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서이초 교사, 문제행동 학생 지도 어려움 겪어…학부모 전화에 ‘불안’
‘연필 사건’ 두 학생 외에도 문제행동 한 다른 두 학생 있어
서이초 교사 70% ‘월 1회’ 이상
학부모 민원·항의 경험…‘월 7회’ 이상도 15%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지난달 18일 숨진 채 발견된 2년차 교사는 학기 초부터 학급 내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을 생활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연필 사건’ 당시 학부모는 고인에게 어려 차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고, 고인은 알려주지 않은 휴대전화 번호를 학부모가 알고 있어 불안감을 느낀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4일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안’의 진상 규명을 위한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합동조사단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서이초가 발표한 입장문과 언론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사했다.
◇고인, 알려주지 않은 휴대전화 번호 학부모가 알게 돼 불안해 해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고인이 숨진 채 발견되기 엿새 전인 지난달 12일 오전 수업 중 A 학생의 가방을 B 학생이 연필로 찔렀다. A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자신의 이마를 그어 상처가 생겼다. 이른바 ‘연필 사건’이다.
동료 교원들은 연필 사건 당일 학부모는 고인의 휴대전화로 여러 번 전화를 걸었다고 진술했다. 고인은 자신이 알려주지 않은 휴대전화 번호를 학부모가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동료 교원들에게 말했다.
합동조사단은 “학부모가 고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게 된 경위나 폭언을 했는지 여부 등은 경찰 수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12일부터 고인이 사망한 18일까지 학부모와 수 차례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이 폭언을 들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고인에게 학부모가 부재중 전화를 많이 걸었고 동료교사는 “통화에서 학부모가 (고인에게) 엄청 화를 냈다”고 증언했다.
조사 결과 고인의 학급에는 ‘연필 사건’을 일으킨 A·B 두 학생 외에도 ‘가’ ‘나’라는 다른 두 명의 학생이 문제행동을 해 고인이 생활 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가·나 두 학생도 고인의 기록과 동료 교사의 증언에 등장한다.
고인은 가 학생에 대해 “상담을 받은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고 동료 교사에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나 학생은 울고 고집부리고 불안 증세를 보여 고인은 교감에게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다. 또 나 학생은 2~3일에 한 번씩 “선생님 때문이야”라며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감정을 거세게 드러냈다. 고인이 학부모에게 연락하자 상담을 오지 않고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데 학교에서는 왜 그럴까요?”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합동조사단은 고인이 학기 초부터 문제행동 학생으로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었고, 학기 말 업무량이 많았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1학년이) 2학년, 3학년으로 올라가면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을 분산하거나, 잘 (훈육을) 할 수 있는 선생님에게 배정한다”며 “초기(1학년)에 입학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문제행동 학생이 한쪽으로 몰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했다.
◇교장 입장문서 ‘연필 사건’ 빠진 것은 교육청 요청
서이초가 사건 직후 학교장 명의로 배포한 입장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셜미디어(SNS)에 유포된 의혹과 달리 고인이 담당한 학급은 올해 초부터 담임교사가 바뀌지 않았다. 고인이 1학년 학급 담임으로 배정된 것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업무를 맡은 것은 고인의 1지망에 따른 것이었다. 고인의 담임 학급에 신고 접수된 학교폭력 사안은 없었다.
서이초 학교장 입장문 초안에 있던 ‘연필 사건’ 내용이 학부모 요구로 최종본에서 빠졌다는 의혹에 대해 합동조사단은 학교가 아닌 교육청 요청으로 삭제됐다고 밝혔다. ‘학급 내 정치인 가족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유명 정치인의 이름을 학교가 관리하는 기록(학부모 이름 등)과 대조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다만 학교가 친조부모·외조부모의 직업·이력을 관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명이 거론된 정치인의 가족은 없다고 추정한 것으로, 정확하게 확인한 것은 아니다.
고인에게 수업 여건이 좋지 않은 교실을 배정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조사 결과 밝혀졌다. 다만 고인이 수엽 여건이 좋지 않은 비선호 교실을 사용한 것은 사실이며, 이유는 수업공간이 부족해서다. 설세훈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브리핑에서 “서이초는 주변에 재건축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어 과밀학급이 됐다. (교실당) 학생수를 줄이기 위한 공간을 찾다 보니 급식실 공간을 조정해서 일반 교실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서이초 교사들 “학무모 지나친 간섭·막말에 대응하기 어려워”
장 차관은 서이초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에 대해 “지난해와 달리 올해 학급 부적응 학셍에 대한 생활 지도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추정된다. 학부모 민원에 대해서도 굉장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 같다”며 “학기 말에 나이스 업무와 각종 기록 처리가 많이 몰려 있었다. 여러 가지가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평가를 해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합동조사단은 서이초 교원 65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7~28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41명이 응답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월 1회 이상 학부모 민원과 항의를 겪는다고 답했다. 월 7회 이상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6명(15%)이었다. 응답자의 49%는 교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또한 정서불안이나 품행장애 등 부적응 학생 지도를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과밀학급 문제와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막말에 대응하기가 어렵다고 응답했다. 교사들은 ▲출결 민원 전자시스템 도입 ▲학급당 학생 수 제한 ▲민원처리반 도입 ▲악성 민원을 교권 침해로 신고 ▲아동학대방지법 개정 ▲부적응 학생 지도를 위한 학부모 책임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고인의 업무용 컴퓨터, 학급일지 등이 경찰에 이미 제출되어 한계가 있었다”며 경찰에 조사에서 밝히지 못한 부분을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했다. 장 차관은 “교단에 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교사의 죽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다시는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학교 공동체의 목소리를 잘 듣고 실효성 있는 교권보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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