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소프트랜딩' 향해 가는데…유럽은 '침체 일로' 울상
美보다 성장세 낮고 물가 상승률도 높아
우크라 전쟁 여파…ECB 정책 실패 지적도
유럽이 올해 경기침체에 빠질 거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소프트랜딩(연착륙)’을 향해 가고 있는 미국과 확연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유럽과 미국은 모두 인플레이션에 긴축으로 맞섰지만, 그 효과는 미국에서만 유의미하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에너지 수급 부문에 직격탄이 가해진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 속도를 조절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실적이 고꾸라진 탓에 증시도 맥을 못 추고 있다.
美와 달리 성장 동력 약해
4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지난 7월 중순 이후 약 2주 동안 2.6% 하락했다. 화폐 가치 하락은 통상 경기침체 신호로 여겨진다. 경기 수축기에는 소비‧투자가 줄어들면서 화폐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 간 국채 수익률 10년물 스프레드도 올해 들어 최고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 수치는 지난 4월 2014년 이후 약 9년 만에 최저치인 100bp(1bp=0.01%포인트)까지 떨어졌다가 넉 달 새 급격히 반등해 160bp를 돌파했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 국채(분트)와 미 국채 간 스프레드는 유로‧달러 환율의 향방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모두 유럽 경제 비관론에서 비롯된 결과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카르미냐크의 케빈 소젯 투자위원회 위원은 “유럽 전체의 경기침체는 독일 국채 수익률을 끌어올릴 것”이라며 미 국채를 팔고 분트를 사들였다고 밝혔다. BNY멜론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외 지역 투자자들이 순매도한 미 국채 규모는 약 500억달러(약 65조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분트에는 40억달러(약 5조2000억원)의 투자 자금이 순유입됐다.
올해 2분기 미국 경제는 직전 분기 대비 2.4%(연율) 성장하며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회복세를 나타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3%에 그쳤다. 독일 GDP가 0% 성장률을 나타내며 특히 부진했다.
유럽에선 인플레이션도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유로존 물가 상승률은 5.3%로 정점(2022년 10월‧10.6%) 대비 반토막 수준까지 낮아졌지만, 미국(3.0%)보다는 높게 유지됐다. 미 중앙은행(Fed)이 지난 6월 기준금리를 한 차례 동결하며 긴축의 강도를 저울질하는 동안 유럽중앙은행(ECB)은 9회 연속 쉼 없이 긴축 페달을 밟아 왔다. 그런데도 정책 금리는 ECB 목표치(2%)를 두 배 이상 웃돌고 있다.
미국과 유럽 간 격차는 증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600지수는 에너지 위기 완화에 힘입어 올해 1~6월 8.5% 올랐지만, 최근 들어 상승세가 꺾였다. 해당 지수에 편입된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17% 쪼그라든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실적 감소 폭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최대다. 미국 S&P500지수 편입 기업들과 비교하면 2배 넘게 뒷걸음질했다. 유럽 증시에는 뉴욕증시의 빅테크나 인공지능(AI)과 같이 랠리를 이끌 테마도 없었다.
이런 차이는 일차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에 의해 초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쟁에 의한 식품‧에너지 부문 공급망 피해는 미국보다 유럽에 더욱 직접적으로 가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ECB의 긴축 대응을 ‘실패’로 규정짓는 견해도 있다. 유로존 전반의 성장 둔화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영국계 투자회사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아리오 에마미 네자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미국의 수요와 성장세는 강하다. 반면 유럽은 동력이 약하다”며 “ECB는 실수를 저질렀고, 나중에야 이를 인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오는 9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ECB 내 ‘금리 동결’ 목소리 커져
ECB 내에선 침체 우려를 고려한 금리 동결 필요성에 점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파비오 파네타 ECB 집행이사는 이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연설에 나서 “현재의 금리 수준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으로도 금리 인상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추가 인상은 경제에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폈다.
파네타 집행이사는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만 의존하는 접근법은 과다 긴축으로 인한 리스크를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며 “정책 금리는 중기적 관점에서 가격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수준인 데다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의 고착화 위험이 낮은 현재 상황에선 동결이 유효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소비자 물가에 선행하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유로존에서 6개월 연속 뒷걸음질한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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