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버전의 '나는 가수다' 보는 듯, '불꽃밴드' 라인업 미쳤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8. 4.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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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밴드’, 사랑과 평화부터 벗님들까지 이 밴드들이 한 무대에

[엔터미디어=정덕현] "맨날 저 뒤에만 있어 봤지." MBN <불꽃밴드> 첫 회에서 김종서밴드의 키보드 이환은 그렇게 말하며 밝게 웃었다. 그건 현재 밴드 세션들이 기존 가요계에서 받는 취급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밴드의 연주자들은 밴드 활동만큼 누군가의 백스테이지에서 생계를 위해 연주를 하는 현실을 맞이하게 됐다.

그 이유는 뭘까. 김종서가 지적한 것처럼, 현 가요계가 아이돌 아니면 트로트 식으로 장르가 편중되어 있어서다. 그래서 밴드를 하는 이들은 그 장르의 뒤편에 서게 됐다. 그래서일까. <불꽃밴드>가 한 자리에 모아 놓은 레전드 밴드들의 면면은 그 라인업만으로도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가 느껴진다. 레전드 밴드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이런 밴드 음악이야말로 가요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것이 그 메시지다.

사랑과 평화, 이치현과 벗님들, 전인권 밴드, 부활, 권인하밴드, 김종서밴드, 그리고 다섯손가락. 한 밴드만으로도 그 무대를 다시금 보는 게 쉽지 않을 그런 레전드 밴드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은 <불꽃밴드>는 과거 <나는 가수다>가 레전드 가수들이 펼치는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화제를 모았던 것처럼, 이를 밴드 버전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밴드들의 면면이 저마다 겹치지 않는 개성과 색깔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반갑다. 1970년대 말에 이런 펑키한 사운드가 가능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앞서간 사랑과 평화의 소울 가득한 무대는 물론이고, 지금 들어도 미친 그루브에 군더더기 없는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이치현과 벗님들은 워낙 곡 자체가 시대를 앞서간 곡인데다 그간 쌓인 공력까지 더해져 지금 들어도 세련된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목소리만으로도 들국화의 추억과 더불어 당대의 사회 분위기까지 느끼게 해주는 전인권 밴드와 묵직한 기타 사운드에 발라드 감성이 얹어진 부활, 천둥 호랑이 보컬리스트로 재탄생한 권인하밴드, 독특한 샤우팅 창법으로 날카로운 보컬의 맛을 살려내는 김종서밴드 그리고 대학가요제의 느낌이 여전히 묻어나는 풋풋함에 관록까지 붙은 다섯손가락까지. 밴드 하나하나가 레전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자기 색깔을 보여준다.

첫 번째 '몸 풀기'로 펼친 '밴드 평가전'은 이런 일곱 밴드의 개성들을 드러냈다. 당대를 살았던 중장년 시청자들에게는 이들이 부르는 노래 하나하나가 새록새록 추억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다섯손가락의 '풍선', 김종서밴드의 '아름다운 구속', 이치현과 벗님들의 '또 만났네', 전인권 밴드의 '행진',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사랑과 평화의 '장미', 권인하밴드의 '나의 꿈을 찾아서'까지, 선곡 자체가 이들 밴드들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는 마법처럼 느껴졌다.

밴드라고 하면 '록'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처럼 펑크부터 록발라드, 소울 등등 다채로운 장르의 밴드를 구성한 점은 <불꽃밴드>의 경연이 '고음지르기'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늘 보이던 병폐를 지워내는 효과를 만든다. 즉 권인하가 부르는 '나의 꿈을 찾아서' 같은 노래가 특유의 고음 창법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면, 이치현과 벗님들의 '또 만났네'는 고음은 별로 없어도 특유의 그루브감이 주는 어깨 들썩임이 저절로 느껴지는 무대로 또 다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서바이벌 오디션이 가진 재미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공연 도중 삽입되는 다른 밴드들의 멘트도 빠지지 않는다. "콜드 플레이네", "1등이네" 라고 말하며 상찬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빵점이다"라고 상대 무대를 평가절하는 디스전의 재미도 들어있다. 물론 디스라고 해도 충분히 상대 밴드를 예우한다는 느낌이 밑에 깔려 있는 게 사실이지만.

결국 서바이벌 오디션이기 때문에 몇 차례의 경합을 벌인 후, 점수를 합산해 꼴찌는 퇴출되는 룰이 세워졌다. 그만큼 치열한 무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 상황에서 밴드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와 그 선택이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즉 7,80년대 밴드의 색깔을 고스란히 살려 복고적이지만 보다 완성도 높은 경륜의 무대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에 맞게 과감한 편곡을 통해 새로움을 더하는 선택을 할 것인지가 그것이다.

첫 번째 평가전에서도 사랑과 평화나 이치현과 벗님들 같은 경우는 있는 그대로의 색깔을 그대로 살려내는 무대를 선보였지만, 김종서밴드나 권인하밴드는 편곡을 많이 넣어 색다른 무대를 보여주려 했다. 과연 이 양갈래의 선택은 어떤 결과들을 만들어낼까. <불꽃밴드>는 어찌 보면 우리네 가요의 밑바탕을 만들어낸 밴드 음악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그 불꽃이 어떻게 튀어나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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