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록2' 이성민의 순응 그리고 내공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주어지는 역할의 스펙트럼이 좁아지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숙명과도 같다. 그렇기에 많은 선배 배우들이 후배에게 '네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해둬'라는 조언을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비록 역할의 다양성은 줄더라도 연기력의 깊이는 바로 세월을 통해 쌓는 내공으로 만들어진다.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몸에 밴 노련함이 배우를 이끄는 경지. 배우 이성민의 연기가 결코 흔하디 흔한 '형사 캐릭터'가 아닐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이유 아닐까. '택록'이 긴 세월 모아 온 형사록처럼 말이다.
디즈니+ 오리지널 '형사록2'는 협박범 '친구'의 숨은 배후를 쫓기 위해 다시 돌아온 강력계 형사 택록의 마지막 반격을 그린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이성민은 극 중 주인공 '김택록'으로 분했다.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이성민은 시즌1과 결이 다른 시즌2를 예고했는데. 체력적 소모가 큰 시즌1과 달리 시즌2에서는 머리를 써야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시즌1에서는 액션의 비중이 높았다면, 시즌2는 이전보다 치밀하고 끈질긴 택록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시즌1과 시즌2 중 어떤 형사의 모습이 자신과 잘 맞았을까. 이성민은 "결과적으론 시즌2가 조금 더 맞는 거 같다"고 답했다. 이성민은 "시즌2가 몸이 더 편했지만 정적인 연기가 많아 걱정했다. (역동적인 움직임이 없어서) 긴장감을 만들 수 있을까 했다. 작업할 때는 뭔가 그물을 쳐놓고 고기가 들어오기만 바라는 것 같아 조금 걱정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편집 덕분에 긴장감이 살아난 것 같다고. 그는 "결과물을 보니 근사하게 나온 거 같다. 후반작업을 통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라면서 "사실 촬영한 것에 비하면 분량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많이 압축하고 불필요한 장면을 편집하면서 타이트하게, 속도감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편집된 거 같다"며 공을 돌렸다.
물론 형사란 직업상 시즌2에서도 액션신이 있었지만, 이성민은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라며 시즌1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시즌1 때는 정말 많이 뛰었다. 시즌2에서는 그렇게 막 뛰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경수진, 이학주, 김신록 등의 액션이 신선했다는 이성민은 "'니들이 뭐 했다고, 뭐가 힘들어!'하고 놀렸다. 아마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특별한 액션신을 소화한 것은 아니지만, 시즌2에서도 '달리기'는 있었다. 시즌1에서도 달리며 '형사록'의 시작을 알렸던 이성민은 시즌2에서도 달리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다만 "마지막에 파출소에서 천천히 걸어나오다가 막 뛰었다. 전력질주를 했는데, '컷'소리가 안 들려서 (전력질주로) 한참을 뛰었다"라고 회상한 이성민은 "그런데 나중에 보니 걸어나오는 부분만 잡히고 내가 뛸 때는 드론이 풀샷으로 잡아버리더라. 그래서 전력질주가 걷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마지막 장면 비화를 밝혔다. "간만에 전력질주했더니만.(웃음)"
그렇다면 시작과 끝을 항상 달려온 김택록에게 '달리기'란 무엇일까. "늘 달리는 직업이다. 형사란 그런 직업 아니냐. 그런데 늘 달리면서도 택록은 '다신 안 해야지' 한다. 주변에서도 '너는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다'고 하지않나. 힘들어 하기 싫은 일인데, 달리고 싶지 않은데도 하는. 그런 '업'인 거다"라고 설명했다.
