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LH 3년전 ‘감리 담합’ 조사 요청했는데…공정위가 사실상 묵살
당시 공정위, 조사 필요성 등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입장 밝혀
(서울=뉴스1) 신현우 박기현 손승환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철근 누락 아파트’ 감리 문제를 지적하면서 자사 전관을 포함한 담합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LH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의뢰 방침을 밝힌 가운데, 3년 전에도 LH가 유사한 조사를 공정위에 요청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당시 공정위는 조사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뜻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해당 사안을 적극적으로 조사했다면 ‘철근 누락’ 사태 일부를 막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국토교통부는 LH가 발주한 91개의 무량판 구조 아파트 지하주차장 ‘철근 누락’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결과, 총 15곳에서 이 같은 문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설계·감리 전관예우·담합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철근 누락이 발견된 현장의 공사를 감독하는 업체에 LH 퇴직자가 사실상 전부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설계업체의 경우(현장 기준) 절반 이상에 LH 퇴직자가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 위에 지붕을 바로 얹는 방식으로, 건설 비용·시간이 적게 들고,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기둥과 맞닿는 부위에 압력이 몰리면서 구멍이 뚫릴 수 있어 완충 역할을 하는 전단층을 넣고, 이를 보강하기 위한 전단 보강근(철근)을 시공한다.
4일 <뉴스1>이 정부 등을 종합 취재한 결과, 지난 2020년 LH가 공정위에 ‘부당한 공동행위 여부 조사 요청’ 공문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공문에서 LH는 지난 2019년 이후 자사에서 발주한 건설사업관리용역(감리) 일부 입찰 건에서 부당한 공동행위(담합)가 의심돼 조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당시 LH는 감리 종합심사낙찰제(종합적인 기술 제안과 입찰 가격 제안을 평가해 종합 점수가 높은 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 입찰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일부 건이 통상적인 수준을 상회하는 높은 금액으로 낙찰됐다고 전했다.
이어 단순히 낙찰률이 상승한 사실만으로 담합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종심제 낙찰자 결정 구조를 감안할 경우 부당한 공동행위의 개연성이 있다고 LH는 덧붙였다.
LH는 종심제 평가 구조상 기술 능력이 가장 우수한 업체가 종합심사 1위(낙찰) 가능성이 높지만 가격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 낙찰을 위해 경쟁업체 입찰가격을 예상해 순위가 역전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입찰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경쟁업체의 입찰가격은 통상의 수준으로 예상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상의 가격 범위(81% 내외)보다 6~7% 이상 높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해 낙찰됐으며 이때 해당 입찰에 참여한 경쟁업체의 입찰 가격도 유사한 수준으로 동반 상승한 점은 입찰 가격 수준 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었다고 의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LH 관계자는 “지난 2020년 당시 감리 담합 관련 조사를 공정위에 요청한 건 맞다”면서도 “자세한 세부 사안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당시 (LH가 제기한 조사와 관련해) 조사의 필요성 등을 판단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답하며 “혐의가 명백하지 않아 모니터링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 조사에 아쉬움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LH가 발주한 감리 등에서 가격 담합을 비롯한 불공정행위가 발생한 상황을 공정위가 밀도 있게 들여다봤다면 전관예우 등으로 불거지는 다양한 문제를 파악했을 것”이라며 “철근 누락 문제로 감리 담합 의혹 등이 지적되고 있는데, 3년 전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감사원은 LH 설계용역 수의계약과 감리 종심제 과정에서 불공정한 평가가 벌어졌는지 확인하고 공정한 평가체계가 만들어지도록 시정을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LH는 철근 누락 아파트의 담합 등 전관 특혜 의혹에 대해 엄중히 대처할 계획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LH) 전관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는 각오로 고강도 대책을 마련했다”며 “설계·감리 담합 및 전관예우 의혹이 불거진 업체에 대해서는 공정위 조사를 의뢰한다”고 말했다.
hwsh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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