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십조 교부금 못 건들면서 공무원 출장비엔 호통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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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공무원 출장비에 너무 쓸데없는 지출이 많은 것 아니냐"고 호통쳤다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손해가 날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러는 동안 교부금 제도 개편의 가능성은 작아질 뿐이다.
그러나 멀리 보면 처우가 열악한 공직 사회를 기피하는 탓에 멍청한 공무원들만 남을 것이고, 공공서비스 질은 저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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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공무원 출장비에 너무 쓸데없는 지출이 많은 것 아니냐”고 호통쳤다고 한다. 대통령은 특히 식비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평소 일과 중에도 본인 돈으로 밥을 사 먹는 것인데, 출장 때라고 왜 밥값을 주냐는 것이다. 공무원의 국내 출장 식비는 하루 최대 2만5000원이다. 한 끼에 8000원꼴이다.
공무원들은 조용히 분통을 터뜨렸다. 나랏일 하러 나가서 이제는 눈칫밥까지 먹게 생겼다고 말이다. 실제로 요즘 공무원들의 출장비 정산이 매우 깐깐해졌다는 후문이다. 가령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국외 출장의 경우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은 만큼은 식비에서 감액해 지급하는 등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작년에도 정부는 “민생경제 어려움을 감안해 ‘솔선수범’ 차원에서 엄격하게 공무원 정원·보수 관리를 추진하겠다”고 했고, 임금을 1.7%밖에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돈을 아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은 되레 줄어든 현실이다.
공무원 보수를 동결 수준으로 묶고 출장비를 문제삼기 시작한 이유는 나라 곳간이 비어서다. 써야 할 돈은 많은데 걷히는 돈은 없으니, 예산당국은 지금 물밑에서 기상천외한 절약 방식을 ‘총동원’하는 분위기다. 각 부처의 낙전(落錢)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사업 예산을 배정받은 한 부처가 낙찰 금액을 10% 깎아 9000만원만 들였으면, 나머지 1000만원은 예산 효율화 결과물이니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해 왔다고 한다. 이를 소위 ‘낙전’이라고 칭한다. 최근 각 부처는 이런 낙전 목록을 모두 정리해 오라는 지침을 받았다. 수금하겠다는 뜻이다.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쓰자는 마음가짐은 좋다. 그런데 정작 손대야 할 큰 돈은 못 건드리면서 작은 돈만 건드린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손질해야 할 대표적인 큰 예산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이다. 정부는 내국세의 20.79%를 무조건 교부금으로 내려보내는데, 최근 2년 초과 세수 영향으로 교부금이 증가하면서 쌓인 기금도 크게 늘었다. 이렇게 지난해까지 저축된 전국 시·도교육청 기금은 22조1394억원에 달한다.
학령 인구가 급감하는데 매년 내려가는 교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다 보니 낭비가 심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매년 학생들에게 새 태블릿PC를 사주는가 하면 전교생이 10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 학교에서 한끼당 3만7000원짜리 호사스러운 급식을 먹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도 출범 직후엔 이 이슈에 꽤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은 논의가 쏙 들어간 분위기다. 한 재정 전문가는 “교부금 논의가 아무 데서도 의제로 오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손해가 날 일을 하지 않는 것인데 그러는 동안 교부금 제도 개편의 가능성은 작아질 뿐이다.
공무원들을 쥐어 짜내면 당장은 돈이 쉽게 모인다. 그러나 멀리 보면 처우가 열악한 공직 사회를 기피하는 탓에 멍청한 공무원들만 남을 것이고, 공공서비스 질은 저하될 것이다. 터무니없는 규모의 교부금을 개편하는 일은 쉽사리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긴 기간 우리 재정을 안심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호통칠 우선순위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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