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 희곡 ‘원어의 맛’ 살리기 위해 노르웨이어 독학 직접 번역”[M 인터뷰]
입센 서거 100주기 행사 가니
우리말로된 작품만 없길래 창피
영어·독어 번역본 차이 느끼고
2011년부터 노르웨이어 공부
임무완수 위한 책임감 필요
번역 할테니 소액 원고료 달라
노르웨이 대사관에 당돌한 딜
완벽하게 출판하고 싶었던 욕심
10권 전집 내는데 15년 걸려
“15년 동안 헨리크 입센을 연구하고 번역한 노고를 그의 모국인 노르웨이가 인정했다는 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원전은 어떻게 썼을까 호기심이 생겨 노르웨이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왕실 공로 훈장까지 수상하게 돼 정말 기쁘고 영광입니다.” 연극평론가 김미혜(75) 한양대 명예교수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을 연구하고 국내에 알린 공로로 3일 저녁 노르웨이 대사관저에서 하랄 5세 왕이 수여하는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The Royal Norwegian Order of Merit)을 받았다. 문화·연극 분야에선 처음이다.
그는 노르웨이어를 독학해 15년간의 작업 끝에 ‘입센 희곡 전집’(전 10권)을 번역한 입센 ‘덕후’다. 전집에는 입센이 평생 쓴 희곡 25편 중 ‘전사의 무덤’과 ‘한여름 밤’을 제외한 23편이 실렸다. 한 편은 단막, 또 한 편은 작가가 원치 않은 작품으로 김 교수가 오슬로에서 구입한 입센 서거 100주년 기념 전집(퀼렌데일 출판사)에도 빠져 있는 데다 오리지널 원전을 찾을 수 없어 23편으로 전집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가 영어판본을 중역한 ‘왕위 주장자들’(2017), ‘사회의 기둥들’(2014), ‘헤다 가블레르’(2012) 등은 앞서 국내 연극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수상 소식을 전해 받은 직후인 1일 문화일보에서 만난 김 교수는 입센 희곡이 국내 대중들에게 아직 낯설고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 ‘푸대접’을 받고 있어 직접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연극학회 회장이던 2006년 베를린에서 열린 입센 100주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했다. 27개국에서 온 학자들이 자국에서 입센 작품을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으로 만든 사례를 발표하는데 발표할 것이 없어 창피했다”고 입센 번역에 뛰어든 직접적인 계기를 밝혔다. “노르웨이에 있는 ‘입센연구소’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각국 언어로 된 입센 자료가 있었지만 한국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벚꽃동산’ ‘갈매기’ 등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안톤 체호프 작품들과 비교해 입센 작품이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하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체호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전 몰락해가는 귀족들의 애잔한 마음, 과거에 대한 향수가 많이 들어가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어울리죠. 하지만 입센은 우리가 멀리하고픈 현실을 보여주는 불편한 작가입니다.”
입센 서거 100주기에 느낀 우울감에서 시작된 김 교수의 ‘입센 희곡 전집 번역 프로젝트’는 2007년 본격 개시됐다. 처음엔 외국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옮기려 했지만 곧 답답함을 느껴 직접 노르웨이어를 공부해 원서 번역에 도전하게 된다. 그는 “영어와 독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두 번역본의 차이를 느끼고 ‘도대체 원전은 어떻게 쓰였을까’ 호기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연극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두 언어에 민감한 그는 자연스레 영어와 독어 번역본의 차이를 발견했다. “영어본은 단어를 단어에 대응시켜 번역했다면 독어본은 노르웨이어가 한 단어여도 설명을 위해서 세 단어로 표현하는 등 굉장히 꼼꼼한 것이 특징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노르웨이어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김 교수는 노르웨이 대사관에 직접 전화해 노르웨이어를 배우고 싶다고 문의했고 책을 사서 독학으로 노르웨이어를 공부했다. 그는 노르웨이어에 독어와 영어가 많아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몇 년만 젊었어도 노르웨이에 가서 직접 언어를 배웠을 것이라는 그는 글을 읽기 위해 노르웨이어를 공부해 일상어를 못한다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15년에 걸친 번역은 험난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계속 작업하다 보니 척추협착증이 생겼고 무릎 통증이 심해지는 등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러다 보니 혹시 자신이 중간에 그만둘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입센 희곡 전집 번역’이라는 임무 완수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는 “노르웨이 대사관에 가서 연말에 내가 1년 동안 번역한 증거물을 보내줄 테니 나한테 소액의 번역료를 줄 수 있겠냐 제안했다. ‘약속’을 해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이후 소액의 번역료를 받고 연말마다 번역한 것을 출력해서 노르웨이 대사관에 증거물로 보냈다. 당시 그는 “너무 힘들 땐 다른 책을 번역하면서 쉬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흔히 그렇듯 15년 동안 번역서를 한 권씩 차례로 내지 않고 10권을 한꺼번에 냈을까? “영어나 독어본을 중역했다면 1년에 한두 편씩 출판했을 것이다. 