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시간 단 9분, 사상자 61명”...‘美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재조명

최윤정 2023. 8. 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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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의 사진. SBS 시사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유학생 조승희의 이야기가 재조명됐다.

지난 3일 SBS 시사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을 다뤘다.

2007년 4월 15일, 버지니아 공대에서는 축제로 뜨거운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즐거운 축제 다음 날, ‘절대로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누군가의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학생 몰리는 그 소리에 놀라 눈을 떴고, 곧장 기숙사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그는 피 묻은 발자국이 복도에 여기저기 찍혀있는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몰리는 친구 에밀리의 방문을 열었고, 방에서 쓰러져있는 에밀리와 기숙사 사감을 발견한다. 이 끔찍한 사건의 범인은 당시 해당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영문학과 4학년 조승희였다.

조승희는 이 두 사람을 살해하고 아무일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본인의 방으로 돌아갔다. 학교 측도 범인이 외부인일 것으로 추측하고 학생들을 정상 등교시켰다.

조승희의 범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학생이 가장 많이 들어간 건물인 노리스 홀을 찾아 쇠사슬과 자물쇠로 문을 잠갔고, 문을 열면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메모를 적어 문에 붙였다.

그는 이후 강의실 206, 207호를 찾아 총기를 난사했다. 총기 사건이라는 것을 인지한 205호에 있던 사람들은 책상과 의자 등으로 문을 막았다. 204호에서 강의 중이던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는 총소리를 재빨리 알아채고 창문을 깨 학생들에게 뛰어내려 탈출하라고 외쳤다.

조승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교수는 문을 막아서 학생들의 도망을 도왔다. 그러나 그는 끝내 조승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211호 학생들과 교수도 911 신고를 요청했으나, 신고 전화를 끊기도 전 그에 의해 총을 맞는다. 이 잔혹한 현장은 전화기를 통해 911에 생중계 됐다.

조승희는 또 다른 강의실을 돌며 범행을 이어갔고, 9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32명의 학생과 교수를 무참히 살해했다. 부상자는 29명, 사용한 총탄은 무려 174발이었다.

그 시각 학교로 무장한 경찰들이 출동했지만 이미 현장은 지옥 그 자체였다. 바닥은 피로 흥건했고, 여기저기서 비명과 울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때 어떤 남자가 “저기 범인이 있다”고 외쳤다. 그곳에는 한 남학생이 조끼를 입은 채로 쓰여져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이 참극의 범인 조승희였다. 그는 범행을 마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례 없는 대학살 사건에 전세계 언론이 주목했고, 특히 총기 난사범이 한국 유학생 조승희로 밝혀져 미국 뿐만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겼다.

조승희는 한국 국적의 미 영주권자로 1992년 8세 때 미국에 이민을 왔다. 경찰은 왜 그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주변인들을 조사했다. 3년간 같은 학교에 다녔던 그의 학교 친구들에게 조승희에 대해 물었지만, 그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승희는 중학생이 되며 특정 상황에서 말하기를 거부하는 ‘선택적 함구증’을 앓았다. 그의 부모님은 이런 그의 치료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노력이 빛을 발했을까, 결국 조승희는 별탈없이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승희는 수업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하기도 했고, 수업 중 갑자기 강의실을 나가버리는 학생이었다. 그는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친구들과 교수들은 그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끔찍하고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

조승희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던 전 학과장 루신다 루이 교수는 “그가 매우 외로워 보여 친구가 있냐고 했다. 달라지길 바라 가족에 대해 묻기도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말하는 것을 꺼렸다”고 전했다.

사건 이틀 후 한 방송국으로 조승희가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이 보내졌다. 사진에는 총과 무기를 들고 있는 조승희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영상 속 그는 불만과 분노, 좌절감에 차올라 이야기를 토해냈다.

이 우편물은 조승희가 범행 당일 기숙사에서 2명을 살해한 후 노리스 홀로 향하기 전 발송한 것이었다. 그는 살해 계획을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를 짜듯 치밀하게 세웠다.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오윤성 교수는 “결정적 트리거는 주위로부터 거부라고 본다. 조승희는 그 책임을 외부로 돌렸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날 알아주지 않는 이들이 문제’ 이런 생각이 자꾸 쌓이면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게 되고, 이는 세상을 향한 증오나 분노 혹은 공격성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분석했다.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건에 놀란 것은 조승희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조승희의 누나는 가족을 대표해 사죄의 마음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는 “제가 사랑했던 사람이지만 승희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동생의 말할 수 없는 행동에 저희는 큰 유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날 악몽 같은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총기 규제 캠페인, 학생 안전을 위한 폭력 예방 재단을 운영하며 각자의 방법으로 아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최윤정 온라인 뉴스 기자 mary170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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