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만원 아파트 주면, 시골 가시렵니까
“축하합니다! ○○○동 ○○○호 박수!!!”
사회자가 당첨자의 손을 들어 보인다. 청년은 환하게 웃는다. 2023년 6월18일 전남 화순 하니움문화스포츠센터. 화순군 1만원 임대아파트 입주자 뽑기 현장에서 청년 50명이 1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5평 임대아파트에 당첨됐다. 첫 계약기간은 2년이지만 최대 두 번 연장할 수 있어 거주기간은 6년이다. 사촌누나의 권유로 지원했다는 안우진(26)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청년들이 모두 도시로 향하는 시대, 광역시에서 자란 그가 화순‘군’으로 이주를 결심한 배경은 뭘까. 7월 말 입주를 앞둔 안씨를 7월6일 화순 부영아파트 앞에서 만났다.
그래도 지방이라면 ‘내 집 마련’ 할 수 있지 않을까
―화순군 임대아파트에 언제 입주하나.
“7월 말 입주하고 8월까지 전입신고를 완료해야 한다. 아파트는 구축이지만 도배, 장판, 화장실 리모델링 등을 화순군청과 부영아파트 쪽이 양해각서(MOU)를 맺어 진행해줘 짐만 들어가면 된다. 크기는 복도와 지하주차장까지 포함해 계약서상 20평이지만, 실주거면적은 49㎡로 약 15평이다. 혼자 살기에 정말 좋은 크기다.”
―이주하면 직장은 어떻게 하나.
“직장은 광주광역시에 있는 공공기관이다. 화순은 광주에 비해 교통이 좀 안 좋다. 차가 아니면 출근이 힘들다. 차로 바로 가면 30분 정도 걸린다. 서울 사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차가 있다 해도 안 끄는 게 경제적 이득이라고 하더라. 막히고 주차비도 들고 지하철도 잘돼 있고. 그러나 지역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좀 힘들다. 학생 때는 괜찮아도, 직장인은 시간을 딱딱 맞춰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주로 자차를 이용한다.”
―공공기관에 다니는데 임대아파트 지원 조건이 됐나.
“소득 기준이 중위소득 150% 이하다. 지금은 소득 기준이 되는데, 다음에 연차가 쌓이면 지원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화순군에 오기로 결심하면서 마음에 걸린 점이 있었나.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직장뿐만 아니라 광주 본가도 여기서 30분 거리라 괜찮겠다 싶었다. 다만 내 차가 물려받은 거라 엄청 오래됐다. 혹시라도 차가 고장 나면 출근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이런 걱정은 했다.”
―그래도 광주가 인프라가 훨씬 좋을 텐데 지원한 이유는 뭔가.
“보증금(4800만원)은 군이 대신 내주고, 입주자는 예치금 88만원, 1년치 월세 12만원을 내는 게 계약조건이다. 총 100만원만 있으면 된다. 물론 관리비랑 각종 요금은 있다. 아파트 관리비 7만원에 가스·수도·전기 요금을 추가하면 12만원 정도 되지 않겠나. 원룸에서 자취해도 40만원이 주거비로 나가는데 굉장히 절약되는 거다. 6년 동안 이렇게 살면서 저축하면 서울 아파트는 못 사도 지방에선 아파트 한 채 대출 끼고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청년들에게 ‘서울 아파트는 대출해도 못 산다’는 느낌이라면, 지역은 그래도 ‘대출하면 살 수 있다’느낌이다.”
6년 지나도 화순에 남을 이유가 있나
―장기적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 요즘 결혼 안 하겠다는 친구도 많은데 대부분 현실적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사실 200만원 벌어 혼자 먹고살긴 충분하다. 그런데 ‘집 사고 아이 키우려면 부부가 서로 불편해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다. 아이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요즘 사람들은 정보를 너무 잘 알지 않나. 그래서 이 정책이 엄청 좋은 것 같다.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고, 또 어차피 군이 내주는 보증금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환수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자는 군청이 부담하는 셈이지만, 원금은 환수해서 다른 정책에 또 쓸 수도 있다.”
―그럼 6년이 지난 뒤에도 화순에 정착할 것 같은가.
“사실 광주에 직장이 있지 않나. 꼭 화순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는 거다. 사람들이 직장 따라 집을 정하니까. 집 정책으론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 인구를 유입시키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건 군청의 힘으로 힘든 일이기에 이게 최선의 정책인 듯하다. 일단 청년을 유입시켰고, 지인들도 나를 만나러 화순에 올 수 있고. 또 청년 가운데 여기 살다가 이 지역이 살기 좋아 마음이 바뀌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화순 거주자를 만나 결혼하는 분도 생길 수 있고.”
―결혼해도 임대아파트에 계속 살 의향이 있나.
“이건 개인적 생각이고 욕심이겠지만 신혼까지는 잘 살 수 있는 집인데, 아기를 낳고 그 애가 자라면 좀 좁다는 생각이 들 듯하다. 완전히 자리잡고 장기적으로 정착하려면 좀더 (크기가) 커야 할 것 같다.(웃음) 지금은 이 집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만약 6년보다 긴 기간을 거주할 수 있고, 자녀와 같이 살 수 있는 ‘국민평형’(85㎡) 수준으로 임대아파트가 제공되면 소멸하는 지방에 정착할 의향이 있나.
“정착할 수도 있다. 굳이 헛돈 쓸 필요 없으니. 지금 내가 입주하는 아파트도 오래된 아파트지만 리모델링을 잘해주지 않았나. 살기 좋을 것 같다. 학군도 인구소멸 시대에는 대입 경쟁이 달라지지 않겠나. 교육 방식도 이전 시대와는 많이 달라질 듯하다.”