그런데 노르웨이어를 배워서 원어를 번역하다 보니 공부할수록 실력이 계속 늘었다. 23번째 번역하다 1번째 작품을 다시 보게 되고, 봤던 작품들로 계속 돌아갔다. 영어나 독어만큼 자신이 없었던 언어라 완벽하게 배운 뒤 출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5년간의 작업 끝에 그는 번역은 외국어 이해도가 중요하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정서가 담긴 시적 언어를 한국어로 자연스레 읽히게 해야 하는 희곡 번역은 더더욱 그렇다. 김 교수는 “입센의 운문극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많이 고민했다. 독백 부분은 운문처럼 한국어로 옮겼고 나머진 대화체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연극 현장에서 자문을 많이 한 경험 덕분에 “원어의 맛을 살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입센의 작품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작품으로 ‘브란’을 꼽았다. 작품의 주인공인 목사 ‘브란’은 절대자 신을 신봉하며 철저히 자신의 의미나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아들을 희생하고 스스로도 눈사태에 묻혀 죽는다. 그는 “번역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주인공인 ‘브란’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세운 원칙을 그렇게까지 철저히 지키려는 사람이 요즘 세상에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아직 국내 연극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작품 중 초연되길 바라는 작품으론 ‘사랑의 희극’과 ‘바다에서 온 여인’을 꼽았다. “‘사랑의 희극’은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사랑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바다에서 온 여인’은 인간이 무엇인가에 종속돼 살 때와 자유의지를 갖고 살 때의 차이를 통찰력 있게 조명합니다.”
그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한국연극학회 회장, 국립극단 이사 등을 지낸 원로 연극평론가이기도 하다. 35년 동안 국내 연극계에 종사하며 가장 보람 있던 일로 한국 사람들이 잊고 있던 입센을 상기시켜 준 것을 꼽은 뒤 희곡이 연극 무대에 오르는 과정에서 문학적·예술적 조언을 하는 ‘드라마투르그’가 상당히 보편화되도록 한 것,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각 학교에 연극이 과외 활동으로 들어가도록 기여한 것 등을 말했다.
그는 언제나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라고 말해왔다. 1999년엔 논문 ‘20세기 연극 관객의 위상 재정립의 시’를 작성해 관객을 중심으로 연극계를 탐구하기도 했다. 그는 “25년 전과 비교해 국내 연극 관객 수도 많이 늘었고 관객층도 두터워졌다. 전 세계에 대학로 같은 거리는 없다”면서도 우리도 유럽처럼 연극이 더 보편화되기를 소망했다. 그는 “빈, 베를린 등 유럽 도시들은 국민들의 60∼70%가 연극을 보러 다녀요. 지팡이 쥔 노인들도 흔히 볼 수 있어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것만을 선호하지 않고 지금의 문제, 인간의 문제를 얘기하는 연극을 관람하는 문화가 정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 덕후’서 ‘연극 평론가’로… 입센·브레히트 등 극작가 희곡 번역
■ 김 교수는…
3일 오후 성북구 노르웨이 대사관저에서 열린 공로훈장 수훈식에서 국왕 하랄 5세를 대신한 안네 카리 한센 오빈 주한 노르웨이 대사로부터 훈장과 휘장을 받은 김미혜 한양대 명예교수는 수상 소감을 말하며 중간중간 감정이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헨리크 입센은 세계 연극의 중요한 자산이다. 한국도 입센을 알아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15년의 시간을 보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 교수는 연극평론가이기 전에 연극 팬이었다.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업에 정진했고 고려대 영문학과를 단과대 수석으로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모 몰래 연극부에 가입했고 남편과 결혼 전 데이트를 할 땐 매주 연극을 관람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연극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연극계에 몸을 담게 됐다. 김 교수는 “내가 연극을 너무 좋아하는데 학문으로도 공부해보고 싶다”고 가족들을 설득해 빈대학에서 연극학을 공부했다.
귀국해 연극평론가이자 연극학자로서 해외에서 보고 느낀 바를 가르쳤다. 가급적이면 방학마다 뉴욕을 방문해 공연을 관람하고 이를 다음 학기 수업에 바로 반영하는 부지런한 스승이었다. 국내 연극계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 “연극의 거리로 자리매김한 ‘속성을 잃은’ 대학로는 연극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하기도 했다.
번역가로도 작업하며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극작가들의 희곡을 알리는 데에 앞장섰다. 입센뿐 아니라 ‘사회주의 극작가’로 낙인찍혀 국내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포함한 여러 극작가의 희곡을 번역해 한국 연극 레퍼토리 다양화에 기여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사무국장, 한국연극학회 회장, 국립극단 이사,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장 등 연극과 학계에서 중요 역할을 두루 역임했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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