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열의 산썰(山說)] 13. 푹푹 찌는 더운날 왜 산에 가냐구요?
낮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으로 예보된 맹서(猛暑)의 어느 날 아침, 배낭을 둘러메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이웃 주민이 놀란 듯 묻는다.
“아니 이 더운 날, 산에 가시려고요?”
“네∼” 하고 쑥스럽게 인사를 건네는데, 이웃이 덧붙이는 말. “산에서 쓰러지면 어쩌시려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가마솥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는데, 등산하다가 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산에 가냐는 걱정이다.
당연한 걱정이다. 그런데 등산을 즐겨하는 사람들은 무더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무더운 날에 산에 드는 것을 더 즐긴다.
여름철에 산에 가면 더 더울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실 산은 훨씬 시원하다. 물론 고산 능선을 타는 경우는 뙤약볕을 그대로 맞아야 하기 때문에 더위에 시달릴 수도 있겠으나, 숲으로 들어가는 산행은 그 자체로 피서나 다름없다. 비탈길을 오르는 등산의 행위만으로 따진다면, 계절에 관계없이 체력 소모가 많은 힘겨운 활동임에 틀림없겠으나, 무더운 여름철의 숲은 ‘열섬’에 갇힌 도심과는 전혀 다른 딴 세상이다. 울창한 숲이 마치 장막을 친 듯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고, 솔향 가득한 숲에서 일어난 바람이 땀을 식혀주니 무더운 여름날에 이만한 호사가 어디 있겠는가.
산은 또 대부분, 거의 예외 없이 계곡이나 샘을 품고 있다. 물론 계곡을 만날 수 없는 산행도 있지만, 이름난 산은 대개 산행 코스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하산 길에 명경처럼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그 옛날 선비들의 신선놀음인 탁족(濯足)을 즐기는 것은 산이 덤으로 선물하는 최고의 서비스이다.
그런 장점으로 보자면, 백두대간 고산준령을 끼고 있는 동해안, 영동지역이야말로 혹서기 산행의 최적지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소나무 숲의 성지로 통하는 대관령, 특히 제왕산(帝王山) 등산로는 명품 소나무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산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제왕산의 소나무는 모두 하늘을 찌를 듯 곧게 솟은 자태가 일품이다.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어른 두 팔로 안아도 미치지 못할 굵기이다. 그런데 그런 소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니고, 등산로 주변에 즐비하다. 아름드리 대나무가 경쟁하듯 서 있는 숲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그런 숲에 들면 숲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마저 푸른빛으로 느껴져 푸른 물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다.
오르막 등산길에 바삐 경치만 눈에 담으면서 무심히 지나친 대관령 계곡물은 하산길에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2.6㎞ 길이 계곡을 따라 장마철에 불어난 물이 거침없이 쏟아지니 물소리, 바람 소리를 벗 삼아 너럭바위 위에서 피로를 푸는 것도 산객들만의 특권이다.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을 마루금으로 하는 설악산, 오대산, 대관령, 두타산 등의 명산들은 예외 없이 산객들이 찬사를 바치는 계곡 명소를 품고 있다. 설악산의 수많은 계곡은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강릉의 대관령이나 소금강, 동해시의 무릉계곡, 울진의 불영계곡 등은 여름철에 그 존재가 더 빛난다. 계곡의 자연수(水)는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운 경우가 많아 잠시 발을 담그고 장시간 산행으로 쌓인 피로를 푸는데도 제격이다.
단, 계곡물에 손·발을 담글 때는 삼가야 할 곳이 있다. 산간 계곡을 끼고 있는 농촌 마을의 경우 아직 상수도 시설이 완비되지 않아 산간 계곡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곳이 있을 수 있으므로 ‘주민 상수원’이라는 안내판 등이 붙어 있으면 발을 담그는 행위는 금물이다. 또 오대산과 같은 국립공원 구역도 출입이 허용된 곳에서 계곡물에 손·발을 담그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머리를 감거나 목욕하는 행위는 단속 대상이다.
덧붙여 아무리 여름철 혹서기에 산이 시원하다고 해도 등산은 당연히 많은 체력 소모가 필요한 힘겨운 여정이다. 여름철 등산을 하면서 유독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것도 땀 배출을 통해 체온을 낮추고 몸을 정상화하려는 신체적 방어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수로 인한 탈진 등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양의 물, 특히 얼음물을 반드시 챙겨야 하고, 흔히 말하는 깔딱고개 같은 경사가 심한 비탈길에서는 쉬어 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강릉이 아무리 덥다고 해도 대관령 고갯길은 열대야가 없는 곳이다. 태백산을 품고 있는 태백시 등 고산·고원지대의 도시도 마찬가지다. 대관령의 경우는 요즘 같은 혹서기에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를 피해 아예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자요산(仁者樂山), 통자등산(通者登山)이라고 했다. 세상을 향해 가슴을 열고, 심신을 단련하고 싶은 그대여, 여름 등산을 주저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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