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예측하는 하트시그널 김총기 정신과전문의

정세영 기자 2023. 8. 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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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A ‘하트시그널’에서 날카로운 코멘트로 시청자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는 김총기 정신과전문의에게 물었다. 사랑에 빠지는 찰나, 그리고 사랑을 현명하게 지속해나가는 방법에 대하여.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장승리의 시집 '무표정’에 수록된 시, '말’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사랑이 있다. 짝사랑, 첫사랑, 사내 연애, 삼각관계까지. 그중 가장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는 무엇일까.

8명의 청춘남녀가 정확한 사랑을 찾기 위해 시그널 하우스에 모였다. 한 달 동안 같은 공간에 머물며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키워나간다. 짧은 시간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출연자들은 진심 그 자체다. 의식하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가 웃을 땐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눈물을 글썽거릴 때는 마음 한쪽을 도려내듯 상대보다 더 아파한다. 여기에 뽀송한 보정이 들어간 화면과 감각적인 음악, 김이나 작사가의 황홀한 코멘터리가 더해지면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도 마치 판타지 로맨스처럼 느껴진다.

현실 속 사랑은 어떨까. 잘 알고 있듯이 하트시그널처럼 모두 핑크빛은 아니다. 연애는 어렵고 비현실적이다라고 느끼는 이들이 더 많다. 사람마다 연애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사랑을 주고받는 스킬도, 연애에 인생의 지분을 내어주는 비중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투고 상처받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하지만 연애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어졌다면 현재의 사랑을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하트시그널 예측단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총기 정신과전문의는 사랑 등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공감하고 심리적으로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먼저 파악해봐야한다"는 게 그의 지론. 김총기 의사를 만나 사랑을 하고 상처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과 하트시그널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들었다. 현실 속 사랑의 종착점은 어디일지, 하트시그널 최종 커플은 누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누구나 좀 더 섬세하고 내밀하며 행복하게 사랑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진심 어린 러브 라인에 과몰입 주의보

하트시그널 출연자들의 마음을 추리하는 6명의 예측단.
하트시그널에서 점점 시청자의 입장에서 화면을 분석하는 것 같던데요.

처음에는 출연자들을 직업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저도 모르게 시그널 하우스에 점점 빠져들게 되더라고요(웃음). 정신과 의사로서 출연자들의 심리나 행동을 분석하기 보다는 이제는 친한 친구나 동생의 연애를 보듯이 감정 이입해서 보고 있어요. 몰입도 100%입니다.

원래 하트 시그널 애청자였나요.

사실 시즌 1~3까지 한 편도 안 봤었어요(하하). 원래 연애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서로 설레고 긴장하는 모습을 보면 덩달아 마음이 들뜨고요. 이래서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구나 싶더라고요.

시즌 4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출연자들의 감정이 말이나 눈빛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요.  말로 표현하긴 어려운데,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풍기는 깊고 진한 눈빛 있잖아요. 좋아하는 감정은 역시 숨길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죠.

커플을 가장 잘 맞추는 패널은 누구인가요.

일단 저는 아니고요(하하). 김이나 님이 잘 맞추시는 것 같아요. 출연자들 간의 시그널이나 미세한 표정들도 잘 캐치하세요. 항상 김이나 님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죠.

사람마다 연애 성향이 모두 다른 이유는 뭘까요.

불안을 감당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큰 감정이 생겨나죠. 그 마음 자체로도 두려운데 거절 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까지 쌓이니 얼마나 혼란스러워요. 이런 마음을 대처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연애에서도 차이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하트시그널 출연자들처럼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차이점을 느끼나요.

하트시그널 시즌 1은 거의 7년 전에 방영 됐어요. 당시 핫한 키워드는 '썸’이어서 출연자가 서로 썸을 타는 장면이 많이 비춰졌던 것 같아요. 시즌 2도 비슷한 흐름이었고요. 하지만 시즌 4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거리낌이 없고 관계를 확실하게 맺고 싶어하죠.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세대가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지금 세대의 모습을 보면 신기하면서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하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가 많아졌으니까요. 요즘은 SNS를 통해 자신을 친구 혹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노출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실시간 일상을 평가받는 것에 익숙해진 거죠. 감정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좋아하는 마음을 꽁꽁 싸매고 숨기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노출하고 평가받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진 거죠.

연애가 힘들다는 MZ도 많아요.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MZ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에 연애를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연애는 본인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그걸 채우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하고요. 개인주의적일수록 연애를 더 많이 해야 해요. 연애를 하지 못할 정도로 본인의 본능이나 욕망을 억압하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가 힘들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40~50대에 비해 20~30대가 정신적, 심리적 부분에서 훨씬 더 건강하다고 느끼거든요.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진 것처럼, 상대방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이해하는 연애가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연애와 사랑

결혼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죠.

맞아요. 결혼과 출산은 별 생각이 없어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하나둘씩 따지기 시작하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부분은 거의 없으니까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얻게 될 불안정감도 너무 커졌고요. 만약 결혼 전 후 삶의 형태가 비슷하면 결혼을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 조차 하지 않을 거예요. 남들 다 하니까, 할 때가 됐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정도로 가볍게 인식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변화된 모습이 매체나 주위 환경을 통해 너무 현실적으로 비춰지니까 결혼을 경제적으로 따져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혼이 어려워지게 됐고요.

