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로 쥐어진 15만원… 한 생명 살리는데 쓰시겠습니까?[북리뷰]
아르민 팔크 지음│박여명 옮김│김영사
실험 결과 “기부” 선택 57%뿐
모두가 착하게 살기 애쓰지만
도덕적 딜레마 앞에선 이기적
인간, 본능적으로 ‘손해’ 기피
과학적인 정책과 제도 통해서
더 나은 세상 가능하다고 강조
우리 대부분은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대부분은 착하게 살려 애쓴다. 적어도, 그렇게 보이려고 시도 한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스스로 자신이 꽤 ‘좋은 사람’이라 여긴다는 것이다. 실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상기온과 기후변화로 자연이, 그리고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다. 이를 보며 우리는 잠시 염려하지만, 환경파괴의 주범인 일회용 컵을 매일 쓴다. 또 탄소 배출이 어마어마한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면서도 마트에 가면 결국 가장 싼 달걀을 집어 든다. 이러한 모순은 이제 너무 일상적이어서 별다른 감응도 없다.
이런 실험은 어떤가.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15만 원씩 주고, 이 돈을 기부하면 지금 당장 위급한 환자를 한 명 살릴 수 있다는 정보를 줬다. 참여자의 몇 %가 이 돈을 포기했을까. 57%만이 생명을 구하는 일에 동참했다. 물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15만 원이 누군가에겐 절박한 돈일 수 있으니. 또 각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이 실험 자체에 윤리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 우리는 ‘기부’는 선한 일이고 좋은 일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지하며, 늘 선하고 좋은 존재이고 싶어 하면서도, 이를 거의 실천하지 않는다.
책은 여기서 출발한다. 사람이 도저히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에 인간 본성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 인간 행동과 불평등에 관한 연구로 ‘독일의 노벨상’인 라이프니츠상을 수상한 저자는 우리 마음과 행동의 모순을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풀어낸다. 책에 따르면, 대부분 인간은 자발적으로는, 영 착해지기엔 글러 먹은 족속들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해를 싫어하고, 행위에 따른 손익을 계산한다. 그렇다. ‘좋은 사람’에는 비용이 따른다. 그게 만약 공짜였다면, 인류 전체가 “윤리적 슈퍼히어로”가 돼 있지 않았을까.
책은 우리가 쉬이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를 몇 가지 틀로 정리한다. 손해를 피하려는 본능, 인정 욕구, 행복에 대한 집착, 이성을 가로막는 감정, 다른 사람의 태도, 타고난 성향, 그리고 책임을 분산시키는 사회 구조적 환경도 ‘선함’을 방해하는 요소다. 사람들은 실제 선택의 순간이 오면 앞서 언급한 15만 원 사례처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도 아까워한다. 더 흥미로운 건, 헌신이나 희생, 등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행위에 인간이 사실은 큰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 저자의 실험 결과,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350유로를 쓸지, 목숨을 구하지 않고 100유로를 가질지 무작위로 선택했을 때, 단기적으로는 사람을 구한 사람이 행복해했으나, 장기적으로는 돈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했다고 한다. 책은 선행에 반드시 보람과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선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이유나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리 적절한 정보를 제공, 선행을 유도하는 것이다. 책은 스위스에서 가정용 샤워기에 물과 에너지 사용량을 표시하게 했더니 에너지 소비량이 22%나 줄었던 것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도덕적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책은 자신의 행동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개인을 향한 듯 보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세상을 개선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 샤워기의 사례에서 보듯, 인간의 행동은 ‘과학적’인 방식으로 어느 정도 바꿀 수 있기에, 책은 “과학적으로 뒷받침된 정책을 수립하는 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특정 제도와 정책 수립에 있어 가장 고려돼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닌 “인간 행동에 대한 더 나은 이해”라는 것. 그러면서 책은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를 장려하자”고 하며 “사회적 실험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자”는 주장까지 펼치기도 한다. 경제와 사회의 프레임을 바꿀 힘과 가능성이 자신이 속한 실험경제학연구소 안에 있다는 식의 귀결은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만, 칸트의 의무론적 도덕성을 강조하며 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덜 부담스럽다. 388쪽, 1만8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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