―문 닫은 화순 탄광촌에 갔는데 그곳에서 근무했던 분이 회상하면서 ‘옛날에도 자녀 교육 때문에 화순에 안 살고 광주에 사는 탄광 직원이 40%는 된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런 한계도 있다. 하지만 학군, 교육 인프라는 군청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군청 단위에서 이 정책이 최선인 것 같다.”
서울로 가는 MZ? 직장만 있다면…
화순은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 일명 ‘탄광’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탄광 시대를 이끌었던 ‘118년 역사’ 화순광업소가 2023년 6월30일 폐광되면서 화순의 지방소멸 분위기는 짙어졌다. 화순군은 절박한 상황이다. 전체 인구 약 6만2천 명의 작은 군은 아니지만, 탄광산업이 발전하던 1960~1970년대 화순군 인구가 약 15만 명이던 점을 고려하면 인구가 급감했다. 65살 이상 노인 인구도 약 29%에 이른다.
화순 시내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말을 들어보니 젊은층이 화순을 떠나는 게 이해된다는 분위기였다. 화순에서 30년 이상 살았다는 황아무개씨는 “광주에 전남도청이 있던 시절만 해도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꽤 많이 광주로 출퇴근했는데, 이제 도청도 없으니 점점 실버타운이 되고 있다. 직장이라곤 농공단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가 일한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자란 안우진씨는 “지방에 직장이 없어서 친구들도 서울로 갔다. 화순도 마찬가지다. 화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이 화순에 좋은 직장이 있다면, 가족이 있는 화순을 왜 굳이 벗어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서울로 가는 이유를 자세히 얘기해달라.
“광주에는 기아가 있는데, 들어가기 정말 어려운 곳이다. 이번에 현대·기아차 생산직 모집에서 지원자가 폭주해 기사도 많이 났지 않나. 광주에서 청년층한테 큰 기업이라고 하면 오비맥주, 기아, 케이티앤지(KT&G), 과학기술원 정도가 있다. 그 외엔 전남대·조선대 교직원, 공무원, 순환근무긴 하지만 지방 한국전력 정도다. 그런데 과학기술원만 해도 대부분 경력직을 뽑고, 대학은 인력을 자주 뽑지 않는다. 큰 기업들은 스펙이 정말 좋아야 한다.”
―본인은 어떻게 취업했나.
“이공계라서 다행히 취업이 좀 나았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공부 잘한 문과 친구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도 이공계이지만 처음에 계약직으로 시작해서 계약직 세 번을 거치고, 다섯 번째에 안정적인 정규직으로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됐다.”
―중소기업은 취업할 곳이 꽤 있지 않은가.
“중소기업을 다닌 친구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우선 월급이 최저임금이랑 비슷하다. 알바보다 일은 힘든데, 알바랑 수입이 비슷한 거다. 사실 돈 많이 주고 고용 안정성 있으면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간판이 뭐가 중요하겠나. 나만 해도 삼성이 월 500만원 주고 중소기업이 월 700만원 준다고 하면 당연히 중소기업에 간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대우가 너무 안 좋으니 젊은층이 기피하는 거다.”
―서울로 간 친구들은 만족하나.
“직장 때문에 서울로 간 친구가 주변에 다섯 명 있는데 4명은 내려오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그 친구들은 대기업, 외국계 회사에 다녀 연봉은 더 높다. 그런데 오피스텔 월세에 관리비 등 주거비로 80만원이 나가고 식비도 비싸니 고정지출이 너무 많다. 인프라가 안 좋은 외곽으로 가면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서울에선 부모님이 경제적 능력이 있지 않으면 결혼하고 집 사기 힘들다’는 인식이 많다.”
고소득 청년도 지역 이주 고려 많아
연구 결과도 안씨의 이야기와 비슷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보고서 ‘인구감소대응 지방자치단체 청년유입 및 정착정책 추진방안’(2020)을 보면, 수도권 청년 1천 명 대상 조사에서 ‘비수도권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58.7%(남성 60%, 여성 57.6%)였다. 특히 소득수준 월평균 300만원 이상의, 상대적으로 안정적 직업을 가진 청년층의 77.7%가 지역 이주를 고려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소득이 괜찮은 청년조차 수도권에서 미래를 대비하긴 쉽지 않음을 방증한다. 실제 수도권에서 중소도시나 소도시·농어촌 지역으로의 이주나 정착을 고려한 이유를 살펴보면 ‘생활비, 즉 주거비가 비싸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27.2%로 가장 높았다.(그 외 이유로 ‘대도시의 경쟁적 삶에 지쳐서’ 등이 있음)
화순군의 1만원 임대주택 실험이 큰 관심을 끌면서,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비슷한 지원사업을 내놓고 있다. 전남 신안군은 신혼부부와 미취학 자녀가 있는 귀촌 가족을 대상으로 월 1만원 임대주택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전남 나주시는 나주에서 일자리를 얻어 전입하는 18~45살 청년에게 무상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지자체의 사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결국 ‘직장’이 관건이다. 안씨는 “군청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지방소멸 시대, 지자체가 임대주택 사업으로 청년 유입을 유도하는 동안, 정부는 지역 인재의 비수도권 기업 취업을 위한 사업(‘청년층의 지역 선택을 고려한 지방소멸 대응방향’(2022)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 참고)을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화순(전남)=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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