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남이 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남남'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평범한 가정이라도 엄마와 딸의 관계는 유독 이야깃거리가 많다. 부자지간에 있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모녀지간에서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라 하는데, 굳이 이러한 심리학·정신의학 용어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많이들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애증의 관계라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딸은 자라서 나중에 엄마랑 친구가 된다'고들 한다. 그만큼 엄마와 딸은 편하고 소통이 잘 된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듯 가까우면서도 애증 어린 모녀지간에 대한 상상을 한껏 부풀리는 조합이 탄생했다.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남남'(극본 민선애, 연출 이민우)에서 걸크러시 전혜진과 소녀시대 최수영이 엄마와 딸로 만난 것이다. 요즘말로 '힙'한 K-모녀다.
'남남'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절대 남일 수 없는 사이다. 나가면 자매 사이로 보는 엄마 김은미(전혜진)와 딸 김진희(최수영)는 툭하면 서로에게 짜증이 나고 불같이 화를 내며 싸우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주려 한다. 아웅다웅 유치하게 다투다가도 무심히 캔맥주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피로가 가시고 정감이 샘 솟는다. 서로에게 톡톡 쏘아대는 모녀지간의 달콤살벌한 모습이 폭염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달래는 청량한 탄산수 같다.
발랑 까진 청소년기를 보내고 고등학생 때 진희를 낳은 은미는 지금껏 철이 덜 들었다. 1~2회를 '19금'으로 내놓을 만큼 조신함과는 거리가 먼 은미의 행동거지가 진희를 수시로 뜨악하게 만든다. 특히 전작들에서 프로페셔널 우먼 파워를 폭발하는 멋짐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전혜진이 '남남'을 통해 똘기 충만한 센 언니로 변신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은미만 보고 있으면 시트콤 같을 정도로 전혜진이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사실 전혜진의 대리만족도 크다. 실제로는 아들만 둘이고, 모녀 연기도 난생 처음 하는 것이어서 색다른 맛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혜진에게는 평소 자신과 너무도 다른 캐릭터를 만난 것이 무엇보다 신선하다. 은미는 절제미를 추구하는 전혜진과 딱 정반대의 모습 같은 부산스러운 사고뭉치 캐릭터다. 그렇기에 전혜진은 "이 정도로 무장해제하고 각이 없는 인물은 처음 해보는 것 같다"면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고 제작발표회에서 고백하기도 했다. 평소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 "짜릿하게 연기했다"고 하니 팬들의 환호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은미와는 반대로 진희는 일찍 철이 들었다. 철부지 같은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한다. 미혼모인 엄마가 행여나 힘들다고 할까 봐 어려서부터 집안일도 손수 하고, 공부도 잘했다. 소녀시대 때부터 줄곧 만능 멀티테이너로 반듯하게 이미지를 쌓아온 최수영과 딱 어울리는 캐릭터다. 연기자로 나설 때마다 늘 부족함 없는 모습을 보여온 최수영이기는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맞춤옷 같은 캐릭터를 만나 물 흐르듯 편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만족감을 높이고 있다.
더욱이 원래 전혜진의 오랜 팬이었던 최수영이다. 한 작품에서 만난 것만으로도 좋은데, 모녀지간이라니 "인생에 몇 번 없을 행운"이라고 말할 만하다. 전혜진에게 팬심을 다하듯 엄마에게 살뜰한 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극에 몰입하다 보면 "K-장녀 성장기 같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철부지 엄마의 성장기가 아니라 딸의 성장기라고 하는 걸 보니, 진희가 애증으로 뒤섞인 엄마 은미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순간이 오는 모양이다.
그래도 그 엄마에 그 딸이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이 된 진희는 거침없는 행동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눈총을 받곤 하는데, 영락없는 엄마 DNA다. 최근에는 은미 주변을 맴도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잡겠다고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그 바람에 경찰대 선배이자 파출소장 은재원(박성훈)은 코가 깨지고 어깨가 빠지기까지 했다. 진희도 보통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은미를 몰래 따라다니던 사람이 알고 보니 30년만에 찾아온 진희의 친부 박진홍(안재욱)이란다. 자꾸만 엇박자가 나는 엄마와 딸 사이에 갑자기 생물학적 아빠라는 사람까지 나타났으니 모녀지간이 가야 할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한 지붕 아래에 사는 엄마와 딸을 굳이 '남남'이라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듯 물과 기름이 섞인 듯 겉돌아도 어쩔 수 없는 모녀지간을 전혜진과 최수영이 즐거운 케미스트리를 일으키며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민우 PD는 "배우들이 마치 시즌제 드라마의 네다섯번째 시즌을 찍는 것처럼 찰떡 호흡을 보였다"고 할 정도니 시청자들이 '남남'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괜히 모진 말로 상처 주고 후회하는 모습이나 화해하고 싶어 좌불안석하면서도 문자로 툭 "여수갈래. 2박3일?"이라고 보내며 사과의 말을 대신하는 모습 등 공감 백배의 상황들도 드라마에 애정을 듬뿍 싣게 한다. 엄마와 딸의 한 집 살이 대환장극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냥 녹아있는 모습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편하고 좋은 '남남'이다. 시끌벅적 유난스러워도 딱 현실 모녀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볼수록 매력이다. 그런 '남남'이 이제 후반부에 돌입한다. 총 12부작으로 벌써 6회를 마치며 반환점을 돌았다. 정들자 이별인 듯한 '남남'은 남은 시간 동안 은미와 진희의 사랑과 썸 이야기에 좀더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종영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커지는 한편, 남자들의 개입이 엄마와 딸의 애증 관계에 변수로 작용하면서 전혜진과 최수영의 케미스트리는 어떻게 변모할지 궁금증이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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