연애나 결혼 생활이 항상 핑크빛은 아니에요. 데이트, 가정 폭력이 이슈가 되는 것처럼요.

사랑하는 감정과 폭력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요. 사랑에는 항상 불안이 내포돼 있고, 그 내면에는 분노가 깔려 있죠. 분노가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폭력이라면 사랑과 분노는 절대 뗄 수 없는 감정과도 같고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융합되고자 하는 무의식이 생겨요.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느끼고 행동하길 바라고요. 하지만 절대 그럴 수 없죠. 그걸 깨닫는 순간 분노가 생겨난다고 생각해요. 그 분노가 극에 달하면 폭력으로 이어지고요.

상대에게 폭력을 당해서 헤어졌지만 용서하고 다시 사귀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이 단번에 사라지진 않으니까요. 상대방이 사과하고 다시 나를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면 분노와 사랑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럴 땐 나를 때린 사람을 아직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하거나 분노만 할 것이 아니라, 상처를 줬지만 나는 여전히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그래야 현실을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끊어낼 힘도 생기는 거고요.

연애를 할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자신의 일상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할 때요. 관계의 위험성을 판단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해요. 우울하고, 잠도 못자고, 출근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있다면 위험한 연애를 하고 있다는 신호죠. 보통은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을 통해서 연애의 지속 여부와 위험성을 판단하려 하죠. 이건 굉장히 잘못된 방법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연애로 인해 내 삶이 어떻게 변화됐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내가 피해를 보고 있다면 위험한 연애를 하고 있는 거고요.

상대방의 마음보다 내 마음에 더 집중하라는 의미인가요.

병원에 찾아오는 분들 중에 "저 사람이 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집에서 화를 냈어요"라는 이야기를 하세요. "어떤 감정이 드셨어요?"라고 여쭤보면 보통 "짜증났어요"라고 대답해요. 사실 짜증은 감정이 아니에요. 본인 느낌에 대한 호불호 정도죠. 이렇게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장 큰 이유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자신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더 빨리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고요.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상대방의 진짜 마음은 알 수 없어요.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거든요. 지금 연애를 하고 있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온 힘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가능한 부분이잖아요. 하트시그널 예측단으로서 실시간 마이크를 통해 출연자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상대방의 반응을 파악하려는 시간 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더 집중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네요.

환자에게 "어떤 감정이 드셨어요?"라고 물어본다고 하셨어요. 너무 직접적인 표현같은데.

일부러 물어보는 거예요. 감정을 표현해보라고요. 질문했을 때 당황하거나 불편해한다는 걸 알아요. 불편하라고 여쭤보는 거예요. 그래야 표현의 필요성을 느끼니까요. 재미있는 게 상대방의 감정은 어땠을지 물어보면 대답을 그렇게 잘하세요(웃음). 정작 자신의 마음은 모르면서요. 잘 생각해보세요.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몇 번 들여다봤는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는지. 아마 거의 한 번도 없을 걸요.

자신의 마음은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까요.

지금 어떤 느낌인지, 뭘 하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 시간이 많아지면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좀 더 이성적이게 행동하고 판단할 수 있겠죠. 언어화하는 것도 중요해요. 감정이나 느낌은 뇌에서 먼저 발달했기 때문에 표현하기 굉장히 모호해요. 그걸 문법과 규칙에 맞춰서 다시 재배열한 뒤 언어로 내뱉어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생각도 정리가 되고요.

선생님도 연애할 때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렸나요.

아쉽게도 연애할 때는 정신과전문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잘 몰랐어요(하하). 서툴렀죠. 지금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결혼한 지 7년이 넘었지만 부부간의 갈등은 계속 생기잖아요. 그럴 때마다 위의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합니다.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먼저 제 마음을 알아차리고 감정에 휘둘려서 행동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죠.

직업상 공감 능력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전형적인 (MBTI에서) 'T’에요(웃음). 처음 공감에 대한 정신과 수련을 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함께 아파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후자였거든요. 공감 능력이 떨어져서 좋은 정신과 의사가 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죠. 하지만 선배, 교수님들께 조언도 듣고 환자들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게 치료적으로 필요한 공감의 수준은 MBTI의 'T’와 'F’ 형식으로 나누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거더라고요. 공감은 결국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혹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진짜인지, 어떻게 형성된 건지를 들어주고 고민하고 이해해줄 때 진짜 공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아우 힘드시겠어요"라는 이야기가 환자에게 치료적으로 의미 있는 공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트시그널 4 최종 몇 커플 예상하시나요.

정신과전문의 소견이 아닌 시청자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잘 됐으면 하는 커플은 있어요. 사실 저도 지금까지 방송된 부분만 봤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몰라요. 출연진들의 감정이 깊어지고 시그널이 확실해지면 응원하는 커플이 바뀔 수도 있겠죠.

#하트시그널 #김총기 #연애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채널A

정세영 기자 sy282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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