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일탈하면 바로 ‘손절’ ?… 팬들은 애정에 책임진다[북리뷰]

박세희 기자 2023. 8. 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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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통사고'라는 말이 있다.

갑자기 어떤 아이돌 그룹 또는 멤버에 빠져 '덕질'을 시작하게 된 것을 교통사고에 비유한 말이다.

이처럼 많은 팬이 '팬심' '덕질'을 자율적 선택에 따른 행위가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라 말한다.

팬들이 논란 속 멤버를 향해 무조건적인 지지나 응원을 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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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설이는 사랑
안희제 지음│오월의봄

‘덕통사고’라는 말이 있다. 갑자기 어떤 아이돌 그룹 또는 멤버에 빠져 ‘덕질’을 시작하게 된 것을 교통사고에 비유한 말이다. 이처럼 많은 팬이 ‘팬심’ ‘덕질’을 자율적 선택에 따른 행위가 아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이라 말한다. 이렇게 좋아하게 된 멤버가 ‘논란’에 휩싸인다면 어떨까. 스태프에게 갑질을 했다거나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다는 폭로가 나온다면.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사건으로 바로 덕질을 그만둘 수 있을까.

‘망설이는 사랑’은 이때 바로 아이돌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는 팬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데서 출발한 책이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저자가 팬들과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썼지만 팬덤에 관해 가볍게 이야기하는 내용은 아니다. 아이돌의 ‘논란’이 어떻게 유행이 되고 소비되는지, 그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공론장’을 깊게 성찰한다.

책은 우선 관심이 곧 돈이 되는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 사회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느 한 아이돌 멤버의 논란이 터지는 즉시, 수많은 ‘사이버렉카’ 채널들은 그 멤버의 지난 일들까지 다 끄집어내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고, 조회 수로 수익을 얻는다.

이렇게 확산된 논란으로 해당 멤버는 대중들에게 평가받고 비난받는데, 여기엔 ‘집단적 도덕주의’가 작용한다. 도덕성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집단적 도덕주의’ 속에서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기 위해 논란의 멤버에게 과도한 비난을 쏟아내는 ‘그랜드스탠더’(grandstander)가 양산된다.

대중이 그랜드스탠더의 주장에 쉽게 휩쓸려 특정 멤버를 과도하게 비난하게 되는 것은 아이돌이 ‘돈을 쉽게 번다’는 비난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섹슈얼리티를 자원화함으로써 쉽게 성공했다는 식의 여성 혐오적인 혐의를 받기에 논란의 중심이 될 시 더욱 큰 비난의 대상이 된다.

논란 속 멤버를 비난하는 쪽이 대중의 여론으로 굳어지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적으로 규정되고 팬들은 ‘시녀’ 혹은 ‘무지성 팬덤’으로 낙인찍힌다. 그럼에도 쉽게 이 아이돌을 떠날 결심을 하지 못하는 팬들의 심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에 답하기 전에 저자는 팬심에 대해 분석한다. 팬들은 무대뿐 아니라 자체 콘텐츠, 리얼리티 예능, 브이앱 등을 통해 아이돌을 한 명의 ‘사람’으로 알아 가고 사랑한다. 대중문화 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이자 한 명의 직업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팬들이 논란 속 멤버를 향해 무조건적인 지지나 응원을 표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논란을 맞닥뜨렸을 때 즉각적인 ‘탈덕’을 ‘망설이는’ 팬들은 사건의 진실을 찾아 가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치열’한 ‘분투’의 시간을 갖는다. 새롭게 업데이트되는 소식들을 모두 챙겨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지 끊임없이 따진다.

저자는 이러한 ‘망설임’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망설인다는 것은 논란으로 이익을 보는 네트워크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자, 논란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논쟁을 촉발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덧붙인다. 자신의 애정에 대한 책임감을 다하고, 때로는 죄책감과 수치심마저 떠안는 팬들의 팬심이 더 나은 온라인 공론장을 꾸리는 구체적인 실천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다. 344쪽, 1만9000원.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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