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15년 만에 평전으로 되살아난 이청준의 삶과 문학

김용래 2023. 8. 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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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부터 죽음까지 촘촘히 복원한 '이청준 평전' 출간
이청준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당신들의 천국, '서편제', '병신과 머저리', '소문의 벽', '매잡이' 등의 소설을 남긴 한국 문학사의 거목 이청준(1939∼2008).

20년 가까이 그의 육필 초고와 메모, 일기·편지, 최초 발표본, 단행본들을 모두 읽고 분석해온 문학평론가 이윤옥(65)이 이청준의 삶을 글로써 오롯이 복원한 '이청준 평전'(문학과지성사)을 출간했다. 이청준이 작고한 지 15년 만이다.

암으로 투병하던 이청준이 작고하기 3~4개월쯤 전에 저자는 그동안 벼르던 것을 물었다. 저자는 이청준으로부터 자신의 평전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업 중이었다. 평전을 쓰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말해달라는 그에게 이청준은 이렇게 답한다.

"평전은 쓰는 사람과 대상이 겨루는 상상력 싸움이다. 대상이 소설가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소설가는 작품으로 교묘히 자기합리화를 시도했을 테니까. 어떤 경우라도 쓰는 사람의 상상력이 대상의 상상력에 지면 안 된다. 그러면 그 평전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면서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이청준 평전'은 이청준이라는 우리 문학의 한 산맥과도 같은 대작가의 작품들을 오랜 기간 수도 없이 반복해 탐독하고, 또 그의 말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취재해온 저자의 치열한 사랑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치밀한 문헌 조사는 기본이고, 작가와 생전에 가깝게 지내며 전해 들은 풍부한 일화와 증언들이 완성도를 높였다.

저자는 고교 시절 처음 만난 이청준의 작품을 시작으로 이청준의 작품을 모두, 그리고 꼼꼼히 반복적으로 읽어오고, 문학도로서 생전의 작가와 오랜 기간 교류해온 '제1의 독자'였다. 이청준이 작고한 후 동료와 후배 문인들과 평론가들이 힘을 모아 2010년부터 2017년까지 간행한 34권짜리 '이청준 전집'(문학과지성사)에 이윤옥은 수록 작품의 초고와 최초 발표 지면, 단행본 판본별 변화, 작가의 다른 작품과의 관련성 등을 꼼꼼하게 밝힌 서지 비평을 권마다 수록하기도 했다.

이청준 전집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처럼 이청준 작품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저자지만 작가에 대한 애정은 맹목적이지 않다. 평전에 나타난 이청준은 깊은 사유와 통찰을 갖춘 대작가의 면모 외에도 가벼운 유머와 위트, 따뜻함을 갖췄고 때로는 콤플렉스에 잘난 친구들에게 질투와 시기를 하기도 하는 등 인간미가 넘쳤다.

책은 이청준의 할아버지와 부모의 가족사에서부터 시작해, 천재로 소문났던 유년 시절, 초·중·고와 서울대 독문과 재학 시절, 졸업 후 '사상계'에 취직하고 작가로 성장해가는 모습, 소설 세계의 토양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병마와 싸우던 말년의 모습 등을 세밀하게 추적해 작가의 삶을 '장흥', '광주', '서울과 용인'의 3부로 재구성했다.

예술을 사랑한 열혈 독서가였으나 20대의 나이에 요절해버린 큰 형이 어린 이청준에게 미친 영향 등 사적인 환경에서부터, 이청준을 위시해 김승옥, 김현 등 소위 '4·19 세대' 문인들에게 4·19와 5·16이 준 충격 등 역사적 지평까지 폭넓게 다뤘다.

이청준에게 4·19혁명은 언제나 다음 해 일어난 5.16 군사정변과 짝을 이룬다.

'이청준 평전' 저자 이윤옥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이청준과 그의 세대에게 4·19와 5·16은 가능성과 좌절의 다른 이름"이라면서 "매우 극적으로 가능성과 좌절을, 4·19와 5·16을 모두 겪은 그의 세대는 앞뒤 세대와는 다른 의식의 틀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저자가 작가와 가까이 지내며 겪은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일화들도 풍성하게 담아 읽는 재미가 있다.

평전에 나타난 이청준의 모습 중 가장 유별난 것은 그의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다. 저자가 '자기 결벽증'이라고 다른 말로 표현하기도 한 이 엄격함으로 작가는 평생을 거쳐 고결한 예술혼의 작품 세계를 일궜을 것이다. 작가는 암으로 투병하며 몸을 가누기 어려운 순간에도 남이 자신을 부축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어떻게든 혼자 꼿꼿이 걸으려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청준이 자서전을 썼다면 내가 쓴 평전보다 더 자신에게 엄격했으리라 믿는다"면서 "그는 평소 자기 잘못에 대해 다소 지나칠 만큼 견디기 어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청준이라는 기념비적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끔 안내하는 수작이다.

문학과지성사. 이윤옥 지음. 548쪽.

책 표지 이미지 [문학과지성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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