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러 핫도그? 노노, 이젠 5달러” 노점 20년차가 말하는 ‘코로나 이후 뉴욕’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3. 8. 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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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뉴요커]
알리는 하루에 약 10시간씩 거리에서 일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돌아온 일상에 만족한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지난달 29일 오후 1시(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웨스트 52번가와 브로드웨이의 교차로에 회색 모자를 쓴 한 남성이 1m 너비의 카트를 덜컹거리며 나타났다. 맨해튼의 상징인 타임스 퀘어에서 걸어서 5분 남짓한 위치한 곳에 자리 잡은 이 남성은 카트 뒤에 엉덩이 하나 놓일 만한 사이즈의 의자에 앉아 가스에 불을 붙였다. 핫도그 카트 근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유명 베이커리 ‘안젤리나’의 매니저 아이작은 “카트가 가게 앞을 막는다고 면박을 줘도 참 성실히도 나와서 장사를 한다”며 웃었다.

핫도그를 파는 남성의 이름은 알리(Ali)로 1969년생이다. 모로코에서 태어나 옷 장사를 하다 2003년 미국으로 넘어 왔다고 한다. 2004년부터 핫도그를 팔기 시작한 알리는 코로나가 닥친 2020년 이후 약 1년을 제외하면 20년째 ‘뉴욕 핫도그 장사’로 살았다. 코로나 광풍이 휩쓸고 가기 전과 후를 세계의 중심에서 지켜본 알리가 보는 현재의 뉴욕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뉴욕 핫도그’도 피해가지 못한 인플레이션

미국은 현재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또다시 끌어올린 뒤 다음 회의 때 한 번 더 올릴 수 있다고 암시했다. 인플레이션 충격은 ‘뉴욕의 명물’ 핫도그도 피해가지 못했다. 알리의 주력 메뉴는 핫도그, 비프 핫도그, 프레첼 등 세 가지(메뉴판 명칭 기준)다.

소시지를 끓는 물에서 익힌 뒤 빵에 끼워서 판다고 해서 이른바 ‘더티 워터 핫도그(dirty water hotdogs)’로 불리는 보통 핫도그는 5달러(약6400원)다. 비프 핫도그는 소시지 길이가 보통 핫도그 보다 더 길고, 물에 익히지 않고 불에 구워 판다. 10달러(약 1만2800원)에 파니 ‘착한 가격’은 아니다. 뉴욕 식업계에 따르면 10년 전만해도 핫도그는 2~3달러면 사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핫도그 원재료인 밀가루 가격도 전보다 10% 안팎 오르고, 코로나 영향으로 인건비도 훌쩍 뛴 영향 등이 가격 상승에 반영됐다고 한다. 알리 가게의 경우 도심에 있어서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비싼 측면도 있다. 굵은 소금이 뿌려져 있는 프레첼은 5달러. 사람들이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 특히 인기가 있는데 몇 년 전만 해도 2~3달러면 사 먹을 수 있었지만 가격이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기온이 33도 이상 오른 날이었지만 알리의 핫도그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이어졌다. 알리는 선풍기 하나 없이 일하며 "바람이 시원해 괜찮다"고 했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핫도그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묻자 알리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핫도그 카트를 운영하려면 뉴욕시에 돈을 내야 하는데 알리의 경우 한 해 약 10만 달러(약 1억2800만원)를 낸다고 했다. 코로나 직전에 비해 자릿세가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돈이다. 지난해 음식 전문 온라인 매체 ‘마케팅 푸드 온라인’에 따르면 가장 자릿세가 비싼 핫도그 가게는 센트럴 파크 동물원 앞에 있는 곳으로 1년에 28만9500달러(약 3억7000만원)를 낸다. 일을 마치고 카트를 끌고 집에 갈 수도 없는 터라 맨해튼 구석구석에 있는 창고 중 하나에 세워두는데 이용료가 월 400달러(약 51만원)에 달한다. “카트가 깨끗한 거 보니 열심히 닦은 것 같다”고 말하자 알리는 “20달러를 받고 카트를 닦아주는 사람도 창고에 있다”고 했다. 핫도그 장사에도 ‘틈새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핫도그 장사로는 부족해 우버도 몬다

알리의 핫도그 가게를 찾는 손님 중 70%는 관광객이다. 그는 손님 수에 대해 “코로나 전 수준을 회복했다. 뉴욕이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알리는 “코로나가 닥친 2020년 거리를 잊을 수 없다. 거리는 사람들 발길이 끊겼고 2020년 여름부터 1년간은 아예 일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뉴욕시에 따르면 뉴욕을 찾은 관광객은 팬데믹 직전인 2019년 6660만명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20년엔 2230만명으로 67% 급감했다. 올해는 다시 약 6100만명으로 크게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관광객이 많은 금요일과 주말은 핫도그 가게를 열고, 다른 요일엔 뉴저지에서 승차 공유 서비스인 우버 기사로 일한다. 그동안 카트는 맨해튼 창고에 둔다. 전에는 음식만 팔았는데 세상이 바뀌면서 소득 원천을 다각화했다고 했다. 알리는 “자녀가 셋이라 들어가는 돈이 많고 매달 퀸즈에 있는 방 2개짜리 집 렌트비로 2200달러를 내려면 핫도그만 팔아서는 부족하다”면서 “그래도 우버를 몰 수 있어서 사는데 지장은 없다”고 했다. 월 소득은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평균(average) 정도 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같은 곳에서 오래 일하다보니 인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분을 갖게 된다. 핫도그 카트 앞 유명 베이커리 '안젤리나'의 한 직원이 핫도그를 사고 있다. /뉴욕=윤주헌 특파원

◇알리 “삶은 힘들지만 다시 돌아온 일상에 감사”

알리는 분명 넉넉한 사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자주 가게를 찾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는 기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지금도 삶은 늘 힘들지만(tough) 예전처럼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thanks to God)’”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비프 핫도그 두 개(20달러)와 프레첼 하나(5달러)를 달라고 했다. “친구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다”며 공짜로 가져가라고 하는 그에게 20달러 짜리 두 장을 꺼내 건넸더니 결국 한 장만 받으며 “프레첼은 서비스”라 했다. 기온은 섭씨 33도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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