범죄 우려가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 관리하되, 낙인 효과를 주의해 ‘특정 집단’만 타깃으로 삼지 말고 사회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함 교수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무부, 복지부, 노동부가 체계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역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태를 조사한 적이 거의 없는데, 미국은 이미 50~60년 전 대통령이 주도하는 위원회에서 범죄 원인과 형사사법 시스템의 문제점, 각 사건에 숨은 사회 구조적 문제를 연구해 정책을 제안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법무부 준법지원센터(옛 보호관찰소)에서 소년 범죄자나 가석방자, 선고·집행유예를 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보호관찰 제도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웅혁 교수는 “조선의 경우 소년보호처분만 14번 받았지만 교화가 제대로 안 됐다”며 “미국은 보호관찰관 한명이 20개 사건을 맡고 있는데 한국은 한명당 140개 사건을 맡고 있어, 인력과 예산 보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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