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한미일 집단안보체제' 구축 시도…핵심 변수는

이우탁 2023. 8. 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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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몇차레 집단안보체제 시도…한일 관계, 장애요인 작용
中·북핵 위협 대처 위해 한미일 집단안보협력 추진 관측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은 자국을 정점으로 한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부활과 강화를 도모하는 한편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막기 위해 지역별 군사적 동맹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래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현황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러시아와 불과 127km 떨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부전선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31개 동맹국과 아시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나토 정상회의가 11일 막을 올렸다.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전범국인 독일의 분단 속에 미국은 유럽에서 집단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를 통한 자본주의권의 공고한 연대를 이뤄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독립과 정부 수립이 최대과제였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경험을 했던 한국과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 있어 일본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매우 힘든 과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9년 공산 중국의 성립까지 정교한 아시아 정책을 구사하지 못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1949년 5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유럽의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기구인 '태평양 연맹'이 아시아 지역에서 결성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대만 정부도 공감했다.

이는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이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이 기구에 일본의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으로선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6·25 전쟁 도중인 1951년 미국은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6·25 전쟁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반공 동맹 전선이 강화되는 중대 계기를 제공했다. 공산주의 위협에 놀란 아시아 각국은 서둘러 미국과 양자동맹을 체결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각각 군사동맹을 맺었다. 특히 일본은 유엔사의 후방 지원체제의 일원으로 미국의 아시아 최고 동맹국의 위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과거사를 극복할 수 없었던 한국과 일본은 군사동맹을 맺을 수 없었다.

박정희 정부 출범 이후부터 일본과의 관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이뤄낸 박정희 정부는 1968년에는 공산주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역적 집단안보기구인 '아시아태평양조약기구' 창립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때는 일본이 소극적이었다. 1969년 2월 일본 사토 수상은 중의원 답변을 통해 한국이 제안한 기구의 참가 요청을 사실상 거절했다. 미국과의 양자 동맹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기구 결성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양국은 지속적으로 군사적 교류와 협력을 강화했다. 1994년 이후에는 국방장관 정례회담이 이어져 왔다.

한일 양국은 2009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공동훈련에도 참가했다. 2016년에는 한일간에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이 체결됐다. 성격상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한국과 일본의 안보협력의 강화는 미국이 지속적으로 바라고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축으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적 균형은 물론이고 아태 지역에서 미국의 세계적 군사전략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북한 핵 위협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연계가 강화돼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픽] 한미일 북한 미사일 정보 공유 개요 (서울=연합뉴스) 반종빈 기자 bjbin@yna.co.kr 페이스북 tuney.kr/LeYN1 트위터 @yonhap_graphics

실제로 한미 연합작전을 위해서는 주일미군의 후방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일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복수의 미국 소식통을 인용해 오는 18일 열리는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의 협력 강화를 직접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한 점은 시의성이 있다는 평가다.

한미일 정상회담 앞서 악수하는 바이든과 윤석열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으로선 패권 도전국인 중국을 견제하고, 한국과 일본에 직접적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핵 위협에 실질적으로 대처할 '집단안보 체제' 구축에 시동을 거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3국 정상회의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그리고 그 결과가 실제 동아시아 집단안보 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질지가 외교가의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한미 양국이 첫 회의를 시작한 핵협의그룹(NCG)에 대한 일본의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 핵 위협을 막기 위한 확장억제 강화에는 한국과 일본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과거 사례에서 보듯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여전히 과거사 인식과 독도 영유권 분쟁 등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현안이 언제든 갈등 요인으로 남아있는 게 현실이다. 북한이 핵무기 위협을 노골적으로 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수준을 강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그 수위와 속도는 여려 변수를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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