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닮은 세 여성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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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닮는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세 영장류'라고 불린 과학자들을 각자가 연구하는 영장류에 자주 비유했다고 한다.
세 과학자가 영장류 연구를 하던 1960~70년대 동물행동학은 관찰을 바탕으로 한 서술에서 계량적이고 실험중심적인 학문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들 삶을 한사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서 총체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그 결과 세 과학자는 영장류들의 도구 사용과 성 선택 등에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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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실의 과학과 문장들]
유인원과의 산책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사이 몽고메리 지음, 김홍옥 옮김, 돌고래(2023)
사랑한다면 닮는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세 영장류’라고 불린 과학자들을 각자가 연구하는 영장류에 자주 비유했다고 한다. 침착한 제인 구달은 고요한 눈을 가진 침팬지, 흑발의 다이앤 포시는 허세와 과시가 있지만 무리에 충직한 고릴라, 그리고 말수가 적고 적갈색 머리칼을 지닌 비루테 갈디카스는 조용하고 평화적인 오랑우탄. 전직 웨이트리스, 물리치료사, 그리고 인류학 대학원생은 영장류를 좇아 케냐, 르완다, 인도네시아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방인 관찰자가 아니라 숲의, 무리의 일부가 되어 동물들을 관찰한 이들은 1970년대를 지나며 영장류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사이 몽고메리의 ‘유인원과의 산책’은 세 영장류의 아름답고 또 애끓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이다.
세 과학자가 영장류 연구를 하던 1960~70년대 동물행동학은 관찰을 바탕으로 한 서술에서 계량적이고 실험중심적인 학문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남성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영장류의 보편적인 행동들을 수치화해 설명하고자 했다. 한편 세 과학자는 동물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 침팬지들이 볼 수 있는 넓은 바위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거나, 고릴라와 함께 야생 셀러리를 씹고, 오랑우탄과 함께 무릎으로 걸으면서 인간이 영장류의 세계에 초대된 존재임을 잊지 않았다. 세 과학자들은 플로, 디짓, 수피나처럼 이름을 붙인 영장류들의 삶에서 “표본을 추출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들 삶을 한사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서 총체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그 결과 세 과학자는 영장류들의 도구 사용과 성 선택 등에서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
몽고메리는 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다른’ 연구방법으로 새로운 관찰을 할 수 있었다고, 주저없이 설명한다. 특히 몽고메리는 여성의 관찰력과 공감력을 강조했다. 또, “지배보다는 관계, 일반성보다는 개체성, 통제보다는 수용”을 강조하는, “여성이 일반적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취하는 접근법”을 연구에 적극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일본 영장류 학자 가와이 마사오의 ‘공감’ 개념을 빌려, 연구 대상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엄밀한 과학이나 진리의 발견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하다”고 강조한다. 관찰자와 관찰대상을 분리하고, 통제와 조작이 미덕이 된 근대 과학에서 오랫동안 배척되어 왔던 이 ‘여성적’인 접근방식이 오히려 더 단단한 과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 과학자에게 ‘과학’은 뒷전인 경우가 많았다. 침팬지는 텅 빈 눈으로 의학 실험에 사용되었고, 고릴라와 오랑우탄은 남획되어 팔려 나가거나 살해당했으며, 이들의 서식지는 각종 개발 사업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태평하게” 논문이나 쓰고 있을 수 없었다. 세 과학자는 각각 다른 전략을 선택해 ‘여전사’가 되어갔다. 제인 구달은 전 세계에서 강의하고 유력 인사들을 만나 침팬지 보호를 논했고, 다이앤 포시는 직접 총을 메고 밀렵꾼들에 대해 “아프리카식 정의”를 구현하고자 했다. 비루테 갈디카스는 인도네시아의 정치인들과 협상하는 외교적인 방식을 택했다. 비판도 논란도 많지만, 세 과학자의 영장류 보호 활동은 ‘과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강연실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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