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서 살인 예고글 속출…대전서 또 칼부림 사건

2023. 8. 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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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된 한국 ‘묻지마 범죄 포비아’
인터넷 살인 예고글 하루만에 12개 올라와
시민들 “누구든 범죄 대상 될 수 있어” 불안
서현역 흉기 난동 피해자 2명 뇌사 가능성
대전 한 고등학교 교무실서 교사 1명 피습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주변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전날 서현역과 연결된 백화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사건이 발생해 시민 14명이 다쳤다. [연합]

대한민국이 ‘범죄도시’가 됐다.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마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며 시민들을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 서울 관악구 신림역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에서 20대 남성이 또 다시 흉기를 휘둘렀다. 이런 가운데 4일 오전 대전 대덕구 고등학교서는 칼부림으로 교사가 피습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살인 예고’ 게시글이 지속해서 올라오면서 ‘모방 범죄’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달 21일 발생한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을 따라한 듯한 범죄 예고가 잇따르며 경찰이 전담대응팀을 구성한 상황에서, 3일 또 다시 흉기 난동 사건이 서현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일련의 도심 흉기 난동이 잠재된 범죄 욕구를 표면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 속출에 시민들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

4일 기준 디시인사이드 등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 시내를 범행 장소로 지목한 살인 예고글이 13건 가량 게시됐다. 신림역 흉기 난동 이후 다수의 살인 예고 글이 지속적으로, 연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같은 날 오후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예고성 글이 인터넷에 잇따라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첫 번째 글은 “8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에서 오후 10시 사이에 오리역 부근에서 칼부림하겠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도 없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경찰도 죽이겠다. 나를 죽이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죽이겠다”는 내용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다. 해당 글은 분당지역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퍼졌고 경찰에도 신고가 접수됐다.

비슷한 시각 해당 사이트에는 “내일 아침 잠실역에서 20명 죽일 거다”라는 내용의 글도 올라왔다. 뒤이어 오후 11시께는 한 이용자가 디시인사이드 한석원 갤러리에 “내일 밤 10시에 한티역에서 칼부림 예정”이라고 썼다. 이들 게시물은 현재 모두 삭제됐다. 경찰은 인근 지구대 인력 등을 해당 역과 일대에 투입해 범죄 정황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에게 테러하겠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4일 오전 2시10분 디시인사이드 한석원 갤러리에는 “내일 5시 윤석열 집 앞에 폭탄 설치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온 사실을 확인하고 작성자 신원 파악과 추적에 나섰다.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은 일상에서 이상동기 범죄에 휘말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두려워하는 분위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직장인 이모(28) 씨는 “판교역에 지인과 약속이 있어 퇴근 후 이동하던 중에 속보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 세상이 흉흉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48) 씨는 “성별과 상관없이 다수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나. 언제든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중밀집지역을 피하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경기 분당에 거주하는 여성 김모(28) 씨는 “사건이 발생한 백화점을 주말마다 자주 갔었는데, 이제는 가지 못할 것 같다.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 계속 떠오를 것 같다”며 “출근을 하는 과정에서도 매일 밀집장소를 다닐 수밖에 없는데 웬만하면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우려했다. 서모(31·여) 씨 역시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 것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 드는데 조심한다고 대비가 되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 놓고 길거리 다니지도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이번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을 신림역 사건을 모방한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 나온다. 배상훈 우석대 경창행적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모방 범죄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 A씨도 최근 조선이 일으킨 사건을 접하면서 실제 범행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신림역 사건 이후 다수의 살인 예고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점에서 모방범죄인 이른바 ‘조선 효과’가 발생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사회적 불만과 불쾌 감정이 이면에 깔린 이들에게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종의 활성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도심에서 연이은 이상동기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했을 것으로 봤다. 국가 차원에서 이상동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과 관련 연구가 시급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을 비롯한 살인 예고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묻지마 범죄로 인한 포비아가 국민들한테서 자리잡기 시작했다”며 “이상동기로 인한 범죄에 대한 연구나 통계도 전무하기에 추후 이런 범죄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응도 부족한 시점이다”라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향후 이상동기 범죄가 다중밀집공간에서 발생할 경우 어떠한 수칙으로 이를 대처할 지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소방당국에 따르면 서현역 사건으로 이날 오전 6시 기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 2명이 뇌사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대 피의자 A씨가 ‘분열적 성격 장애’를 가진 것으로 확인하고 정신적 질환에 따라 범행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은 1차 조사에서 A씨가 “특정 집단이 날 스토킹 하고 괴롭혀 죽이려고 한다. 내 사생활을 전부 보고 있다”고 진술하는 등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대인기피증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정신의학과 진료에서 분열적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별다른 범죄 경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김영철·안효정 기자

yckim645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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