극 중 김택록은 '친구'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엄청난 큰 충격에 빠진다. 그만큼 가슴 아프면서도 커다란 반전이 시즌2에 숨겨져있는데, 배우들도 알고 놀라지 않았을까 싶었다.(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뭉뚱그려 언급) 이성민은 "놀라진 않았다. 시즌1 때 감독님이 이미 '형사록'의 큰 그림을 강의(?)해주셨다. '친구' 뒤에 누가 있고, 김택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 그래서 (반전 내용을) 다 알고 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김신록이 맡은 '연주현' 역시 그 반전과 관련한 중심인물이다. 시즌2 극 초반에는 김태록과 부딪히며 의중을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와 관련해 이성민은 "김신록은 마치 '제2의 친구'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묘한 경계에 있어야 했다. 또 김신록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자신이 범인인 것처럼, 혹은 아닌 것처럼 연기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반전스토리의 충격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연기자들도 많은 노력했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갈등이 절정에 다다르고 진범을 체포하는 마지막 순간. 김택록에게서 형사로서 범인을 잡았다는 환희와 자신의 손으로 모든 걸 정리하는 슬픔 등 정말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오묘한 표정과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이성민은 "그 장면이 많이 힘들었다"라며 증거물을 내밀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성민은 "시간적 여유가 많진 않았다. 정말 타이트한 시간이었고, 그 장면에 출연하는 배우분들이 많아 시간이 넘어가면 예산이 오버되는 것도 있었다.(웃음)"고 너스레 떨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연기해야할까 굉장히 복잡했다. 그래서 계속 긴장했다. 감독님과 여러번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동안 쌓아온 서사와 연기를 베이스로 본능적으로 연기를 했다. 오히려 다른 신에 비해 디테일하게 계산한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동안의 인물들과 관계, 내가 쌓아온 과거를 그 짧은 대사 안에 표현하는 힘들었다. (디테일한 계산은 하지 않았지만) 감정의 피치, 목소리 톤은 올렸던 거 같다"라고 덧붙였다. 시즌1부터 켜켜이 모든 것이 쌓여 그 장면을 만든 것이라는 이성민이었다.
'형사록'에서는 택록 주변의 많은 인물들이 희생하거나 죽게 된다. 이로 인해 택록은 공황장애를 앓게 되며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고 끊임없이 환각에 시달리기도 했다. 연기를 하는 배우도 다소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성민은 "어파치 내가(배우가) 극 중 감당해야 할 무게라 생각해 힘들진 않았다. 트라우마가 발현되고 공황발현 했을 대 표현하는 연기가 힘들었다. 처음 대본받았을 때는 공황장애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대본과 받았다. 그만큼 중요한 요소였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형사록' 연기를 하며 이성민이 느낀 고충은 또 있었다. "내레이션이 나오는 걸 보통은 현장에서 오디오를 딴다. 그런데 이번엔 현장에서 안 하고 후시녹음으로 했다. 상황을 객관화해 설명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예민한 상태에서 발현되는 목소리라 집중이 필요하다 생각해서 스튜디오에서 후시녹음을 했다. 그게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형사록' 속 김택록만 아니라, 이성민의 연기에는 '세월'이 묻어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영화 '리멤버' 등에서는 본인의 나이보다도 훨씬 많은 노인으로 분하기도 하고,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처럼 코믹한 분위기에선 생기 넘치는 기운 덕분인지 훨씬 젊어보이기도 하는 등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진다.
이성민은 "저는 다작배우다. 작품을 선택할 때 '하고 싶어지는 작품, 하고 싶은 캐릭터'가 매력적이라 생각해서 선택한다"면서 "그럼에도 캐릭터는 변화를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캐릭터, 다른 연기, 다른 모습. 결국엔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거 같다. 그렇다보니 나름 다르게 연기를 하려고 했던 거 같다"고 이야기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와 연구 끝에, 그때그때 맡은 캐릭터 연령에 맞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흐르면 연기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이성민 역시 "내 나이에 맞춰 할 수 있는 역할이 적어질 것이다. 캐릭터의 다양성도 떨어질 거다"고 생각했다. "순응하면서 연기할 거다.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냐 보다 저에게 오는 역할들. 이게 점점 많아지진 않을 테니 그것에 맞게 순응하고 싶다. 또 여전히 새롭고 다른 얼굴과 모습, 관계를 만나는 게 제가 연기자로서 할 도리인 거 같고 또 그러고 싶다"라고 말했다.
'형사록' 시즌2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김택록이란 캐릭터 역시 이성민에게 새로운 '형사' 캐릭터 중 하나가 됐다. "지금까지 많은 영화·드라마에 주인공인 캐릭터는 많았지만, 그중에 '특별하고 독특한 캐릭터가 생겼구나'란 생각이 든다. 자책하고 반성하고, 과거의 일을 꺼내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놓는 캐릭터는 지금까진 없었던 거 같다. 매일 일기를 쓰는 형사, 형사록을 버리지 않는 형사.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형사'가 하나 만들어진 거 아닌가란, 그렇게 위안을 삼았다"고 덧붙였다.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
Copyright © 스포츠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